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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시 / 에세이 읽기

수면 기계 속의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 강성은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문학과지성사, 2013)을 읽다



강성은의 두 번째 시집을 읽으면서 작은 글을 하나 쓰고 싶어졌다. 하지만 주중에는 전혀 틈을 낼 수 없었는데, 오늘밤 잠시 틈을 내어 글을 하나 쓸 수 있게 되었다. 읽으면서 순간순간 메모해 둔 것들을 이어붙인 것이라서 미숙하다. 하지만 즐겁다. 읽고 쓴다, 읽고 쓴다, 읽고 쓴다. 이 반복은 얼마나 즐거운가. 다른 수많은 반복들에 비하여 얼마나 기쁜가. 그 기쁨을 다시 반복하기 위해 여기에 올려 둔다. 




수면 기계 속의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 강성은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문학과지성사, 2013)을 읽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강성은의 첫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창비, 2009)를 읽었을 때, 전혀 '잠'에 대해 의식하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제목에 ‘잠’이라고 적혀 있는데도, 나는 이 매력 있는 신체 활동을 그 시집에서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엄마 오늘밤 우리의 악몽은/ 숨겨진 골목들이 차례로 쏟아지는 꿈입니다”(「양수 속에서」)와 같은 구절이 여기저기 있는데도, 나는 강성은의 음습하고 기괴한 단어들이 만들어 내는 낯설고 끔찍한 현실에 주목했을 뿐, 그 시적 현실의 몽환(夢幻)을 말 그대로의 몽환(夢幻)이나 환몽(幻夢)으로 수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쩌면 거기에, 현실이 꿈으로 빨려드는, 구체적 윤곽을 잃고 언어적 이미지로 변신하는 그 희미한 문턱에, 그러니까 ‘잠’에, 시인은 두 번째 시집으로 가는 샛길을 슬며시 열어 두고 있었던 것이다. 


꿈은 잠을 보충한다. 꿈이 없다면, 잠은 그저 과잉 노동에 시달렸던 뇌를 쉬게 하는 신체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꿈이 있어서 잠은 생리에서 심리가 된다. 잠은 꿈의 문턱이다. 잠이 없다면, 꿈은 언어로 보기 어려운 기호들의 불연속 계열체밖에는 안 된다. 쉬는 뇌의 여력 덕에 꿈은 심리에서 생리가 된다. 그러니까 꿈은 물리이자 심리인, 현실이자 환상인, 말이자 헛말인 이중 기호체계로 동시에 써 내려가는 드물디드문 활동이다. 

강성은의 두 번째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의 화자들은 잠과 꿈의 이중 생활을 기묘하게 옮겨 다니면서, 아니 그 이중성을 하나로 해서 살아간다. 이번 시집에서 아무렇게나 뽑은 다음 시구들처럼, 


이 오랜 꿈이 끝나고/ 나 자신이 희고 빛나는 밤이 될 때/ 이것이 어떤 잠이었는지 알게 되리 (「올란도」)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다 (「환상의 빛」) 


어떤 날에는 우주로 쏟아올린 시들이 내 잠 속으로 떨어졌다 (「외계로부터의 답신」) 


강성은의 시적 주체는 수면-주체, 항상 잠들어 있거나 꿈꾸는 모습으로 출현한다. 몽화(夢化) 기계로서 그/그녀는 꿈을 현실로 불러들이거나 현실을 꿈으로 모아들여서 꿈-현실이라 부르면 좋을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찍어 낸다. 말 그대로, 찍어 낸다. 일절 군더더기 없는, 마치 눈에 갇힌 겨울 산처럼, 범람하는 이미지들과 쏟아지는 말들을 다독거려서 선연하고 투명하고 간결한 풍경으로 보여 준다. 좋은 솜씨다. 

이 성능 좋은 기계는 잠으로써 현실을 단절시킨다. 시인으로부터, 독자로부터, 아니 현실 자체로부터 단절시킨다. 현실은 뭉개지고 부서지고 사라지고 뒤틀린다. 전혀 다른 시간-공간이 갑자기 출현한다. 평행 우주에 감추어져 있던 또 다른 시간-공간이 불려온 것 같다. 강성은을 따라, 우리는 그곳에 내던져진다. 일찍이 카프카가 말했던, "사람이 이 세상을 적대하여 문과 창문 들을 닫는다면 하나의 아름다운 허구가 떠오를 수 있다."라고 했을 때의 그 아름다운 허구가 우리 눈앞에서 둥둥 떠다닌다. 현세에 적대적인 인간들에게만 보인다는 그 허구의 풍경들. 

