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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한시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최치원(崔致遠)의 가을밤 빗속에서(秋夜雨中)

가을밤 빗속에서


최치원(崔致遠, 857~?)


가을바람에 씁쓸히 읊나니,

온 세상에 날 알아줄 이 적구나.

창밖에는 밤비가 내리고,

등불 앞에는 만리를 떠도는 마음이여!


秋夜雨中

秋風惟苦吟,

擧世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최치원은 우리나라 문학의 비조(鼻祖)에 해당합니다. 엄격한 신분 사회였던 신라에서 6두품으로 태어났기에 신분의 한계를 넘어서 뜻을 펼쳐보려고 열두 살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납니다. 요즈음으로 따지면 뉴욕으로 조기 유학을 간 셈입니다. 어려서 이미 천재였던 그는 유학한 지 6년 만이 열여덟 살에 빈공과(賓貢科, 외국인 대상 과거 시험)에 장원으로 급제합니다. 출세길이 열린 것입니다. 회남절도사 고변의 추천을 받아 관역순관이라는 벼슬을 할 때, 난을 일으킨 황소를 토벌하자는 격문(「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널리 이름을 떨쳤고, 이 때문에 중국에서 크게 주목을 받고 황제로부터 선물도 하사받았습니다. 그러나 외국인 신분으로 당나라에서 어떤 한계를 느꼈는지, 스물아홉 살에 돌연 귀국해서 고국에서 자신이 품은 뜻을 펼치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신라는 이미 기우는 중이었고, 신분의 제약도 여전했습니다. 이에 실의에 빠진 최치원은 현실을 떠나 가야산에 은거했습니다. 당나라에서 쓴 글을 모은 『계원필경(桂苑筆耕)』은 『당서(唐書』 「예문지(藝文志)」에도 실릴 만큼 대단한 문집으로,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문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흔히 최치원이 당나라에 유학했을 때 쓴 작품으로 알려졌으나, 『계원필경』에는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귀국 후에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쓰디쓴 마음을 술회한 시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뜻을 높으나 생활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만물이 여위어 가는 가을에는 아마도 더욱 비참한 기분이 들겠죠. 덧없는 인생, 괴로운 심사가 한밤중에 이르도록 시인을 잠 못 들게 합니다. 쓸쓸한 가을바람, 차갑게 내리는 비는 뼈아픈 마음을 더욱 부추깁니다. 이 밤 어찌 감흥이 없을 것이며, 이 밤 마음이 발붙일 곳 없어 온 세상을 떠돌지 않겠습니까. 

첫째 구절에서 유(惟)는 ‘오직 ~할 뿐’이라고 새깁니다. 차가운 바람이 낙엽을 재촉합니다. 문풍지가 떨면서 소리가 점점 거세집니다. 그 소리에 시인은 출세하지 못하고 쓸쓸히 저물어 가는 자신의 인생을 떠올립니다. ‘고(苦, 쓰다, 괴롭다)’ 한 글자로 줄어드는 삶이란 얼마나 가슴 아플까요. 시를 읊어 달래려 하지만, 상처가 자꾸 덧나 마음이 아립니다. 성공하지 못한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괴로이 시를 읊는 화자의 마음이 생생히 전해집니다.

둘째 구절에서 거세(擧世)는 ‘온 세상을 통틀어’의 뜻입니다. ‘세로(世路)’라고 적힌 판본도 있습니다. 뜻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지음(知音)은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와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의 일화에서 나온 말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뜻합니다. ‘고산유수(高山流水)’도 같은 뜻입니다. 백아가 높은 산의 기상을 담아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는 그 소리의 우뚝함을 찬양했고, 또 백아가 흐르는 물의 유려함을 담아 연주하자 종자기는 그 소리의 매끄러움을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백아는 크게 기뻐하면서 종자기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으나, 종자기가 그사이에 병들어 죽었습니다. 이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으면서 ‘소리를 아는 이’가 세상에 없으니 더 이상 거문고를 타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로부터 지음(知音)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시의 화자는 자신을 백아에 비유하면서, 자신의 품은 재주를 알아줄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아, 이처럼 재주는 높으나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이는 또 얼마나 많을까요.

셋째 구절에서 시인의 비감(悲感)은 더욱 커집니다. 가을바람만으로도 쓸쓸한데, 비까지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삼경(三更)은 밤 11시에서 1시 사이를 가리킵니다. 오늘날에는 전기 때문에 이 시간에 잠드는 이가 그리 드물지 않을지 몰라도, 예전에는 이미 저녁 7시면 사실상 일상활동을 멈추었습니다. 삼경이면 가장 깊은 밤을 가리킵니다. 시인은 온갖 번민에 이 시간까지 잠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데 대한 분노, 외롭게 쫓겨 와 있는 처지에 대한 쓸쓸함 등이 겹쳐서 잠이 오질 않는 듯합니다.

넷째 구절에서 만리심(萬里心)은 만리 바깥을 떠도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화자는 지금 마음을 어느 한 곳에 붙이지 못하고, 이런저런 생각에 괴로워하면서 연신 시를 읊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를 읊을수록 마음은 더욱 쓸쓸해지고, 생각은 더욱 엉클어지기만 합니다. 괴롭고 쓸쓸한 밤입니다. 쥐어짜면 물이라도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은 슬픈 마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