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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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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양나라 무제 소연(梁武帝 蕭衍)의 자야사시가_여름(子夜四時歌_夏) 자야사시가_여름(子夜四時歌_夏) 양나라 무제 소연(梁武帝 蕭衍) 강남에 연꽃이 피니붉은빛이 푸른 물을 뒤덮었구나.색깔이 같으니 마음 또한 같고,뿌리는 달라도 마음은 다르지 않네. 子夜四時歌(夏)江南蓮花開,紅光覆碧水.色同心復同,藕異心無異. 동진(東晉)이 멸망한 후 수(隨)나라가 다시 천하를 통일할 때까지 중국은 장강 남북에 각각 수많은 나라들이 일어섰다 스러지는 격변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이때 장강 북쪽에는 유목민족이 세운 열여섯 나라가, 장강 남쪽에는 한족이 세운 네 나라가 교체되는 극심한 혼란이 계속되었습니다. 이 시를 지은 소연(蕭衍)은 남제(南齊)의 황제를 시해하고 스스로 황제에 올라서 양(梁)나라를 세운 인물입니다. 무장으로도 이름이 높았지만, 시인으로도 문명을 떨쳤으니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인..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정윤서(鄭允瑞)의「연꽃을 노래하다(詠蓮)」 연꽃을 노래하다 정윤서(鄭允瑞) 본래 흙먼지 기운을 갖지 못해서구름 뜬 물속 마을에 스스로 머물렀네.깨끗깨끗 맑으니 씻어낸 듯하고,우뚝우뚝 솟으니 냄새마저 신묘하네. 詠蓮本無塵土氣,自在水雲鄕.楚楚淨如拭,亭亭生妙香. 정윤서는 원나라 때 여류시인입니다. 당나라 때 시인으로 흔히 알려졌으나, 『전당시(全唐詩)』에 실리지 않았고, 명나라 때 처낭재주인(處囊齋主人)이 편집한 『시녀사찬(詩女史纂)』에 원나라 사람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시녀사찬』에 따르면, 정윤서는 시백인(施伯仁)의 아내로 어렸을 때 시와 글씨를 공부했습니다. 시집간 후 남편의 성품이 촌스럽고 패악한 것을 이기지 못하고 시를 지어서 스스로 위안 삼았는데, 시가 위진(魏晉)의 품격이 있었다고 합니다. 「연꽃을 노래하다(詠蓮)」는 「두부를 기리며(豆..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육유(陸游)의 「저물녘 유교(柳橋)에서 내다보다(柳橋晩眺)」 저물녘 유교(柳橋)에서 내다보다 육유(陸游) 작은 물가에서 고기 뛰노는 소리 들리고,가로누운 숲에서 학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네.한가로운 구름은 비를 내리지 못하고,푸른 산 근처에서 흩날리누나. 柳橋晩眺陸游 小浦聞魚躍,橫林待鶴歸.閒雲不成雨,故傍碧山飛. 제목에 나오는 유교(柳橋)는 장강(長江) 하류에 위치한 항주(杭州) 근처의 지명입니다. 만(晩)은 ‘저녁’이라는 뜻이고, 조(眺)는 멀리 내다보는 일입니다. 유교만조(柳橋晩眺)는 ‘저물녘 유교에서 멀리 내다보다’로 풀이합니다. 지난주 이몽양(李夢陽)의 시 「어촌석조(漁村夕照, 어촌의 저녁노을)」에서는 동정호(洞庭湖)의 저녁노을을 감상했는데, 이번 주에는 항주 근처의 저녁노을을 즐기게 되네요. 시를 통해 절경(絶景)을 즐기는 것은 여행을 가서 눈으로 직접 즐기는..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이몽양(李夢陽)의 '어촌의 저녁노을[漁村夕照]' 어촌의 저녁노을 이몽양(李夢陽) 석양은 동정호에 지고,그물은 맑은 못을 끌어당기네.황금 비늘이 한 길이라도,볼 수는 있으나 잡을 수는 없구나. 漁村夕照 西陽下洞庭,網集淸潭上.一丈黃金鱗, 可見不可網. 지난주에 이어서 명나라 이몽양의 시를 읽겠습니다. 제목에 나오는 ‘석조(夕照)’는 저녁노을을 가리킵니다. 이 시 역시 격조가 높습니다. 풀이해 놓으니 덧붙일 말이 더 없을 만큼 깔끔합니다. 어느 저녁, 시인이 맞이한 한 호숫가 마을의 풍경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오릅니다.첫 구절의 ‘서양(西陽)’은 ‘서쪽으로 지는 해’라는 뜻으로 석양을 가리킵니다. 동정(洞庭)은 동정호(洞庭湖)를 말합니다. 동정호는 장강(長江) 상류에 있는 거대한 호수로, 과거에는 중국에서 가장 큰 호수였으나 지금은 조금 면적이 줄어들어서 두..