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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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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김부식(金富軾)의 대흥사에서 소쩍새 울음을 듣다(大興寺聞子規) 대흥사(大興寺)에서 소쩍새 울음을 듣다 김부식(金富軾, 1075~1151) 속세 손님의 꿈은 이미 끊어졌는데,소쩍새는 울다가 또 흐느끼네.세상에 이제 공야장(公冶長)이 없거늘,누가 알겠는가, 마음에 맺힌 한을. 大興寺聞子規 俗客夢已斷,子規啼尙咽. 世無公冶長, 誰知心所結. 김부식은 고려 인종 때 문인으로 『삼국사기』를 지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문장이 뛰어나고 시에도 밝았습니다. 묘청(妙淸), 정지상(鄭知常)이 주도한 서경(西京, 평양) 천도 운동을 저지하고 이들이 난을 일으켰을 때 진압한 공로로 정권을 잡아서 정치를 좌지우지했으며, 말년에는 스스로 정계에서 은퇴했습니다. 사후에 무신의 난이 일어났을 때, 그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의 목을 베었을 만큼 문벌 귀족의 상징이었습니다. 대흥사(大興寺)는 개..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최치원(崔致遠)의 가을밤 빗속에서(秋夜雨中) 가을밤 빗속에서 최치원(崔致遠, 857~?) 가을바람에 씁쓸히 읊나니,온 세상에 날 알아줄 이 적구나.창밖에는 밤비가 내리고,등불 앞에는 만리를 떠도는 마음이여! 秋夜雨中秋風惟苦吟,擧世少知音.窓外三更雨,燈前萬里心. 최치원은 우리나라 문학의 비조(鼻祖)에 해당합니다. 엄격한 신분 사회였던 신라에서 6두품으로 태어났기에 신분의 한계를 넘어서 뜻을 펼쳐보려고 열두 살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납니다. 요즈음으로 따지면 뉴욕으로 조기 유학을 간 셈입니다. 어려서 이미 천재였던 그는 유학한 지 6년 만이 열여덟 살에 빈공과(賓貢科, 외국인 대상 과거 시험)에 장원으로 급제합니다. 출세길이 열린 것입니다. 회남절도사 고변의 추천을 받아 관역순관이라는 벼슬을 할 때, 난을 일으킨 황소를 토벌하자는 격문(「토황소..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이인로(李仁老)의 산에서 살다(山居) 산에서 살다(山居) 이인로(李仁老, 1152~1220) 봄이 갔어도 꽃은 아직도 피어 있고,하늘이 맑은데 골짜기는 저절로 그늘지네.두견새가 대낮에 우짖는 소리를 들으니비로소 알겠네, 사는 곳이 깊숙한 것을. 山居 春去花猶在,天晴谷自陰.杜鵑啼白晝,始覺卜居深. 이인로는 고려 중기의 시인으로 호는 쌍명재(雙明齋)인데, 가장 오래된 시화집인 『파한집(破閑集)』을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10대 후반, 무신란을 피해 불문에 귀의했다가 10년 만이 스물여덟 살에 과거에 급제함으로써 벼슬살이를 시작했습니다. 급한 성미 탓에 크게 쓰이지는 못했고, 몇몇 친구들과 어울려 죽림칠현을 본받고자 시와 술을 즐기면서 살았습니다. 제목인 ‘산거(山居)’는 산속에서 산다는 뜻입니다. 무신란을 피해 골짝 깊은 곳까지 들어와서 숨어 ..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맹호연(孟浩然)의 대우사 의공의 선방에 부쳐서(大禹寺義公禪房) 대우사(大禹寺) 의공(義公)의 선방(禪房)에 부쳐서 맹호연(孟浩然, 689~740) 저녁놀에 연이어 내리는 비는 촉촉하고,맑디맑은 푸름은 뜨락 그늘에 떨어지네.연꽃의 맑음을 바라보고 있노라니,바야흐로 알겠네, 물들지 않은 마음을. 題大禹寺義公禪房 夕陽連雨足,空翠落庭陰.看取蓮花淨,方知不染心. 개인적으로 저는 맹호연의 시를 좋아합니다. 양양(襄陽) 사람으로 젊은 날에는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하여 공부를 닦았고, 마흔 살쯤에 장안으로 나와서 출세하려 했으나 과거에는 낙방했습니다. 하지만 시로써 이름을 날리면서 장구령(張九齡), 왕유(王維) 등과 어울렸습니다. 그의 시는 자연을 벗 삼아 세속에 물들지 않으려는 높고 맑은 뜻을 품고 있습니다. 