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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한시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맹호연(孟浩然)의 대우사 의공의 선방에 부쳐서(大禹寺義公禪房)

대우사(大禹寺) 의공(義公)의 선방(禪房)에 부쳐서


맹호연(孟浩然, 689~740)


저녁놀에 연이어 내리는 비는 촉촉하고,

맑디맑은 푸름은 뜨락 그늘에 떨어지네.

연꽃의 맑음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바야흐로 알겠네, 물들지 않은 마음을.


題大禹寺義公禪房


夕陽連雨足,

空翠落庭陰.

看取蓮花淨,

方知不染心.


개인적으로 저는 맹호연의 시를 좋아합니다. 양양(襄陽) 사람으로 젊은 날에는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하여 공부를 닦았고, 마흔 살쯤에 장안으로 나와서 출세하려 했으나 과거에는 낙방했습니다. 하지만 시로써 이름을 날리면서 장구령(張九齡), 왕유(王維) 등과 어울렸습니다. 그의 시는 자연을 벗 삼아 세속에 물들지 않으려는 높고 맑은 뜻을 품고 있습니다. 오늘날에 와서도 표현이 아직 참신한 부분이 많아 읽는 기쁨을 줍니다.

제목에 나오는 제(題)는 ‘~에 부쳐서’라는 뜻입니다. 당대의 유명한 승려였던 의공(義公)이 참선하는 방[禪房]에 부친 시입니다. 본래 오언율시이지만, 오늘 소개하는 뒤의 네 구가 아름다워 따로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시인은 지금 선방 연못가에서 저녁을 맞이합니다. 연못에는 연꽃이 하나 가득 피어 있네요. 비는 낮부터 부슬부슬 내리고, 여름을 맞아 녹음이 온산을 휘감고 있습니다. 세속이 미처 번질 틈이 없는 고결하고 정갈한 풍경입니다. 머릿속으로 살짝 그려만 보아도 저절로 마음이 씻기는 것 같은데, 이곳에 어찌 삿된 마음이 깃들 리 있겠습니까. 

첫 구절에서 연우(連雨)란 이어서 내리는 비를 뜻합니다. 아마 비는 낮부터 계속해서 내린 것 같습니다. 천지가 고루 축축하게 젖었습니다. 이를 ‘족(足)’ 한 글자로 표현했습니다. 족은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둘째 구절의 ‘공취(空翠)’에는 녹색 초목, 파르스름한 안개 기운, 푸른 하늘, 맑아서 바닥이 들여다보이는 샘물 등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여름을 맞아 나뭇잎이 짙은 푸른빛을 띤 상태, 즉 녹음(綠陰)을 나타냅니다. 정음(庭陰)은 뜨락의 그늘이라는 뜻입니다. 산의 짙은 초록이 뜨락의 그늘로 떨어진다는 뜻인지, 아니면 산의 짙은 초록이 내려앉아서 뜨락 그늘을 이루었다는 뜻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지 간에 부슬부슬 내리는 비 사이로 온 산이 푸르게 물들어 선방 앞 뜨락을 감싸고 있는 풍경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 짙은 초록색이 배경을 이루기에 비 사이로 꽃을 밀어올린 연꽃의 하얀빛 또는 붉은빛이 더욱 선연해집니다.

셋째 구절의 ‘간취(看取)’를 “연꽃을 바라보다 꺾어서 살피는 것”으로 옮기는 걸 가끔씩 볼 수 있는데, 제 생각에는 시정(詩情)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연꽃은 불교에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정결함의 상징입니다. 그 상징을 꺾어 들고 ‘맑음[淨]’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어색합니다. 취(取)를 억지로 해석하려고 해서 그런데, 여기에서 ‘취’는 별다른 뜻 없이 ‘간(看, 바라보다)’의 뜻을 돕는 조동사로 보는 게 옳을 듯합니다. 따라서 ‘지그시 바라보다’ 정도로 옮기면 어떨까 합니다. 한편, 연화(蓮花)를 연꽃이 아니라 『연화경(蓮華經)』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따르면 이 구절은 “그대 연화경 외는 소리가 맑음을 지그시 바라보노라니” 정도의 뜻이 됩니다.

넷째 구절에서 ‘방(方)’은 ‘바야흐로’라는 뜻입니다. ‘불염심(不染心)’은 세속 먼지에 때 묻지 않은 마음을 가리킵니다. 짙은 녹음을 바탕으로 피어난 희디흰 연꽃을 통해서 경지에 오른 의공(義公)의 청정한 마음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아, 누구라도 이런 고즈넉한 산사를 덮은 연꽃을 만나면 마음이 맑아지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번잡함을 버리고 이런 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 있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