강성은의 풍경 속에서 우리는 이상한 장면을 보거나 이상한 소리를 듣거나 이상한 것을 느낀다. 감각이 달라지고 감정이 야릇해지고 정신이 불특정해진다. 각자의 고유한 착란이 개방된다. 그 개방은 언뜻 눈부시다. 


한밤중 누군가 버리고 갔다 / 한밤중 누군가 다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 창밖 가로등 아래/ 밤새 부스럭거리는 소리 (「기일(忌日)」) 


에서처럼 삶이란 죽은 자와 겹쳐서, 또는 그들을 끌어안고 사는 것임을, 우리와 함께 그들도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거나 


이 벌목이 끝나려면 내가 스스로 나무가 되어야 하는 걸까 그는 반짝이는 은빛 날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몸을 그었다 스칠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났다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묘하고 아름다운 소리 그는 자신의 몸을 더 세게 톱질했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톱이 이토록 쓸쓸한 말을 하다니 이토록 무서운 말을 하다니 (「내 꿈속의 벌목공」) 


에서처럼 사람의 몸속에는 묘하고 아름답고 쓸쓸하고 무서운 소리 또는 말이 감추어진 채 울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정지가 운동을 만들어 낸다. 아니, 정지시켜서 움직인다. 이것이 강성은 시의 특이한 동역학이다. 이 동역학의 법칙이 작용하는 세계가 우리를 섬뜩, 빠뜨린다. 


강성은의 시 속에서는 한없이 눈이 내린다. 따라서 강성은의 잠은 긴 잠 또는 겨울잠이다. 그것은 대개 검은 숲, 그러니까 죽음의 지대 주변을 들어갔다, 나왔다 어슬렁댄다. 

강성은의 시에서 숲의 어두운 이미지는, 시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중 하나인 「나의 셔틀콕」에서 보이듯이, 아버지와의 급작스러운 분리로부터 온 것으로 보이지만, 동화적으로 호출된 여러 시어들과 함께 자라서 페르세포네의 왕국을 이룬 채 계속해서 증식한다. 


공중에 한참 멈춰 있던 아버지의 라켓이 순식간에 내리치자 셔틀콕은 저편 숲 속으로 빠르게 휙 날아가 버렸다 나는 촐랑거리는 강아지처럼 껑충껑충 뛰어 그곳으로 달려갔다 숲 속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다 오래된 나무들이 깊은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셔틀콕은, 희고 아름다운 깃털이 달린 나의 셔틀콕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리번거렸다 나의 소중한 셔틀콕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조금씩 더 깊은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의 셔틀콕」) 


그리고 아름다운 세계에 살던 소녀는 그 숲에서 "미아"가 되어 지금껏 나오지 않고 있다. 그 얼어붙은 마음, 원초적 공포가 강성은 시의 심리적 기초를 굳세게 이룬다. 


달리다가 문득 멈추면 나는 또 이상한 거리에 서 있었다 어스름한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저녁의 세계 한가운데 꺼질 듯 수그러들다가 다시 살아나는 저녁의 마술 한가운데 마치 나를 따라다니던 그림자가 나를 와락 끌어안은 느낌이었다 (「미아(迷兒)」) 


기차는 멈춰 있었다 나는 서둘러 가방과 우산을 챙겼다 기차에서 내리자 겨울밤의 냉기가 밀려왔다 사람들을 뒤따라 계단을 오르고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처음 보는 역이었다 처음 보는 지명이었다 (「밤 기차」) 


"한밤중 맨홀에 빠진 피에로"(「커튼콜」)처럼, 안온한 일상의 리듬으로부터 순식간에 생면부지의 상황과 마주해야 하는, 그때 화자를 덮쳐 온 어둠, 그 맨홀 속의 어둠은 아마도 겨울의 이른 어둠이었을 것이다. 소녀를 처녀로 진화시킨 채, 영원히 미로에 빠뜨린, 순식간에 다가오고 끈질기게 발목을 부여잡은 기나긴 밤의 습격. 그 밤에 끝내 죽음이 있었다. 


