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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한시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김부식(金富軾)의 대흥사에서 소쩍새 울음을 듣다(大興寺聞子規)



대흥사(大興寺)에서 소쩍새 울음을 듣다


김부식(金富軾, 1075~1151)


속세 손님의 꿈은 이미 끊어졌는데,

소쩍새는 울다가 또 흐느끼네.

세상에 이제 공야장(公冶長)이 없거늘,

누가 알겠는가, 마음에 맺힌 한을.


大興寺聞子規


俗客夢已斷,

子規啼尙咽. 

世無公冶長, 

誰知心所結.



김부식은 고려 인종 때 문인으로 『삼국사기』를 지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문장이 뛰어나고 시에도 밝았습니다. 묘청(妙淸), 정지상(鄭知常)이 주도한 서경(西京, 평양) 천도 운동을 저지하고 이들이 난을 일으켰을 때 진압한 공로로 정권을 잡아서 정치를 좌지우지했으며, 말년에는 스스로 정계에서 은퇴했습니다. 사후에 무신의 난이 일어났을 때, 그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의 목을 베었을 만큼 문벌 귀족의 상징이었습니다. 

대흥사(大興寺)는 개경(開京, 개성) 옆에 있던 대흥산성(大興山城) 안에 있는 절을 말합니다. 고려는 불교의 나라였던 만큼, 고려의 귀족들은 자주 근처의 절에 드나들면서 몸을 쉬고 마음을 다스렸을 것입니다. 이 시는 김부식이 대흥사에서 하룻밤 머물면서 느낀 소회를 적은 작품입니다.

자규(子規)는 두견새, 즉 소쩍새를 말합니다. 옛날 중국 촉(蜀) 땅에 두우(杜宇)라는 황제가 있었는데, 신하에게 배신을 당해서 황제 자리를 잃고 쫓겨납니다. 그 후에 그는 늘 촉 땅을 그리워하다가 죽었는데, 두견새는 그의 영혼이 깃든 새여서 ‘귀촉도(歸蜀道), 불여귀(不如歸)’라고 운다고 합니다. ‘촉으로 돌아가자꾸나, 돌아감만 같지 못하다.’라는 뜻입니다. 소쩍, 소쩍 우는 울음소리에 이런 뜻을 담은 상상력이 재미있네요. 세상에서 쫓겨나 알아주는 이 없이 홀로 회한에 젖은 화자의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첫째 구절에서 속객(俗客)은 속세의 손님, 즉 화자 자신을 말합니다. 몽이단(夢已斷)은 자다가 깨었다는 말입니다. 시인은 밤에 문득 깨어납니다. 소쩍새 소리가 너무 요란해서일까요. 아니겠죠, 아마 시름이 깊어서 그럴 것입니다. 오히려 시름이 깊어서 소쩍새 소리가 저리 요란하게 들리는 것이겠지요. 

둘째 구절에서 제(啼)는 새가 ‘울다’는 뜻입니다. 상(尙)은 ‘오히려’ ‘또한’이라는 말입니다. 인(咽)은 목구멍이라는 뜻인데, 여기에서는 ‘흐느끼다’로 새기면 됩니다. 시름이 깊은 탓인지 오늘따라 소쩍새 소리는 더욱 슬프게 들립니다. 슬프다 못해 흐느끼는 것처럼도 느껴집니다. 아마 울고 있는 것은 소쩍새가 아니라 시인일 겁니다. 자연은 늘 무정하고, 오직 인간만이 유정(有情)한 것이지요.

셋째 구절에서 공야장(公冶長)은 공자의 제자이자 사위였습니다. 공야장은 새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아마 새 울음소리를 들으면 그 새가 어떤 새인지, 어떤 상태인지 알아맞히는 재주가 있었던 듯합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조류과학자라고 하겠지요. 소쩍새는 울며 또 흐느끼건만 그 사연을 들어줄 사람은 이미 세상에는 없습니다. 지음(知音)인 종자기(鍾子期)를 잃은 백아(伯牙)입니다. 넷째 구절에 나오듯, 소쩍새의 마음에 맺힌 한[心所結]을 이제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내 재주는 비록 천하를 품을 만하더라도, 내 재주를 알고 써줄 사람이 없나니, 어찌 날로 한이 깊어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