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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책과 미래] ‘헬조선’을 말하는 청년 햄릿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헬조선’을 둘러싼 사회적 잡담이 치열하다. 카이스트 이병태 교수가 “헬조선이라 빈정대지 마라. 부모들 모두 울고 싶은 심정”이라며, “스타벅스, 배낭여행, 컴퓨터 게임 등 지금 누리는 것 중 청년세대가 이룬 것”은 없으니, “응석부릴 시간에 공부하고 너른 세상을 보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자,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5천년 역사 최고 행복세대의 오만”이라고 거세게 비판하는 등 이에 대한 찬반이 이어지는 중이다.

이 교수가 『햄릿』을 읽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는 마치 햄릿의 이해와 사랑을 갈구하는 거트루드 왕비 같다. 

“아들아, 어두운 낯빛을 버리고 친구를 바라보는 눈으로 덴마크를 보아라. 죽은 네 아버지를 찾지 마라. 흔한 일이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을 수밖에 없어.”

완벽한 헛발질이다. 햄릿의 우울과 고뇌는 단지 아버지의 죽음 탓은 아니다. 신이 금지하는데도 국정 안정을 빌미로 숙부와 어머니가 결혼해 아버지 숙부와 숙모 어머니가 되고, 귀족사회 전체가 이를 견제하기는커녕 지혜롭다고 숭앙하는 세상을 납득할 수 없어서다. 햄릿은 말한다. 

“시간의 관절이 어긋나 있구나. 아아, 저주받을 운명이여,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내가 태어나다니.”

하지만 청년에겐 별다른 수단이 없다. 덴마크는 이미 단단한 감옥이다. 옴짝달싹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아버지가 아들을, 친구가 친구를, 연인이 연인을 감시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보통은 이 타락한 현실과 적당한 타협의 길을 찾지만, 햄릿의 순수함은 갈등과 고뇌를 광기의 언저리까지 밀어붙인다. 이 지옥을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누구나 한 번쯤 읊음직한 명대사다. 햄릿은 인간이 어디까지 고민할 수 있는지를, 어긋난 세계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정신의 극한을 보여준다. 세상을 지옥으로 느끼는 것은 청년의 특권이다. 여기에 어떠한 빈정거림도 없다. 지옥과 같은 세상에서는 고뇌야말로 인간적 고귀함의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된다. 그리고 햄릿의 영원한 매력은 바로 여기로부터 나온다.

헬조선은 청년의 비유다. 비유란 무엇인가. 부조리한 현실을 참을 수 없어 언어로 또 다른 현실을 창조하는 실천이고, 이 사회를 더욱더 좋은 곳으로 바꾸겠다는 약속이다. 따라서 헬조선을 말하는 청년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햄릿이 보여주었듯 ‘다른 현실’을 꿈꾸는 욕망이 있고 이를 이루기 위해 번민하는 한, 인간은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청년들에게 옛날이 진짜 지옥이었고, 지금은 이만하면 살 만하니까 입 닥치고 세상을 긍정하라는 말은 거투르드의 엇나간 충고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