간질병을 앓던 사내아이가 눈 쌓인 숲에서 발견되었다 

아이의 늙은 여자는 울다 정신을 잃었다 

관을 짜는 노인이 줄자로 아이의 길이를 쟀다 

어두운 골목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서로의 그림자에 흠칫 놀랐다 

겨울을 저주했다 밤은 더 공포스러웠다 

뒷산의 눈먼 올빼미는 날지 못하고 죽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고백하지 않아 더 슬펐다 

겨울에 악기들은 영혼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아무것도 고백하지 않아 더 부끄러웠다 

새벽 눈보라의 입술이 잠든 마을을 무심히 갉아 먹었다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눈 쌓인 숲 속에서 밤을 보내고 있었다 

매일 밤 

(「눈 속에서의 하룻밤」 전문) 


이 시에 모두 다 있다. 자기 몸을 톱질해 악기 삼아 소리 내는 나뭇꾼 (「내 꿈속의 벌목공」)도, 관 속에 누운 "아름다운 수염을 가진" 소년(「펼쳐라, 달빛」)도, 한밤줌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누군가(「기일(忌日)」)도 모여 있다. "모두들 눈 쌓인 숲 속에서 밤을 보내고 있다." 밤을 보내면서 겨울밤의 왕처럼 긴 잠을 자고 있다.(「겨울밤 왕의 잠은 쏟아지고」) 유년의 끝이다. 그것은 어떤 죽음과 함께 왔고, 그 죽음으로부터 화자는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다. 


겨울 산에 토끼 잡으러 갔다 나와 동생과 사촌 동생, 우리 셋은 한 번도 잡아 본 적 없는 토끼를 잡으러 나섰다 흰 눈이 무릎까지 오는 산이었다 토끼는 보지도 못하고 길을 잃었다 해가 지고 있는데 (「겨울방학」) 


이 겨울 산의 공포, 죽음을 겪고 살아난 소녀의 심리학이 강성은 시를 한 줄로 꿰고 있다. "몇 세기 동안 녹지 않는 눈사람이 되어 / 겨울이 되면"(「런던 포그」) 그 집 앞에 오롯이 서 있다. 삶으로부터 떨어져 쌓인 파편들을 뒤적여서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면서 끝없이. 그런데 그 겨울은 "마음속에서 발생하는 계절"(「단지 조금 이상한」)이기에 결코 순환하지 않는다. 살아서 죽음을 보내는 법을 아직 익히지 못했기에, 강성은의 주체들은 깊은 잠에 빠져 "유령"처럼 흘러다닌다. 화해는 없다. 불은 아직, 수천 년 동안, 어쩌면 영원히 켜지지 않는다. 


나는 불 꺼진 방에 서 있다 나는 마치 수천 년 동안 불을 켜려고 했던 유령 같다 (「불 꺼진 방」) 


이 이동성이 거세된 주체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풍경을 보라. 그는 박제되어 영원히 그 안에서 울고 있다. 주체가 극장으로 변하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아니다. 이상하게 아름다운 순간이다. 


창문이 열려 있었다 커튼이 흔들리고 있다 그 틈으로 햇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금이 간 안경알이 빛나고 있었다 어두운 곳에 침대가 있다 그 옆으로 흘러내린 촛농으로 덮인 나무 테이블이 있었다 벽에 걸린 몇 년 전의 달력이, 마룻바닥 위 여행 가방이 입을 벌리고 옷가지를 쏟아 낸 채 잠들어 있었다 천장에는 얼룩덜룩한 곰팡이가 꿈의 무늬를 그려 놓고 있었다 방문 앞에 흙 묻은 신발이 뒤집혀 있었다 침대 속에서 누군가 울고 있었다 센서 불빛이 켜졌다 꺼졌다, 다시 켜진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전문) 


강성은의 두 번째 시집을 읽는 내내, 읽는 눈 속으로 눈이 내렸다. 그 눈은 때때로 녹아서 물이 되기도 했다. 아마, 쓰는 그녀도 그랬을 것이다. 시집 표지 뒷글에서 "쏟아지는 빛 속에서 눈을 감았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눈을 감지 않았다면, 아마 비가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검은 조청 속에는" "죽은 사람들의 그림자들"이 들어 있는 법이지만, 언젠가 소녀 역시 결불에 쏟아지는 잠 속에서 그 조청을 "후루룩" 마시면서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않았던가. 그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 삶은 "환하고 예쁘고 달다"고 할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나는 조심스레, 그 날을, 그 세계를, 그 시간이 강성은의 시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기다려 본다. 


나는 아궁이 속에 나무를 집어 넣고 앉아서 꾸벅꾸벅 존다 타오르는 불은 환하고 예쁘고 달다 이는 하나씩 더 빠지고 나는 이가 사라진 자리에 더디게 혀를 넣어 보고 졸면서 나는 정말 늙어 버린 걸까 생각하고 어째서 조청은 이렇게 오랜 시간을 고아야 하나 생각도 잠시 잠든 나를 깨우며 외숙모는 나에게 한 그릇을 내민다 후루룩 마시렴 후루룩 나는 반쯤 뜬 눈으로 내 앞의 검은 조청과 아궁이 속의 불꽃이 희미해져 가는 걸 본다 (「밤이 간다」) 


밤이 간다. 언젠가는, 밤이, 반드시, 꼭,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