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이몽양(李夢陽)의 새로 지은 산장에서 저절로 흥이 일어(新莊漫興) 새로 지은 산장에서 저절로 흥이 일어 이몽양(李夢陽, 1475~1529) 지난번 왔을 때에는 살구꽃이 붉었는데,이번에 오니 멀구슬꽃이 빨가네.꽃이 피고 또 꽃이 피나니,고요히 앉아 세월 가는 것을 보누나. 新莊漫興 昨來杏花紅,今來楝花赤.一花復一花,坐見歲年易. 이몽양은 명나라 때의 시인으로 호를 공동자(空同子)라고 했습니다. 열여섯 살 어린 나이로 과거에 급제해 관직을 얻었으나, 절개를 앞세운 과격한 행동 탓에 세 번이나 옥고를 치르는 등 불우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문학에서는 전칠자(前七子)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데, 다른 이들과 함께 “한나라 이후에는 문장이 없고, 당나라 이후에는 시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복고적 문학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각 시대에는 그 시절에 맞는 정서가 있고 언어가 있는 법인데, 지금..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정섭(鄭燮)의 가파른 절벽에 난초가 피다(峭壁蘭) 가파른 절벽에 난초가 피다 정섭(鄭燮) 가파른 절벽은 높이가 일천 척인데,난초꽃이 푸른 하늘에 걸려 있네.절벽 아래 캐려는 나무꾼이 있어서손을 뻗었으나 꺾을 수는 없었네. 峭壁蘭峭壁一千尺, 蘭花在空碧.下有采樵人,伸手折不得.정섭(鄭燮, 1693~1766)은 청나라 강희제 때의 시인이자 화가입니다. 양주팔괴(楊州八怪)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데, 벼슬을 떠나 글과 그림을 벗해서 자유롭게 살고자 후원자를 찾아 양주에 정착했습니다. 화훼 그림에 뛰어났으며, 시와 글씨와 그림을 한 폭에 같이 넣어서 조화를 추구하려 했습니다. 특히 난초 그림과 대나무 그림을 잘 그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지난주에는 같이 석류꽃을 공부했는데, 여름 꽃이라면 역시 난초꽃이기에 골라 보았습니다. 제목 초벽란(峭壁蘭)에서 ‘초(峭)’는 가파..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상건(常建)의 왕창령이 숨어 살던 곳에 묵으면서[宿王昌齡隱居] 왕창령이 숨어 살던 곳에 묵으면서 상건(常建) 맑은 시내는 깊어서 잴 수가 없는데,숨어 살던 곳에는 오직 외로운 구름뿐.소나무 가지에 걸린 초승달,맑은 빛은 아직도 그대를 위해 비추네. 宿王昌齡隱居淸溪深不測,隱處唯孤雲.松際露微月,淸光猶爲君. 상건(常建, 708~765?)은 성당(盛唐) 때의 시인입니다. 예전에 같이 공부했지만, 당시(唐詩)는 크게 초당(初唐), 성당, 중당(中唐), 만당(晩唐)으로 시기가 구분됩니다. 이른 절정을 맞고 그 여파가 오래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성당 때에는 이백과 두보가 활약하면서 시의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상건도 그 무렵의 시인입니다. 왕창령(王昌齡, 698~765?) 역시 성당 때의 뛰어난 시인입니다. 상건보다 열 살 위였지만, 두 사람은 개원(開元) 15년(727년)..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안수(晏殊)의 「서원(西垣)에 석류꽃이 피다[西垣榴花]」 서원(西垣)에 석류꽃이 피다안수(晏殊) 산 나무에 달콤한 열매 달리나니,맑은 궁중에 뿌리를 내렸구나.시절은 꽃이 흩날려 떨어지는데,홀로 무더운 바람 타고 피어나누나. 西垣榴花晏殊 山木有甘實,托根淸禁中.歲芳搖落盡,獨自向炎風. 안수(晏殊)는 송나라 때의 학자이자 시인입니다. 오랜 전란으로 무너진 학교의 부흥에 힘써 범중엄(范仲淹), 구양수(歐陽修) 등을 길러냈습니다. 「서원(西垣)에 석류꽃이 피다」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요즈음 같은 초여름에 읽기 좋은 시입니다. 서원(西垣)은 서대(西臺), 즉 중서성(中書省)의 별칭입니다. 중서성은 주로 황제의 조칙을 작성하는 등 황제의 비서실 같은 기관으로 황제의 힘이 강화될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궁궐의 서쪽 담 근처에 있었으므로 서대 또는 서원이라고 불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