오늘날에 와서도 표현이 아직 참신한 부분이 많아 읽는 기쁨을 줍니다.제..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양나라 무제 소연(梁武帝 蕭衍)의 자야사시가_여름(子夜四時歌_夏) 자야사시가_여름(子夜四時歌_夏) 양나라 무제 소연(梁武帝 蕭衍) 강남에 연꽃이 피니붉은빛이 푸른 물을 뒤덮었구나.색깔이 같으니 마음 또한 같고,뿌리는 달라도 마음은 다르지 않네. 子夜四時歌(夏)江南蓮花開,紅光覆碧水.色同心復同,藕異心無異. 동진(東晉)이 멸망한 후 수(隨)나라가 다시 천하를 통일할 때까지 중국은 장강 남북에 각각 수많은 나라들이 일어섰다 스러지는 격변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이때 장강 북쪽에는 유목민족이 세운 열여섯 나라가, 장강 남쪽에는 한족이 세운 네 나라가 교체되는 극심한 혼란이 계속되었습니다. 이 시를 지은 소연(蕭衍)은 남제(南齊)의 황제를 시해하고 스스로 황제에 올라서 양(梁)나라를 세운 인물입니다. 무장으로도 이름이 높았지만, 시인으로도 문명을 떨쳤으니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인..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정윤서(鄭允瑞)의「연꽃을 노래하다(詠蓮)」 연꽃을 노래하다 정윤서(鄭允瑞) 본래 흙먼지 기운을 갖지 못해서구름 뜬 물속 마을에 스스로 머물렀네.깨끗깨끗 맑으니 씻어낸 듯하고,우뚝우뚝 솟으니 냄새마저 신묘하네. 詠蓮本無塵土氣,自在水雲鄕.楚楚淨如拭,亭亭生妙香. 정윤서는 원나라 때 여류시인입니다. 당나라 때 시인으로 흔히 알려졌으나, 『전당시(全唐詩)』에 실리지 않았고, 명나라 때 처낭재주인(處囊齋主人)이 편집한 『시녀사찬(詩女史纂)』에 원나라 사람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시녀사찬』에 따르면, 정윤서는 시백인(施伯仁)의 아내로 어렸을 때 시와 글씨를 공부했습니다. 시집간 후 남편의 성품이 촌스럽고 패악한 것을 이기지 못하고 시를 지어서 스스로 위안 삼았는데, 시가 위진(魏晉)의 품격이 있었다고 합니다. 「연꽃을 노래하다(詠蓮)」는 「두부를 기리며(豆..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육유(陸游)의 「저물녘 유교(柳橋)에서 내다보다(柳橋晩眺)」 저물녘 유교(柳橋)에서 내다보다 육유(陸游) 작은 물가에서 고기 뛰노는 소리 들리고,가로누운 숲에서 학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네.한가로운 구름은 비를 내리지 못하고,푸른 산 근처에서 흩날리누나. 柳橋晩眺陸游 小浦聞魚躍,橫林待鶴歸.閒雲不成雨,故傍碧山飛. 제목에 나오는 유교(柳橋)는 장강(長江) 하류에 위치한 항주(杭州) 근처의 지명입니다. 만(晩)은 ‘저녁’이라는 뜻이고, 조(眺)는 멀리 내다보는 일입니다. 유교만조(柳橋晩眺)는 ‘저물녘 유교에서 멀리 내다보다’로 풀이합니다. 지난주 이몽양(李夢陽)의 시 「어촌석조(漁村夕照, 어촌의 저녁노을)」에서는 동정호(洞庭湖)의 저녁노을을 감상했는데, 이번 주에는 항주 근처의 저녁노을을 즐기게 되네요. 시를 통해 절경(絶景)을 즐기는 것은 여행을 가서 눈으로 직접 즐기는..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이몽양(李夢陽)의 '어촌의 저녁노을[漁村夕照]' 어촌의 저녁노을 이몽양(李夢陽) 석양은 동정호에 지고,그물은 맑은 못을 끌어당기네.황금 비늘이 한 길이라도,볼 수는 있으나 잡을 수는 없구나. 漁村夕照 西陽下洞庭,網集淸潭上.一丈黃金鱗, 可見不可網. 지난주에 이어서 명나라 이몽양의 시를 읽겠습니다. 제목에 나오는 ‘석조(夕照)’는 저녁노을을 가리킵니다. 이 시 역시 격조가 높습니다. 풀이해 놓으니 덧붙일 말이 더 없을 만큼 깔끔합니다. 어느 저녁, 시인이 맞이한 한 호숫가 마을의 풍경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오릅니다.첫 구절의 ‘서양(西陽)’은 ‘서쪽으로 지는 해’라는 뜻으로 석양을 가리킵니다. 동정(洞庭)은 동정호(洞庭湖)를 말합니다. 동정호는 장강(長江) 상류에 있는 거대한 호수로, 과거에는 중국에서 가장 큰 호수였으나 지금은 조금 면적이 줄어들어서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