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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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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의 역사를 읽으면서 편집을 생각하다 _앤서니 그래프턴의 『각주의 역사』(김지혜 옮김, 테오리아, 2016) 연휴에 앤서니 그래프턴의 『각주의 역사』(김지혜 옮김, 테오리아, 2016)를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을 읽고 있자니 문득 옛날 옛적에 공부 쫌 해 보려고 할 때 생각이 났다. 당시에, 갑자기, 인용부호, 각주, 참고문헌 같은 글의 구성 요소가 근대문학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즉 근대적 문학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런 사소한 부분을 통해 들여다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가 그게 작품성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한 친구한테 면박을 당한 적이 있다. 스물다섯 해쯤 전의 일이지만, 이런 책이 무겁게 주목을 받으면서 나오는 걸 보니 세상이 참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편집자가 책의 각 구성요소를 깊이 탐구하는 것은 하나의 의무에 가깝다. 출판의 대중화 혁명 이후, 학술서를 제외하면 많은 서적의 판면으로부터 각..
신봉건주의를 넘어서(기획회의 여는 글) 《기획회의》 421호(2016년 8월 5일)에 「여는 글」을 썼다. 우치다 다츠루의 『반지성주의를 말한다』를 읽으면서, 오늘날 출판의 가장 큰 적은 디지털이나 모바일이 아니라 반지성주의에 기반을 둔 ‘신봉건주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회의 부와 기회를 소수가 전적으로 독점하는 양극화는 철회되지 않을 것이고, 그 소수는 나머지 다수에게 타자와 더불어/함께 자유를 추구하는 대신에 말초적 쾌락에 혼몽을 꾸도록 유혹하는 짓을 서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개돼지의 사육’이라는 교육시스템을 향한 가차 없는 전진이 이룩할 반지성주의의 범람. 책에 무척 적대적인 이런 흐름에 출판이 저항할 이유는 넘치도록 충분하다. 문제는 리더십일 뿐. 우치다 다츠루가 편집한 『반지성주의를 말한다』(이마, 2016)는 본래..
자본도 재능도 없이 누구나 서점을 하는 세상을 위하여 _이시바시 다케후미의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을 읽다 책과 출판과 서점에 대한 담론이 사회적으로 크게 조명받으면서, 갑자기 출판이나 서점이 아무나 할 수 없는, 정말 창의적이고 지사적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일, 기적을 만들 줄 아는 사람들조차도 엄청난 간난신고를 겪어야 간신히 미미한 빛을 던질 수 있는 대단한 직업으로 우상화되었다. 1990년대에 출판계를 풍미하다 거품으로 스러진 ‘기획자’ 또는 ‘북 프로듀서’ 열풍이 옆줄로 옮겨가서 살짝 변주되어 도돌이표로 돌아온 느낌이다. ‘큐레이션’이니 ‘콩세르주’니 ‘서점의 기획’이니 하는 개념이 범람하면서, 사소하고 지루하고 고된 일상 노동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출판, 서점, 디자인, 인쇄 등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않을 것처럼 저 멀리로 밀려난 느낌이다.(나 역시 이런 부분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
[서울국제도서전 세미나] 출판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서 출판의 미래를 고민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초연결사회에서 출판 비즈니스 자체의 지형도가 계속해서 바뀌는 느낌입니다.무언가 하기는 해야겠다고 고민은 하지만, 막상 미래로 가는 구체적인 방향을 잡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책도 한 권 썼지만,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씩씩하게 앞길을 여는 분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평소 개인적으로, 언론을 통해서, 소셜미디어 등에서 이런저런 식으로 얼굴을 뵈었지만그분들의 깊이 있는 속내를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그래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세미나를 기획하면서 한번에 뵐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사심이 두 근 반이고, 공정성은 한 근 반입니다.오가닉미디어랩의 윤지영 대표, 페친의책장을 하는 라이앤캐처스의 허윤 대표,종이책에서 디지털로 성..
작은 연결, 미래 출판으로 가는 법(기획회의 417호 여는 글) 기획회의 417호에 ‘여는 글’을 썼습니다. 저자와 독자가 연결되고, 독자와 독자가 연결되며, 책과 책이 연결되는 사회에서 출판 비즈니스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길어야 10년 내외에 책을 둘러싼 미디어 지형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면서출판 비즈니스의 새로운 모델들이 탄생하고 소멸할 것입니다.이런 시대에 출판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질문을 작게 던져 보았습니다. 읽기와 쓰기의 가장 간단한 연결을 생각하자. 나는 작문을 하고, 선생님은 읽는다. 벌써 여기에서 연결의 세 가지 기본 항이 생겨난다. 먼저, 발신자인 ‘나’라는 노드와 수신자인 ‘선생님’이라는 노드, 선생님과 나를 연결하는 ‘링크’다. 간단한 연결이지만, 이 연결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링크’의 성격에 대한 깊은 숙고가 필요하다. 링크..
너무도 성급하게 가로짜기로 바꾸었다(심우진) 아쉽게도 오늘날의 책에서는, 전통과 수학적 규범에 바탕을 둔 납활자 조판의 엄격함도, 기계적 고효율에 바탕을 둔 사진 식자의 자유분방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민숭민숭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이기도 할 것이다. 디지털과 관련한 정체성 혼란은 이전 시대를 훑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왜’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우진, 「20세기 본문 조판 유람기(1)」, 《기획회의》 415호, 2016년 5월 20일, 64쪽) 《기획회의》가 올 때마다 가장 꾸준히, 열심히 읽는 글은 심우진의 연재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이다. 그런데 이번 호에 실린 글은 특별히 흥미로웠다. 요즘 본문 편집의 비성찰적 장식성에 대한 불만을 적잖이 품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디지털과 관련..
출판문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에 관심을 갖자(기획회의 415호 특집을 읽고)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니 《기획회의》 416호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특집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에 발한다’입니다. 한주리 교수의 글 「출판문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 어떤 정책들이 필요한가」의 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출판산업 종사자들이 출판 진흥정책에서 가장 중요 영역으로 인식한 부분은 출판산업 지속성장 인프라 구축 정책이었다. 지금까지 출판산업 정책에서 주로 진행되어 온 것이 주로 분배정책이었다. 여기서 분배정책이란 특정한 개인, 기업체, 조직, 지역사회에 공공서비스와 편익을 배분하는 것으로 ‘나눠 먹기식 다툼’이라고 불린다. (중략) 이러한 분배 방식은 출판산업과 관련한 이슈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주로 분배정책으로 운용되어 오..
모바일에서 책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기획회의 415호) 《기획회의》 415호 특집 ‘출판에서의 플랫폼 비즈니스’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름은 걸쳐놓았지만 사실상 이번 호부터 기획위원으로 본격 참여한 특집입니다. 소셜 리딩 사이트인 굿리즈를 인사이트 있게 분석한 교보문고 류영호 차장의 글이 무엇보다 반가웠습니다. 이쪽 분야 뉴페이스인 원센텐스의 이가희 대표의 글과 함께 책의 발견성(discoverability) 문제를 고민하는 출판인들한테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독자를 중심에 세워야 한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는 더 좋아하게 만들고, 무관심한 독자들에게는 책과 연결되는 매개점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굿리즈(Goodreads)의] 오티스 챈들러가 ‘미니 인플루엔서(Mini Influencer)’는 출판시장에 큰 메시지를 던졌다. 스마트한 저자들과 독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