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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서평] 빅데이터 인문학의 출현 검색창에 여름휴가(summer vacation)이라고 쳐 넣는다. 잠시 후 그래프 하나가 화면에 나타난다. 그래프에 따르면, 19세기 초엔 여름휴가라는 말이 많이 쓰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1880년 무렵부터 급상승하기 시작한다. 산업화 덕분에 생긴 삶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름휴가라는 말의 사용은 1915년부터 1941년까지 25년 동안 절정에 이르고, 그 이후 현재까지 역력한 하강세를 보인다. 산업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이 동시에 몰려서 여름휴가를 떠나는 일이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휴가(vacation)는 어떨까? 이 말 역시 19세기부터 조금씩 사용이 늘어나다가 여름휴가와 똑같이 1941년에 이르러 절정을 맞이한다. 그러나 휴가라는 말은 여름휴가와 달리 1960년대 중반 이래로 다시 힘을 ..
에레즈 에이든과 장바티스트 미셸의 『빅데이터 인문학』(김재중 옮김, 사계절, 2015)을 읽다 주말에 서평을 쓰려고 에레즈 에이든과 장바티스트 미셸의 『빅데이터 인문학』(김재중 옮김, 사계절, 2015)을 다시 읽었다. 역시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이다. 아래에 밑줄 그은 것들을 옮겨 둔다. 빅데이터는 인문학을 바꾸고, 사회과학을 변형시키고, 상업 세계와 상아탑 사이의 관계를 재조정할 것이다. (17쪽)호모사피엔스가 남기는 데이터 발자국의 양은 2년마다 두 배씩 늘고 있다. (21쪽)데이터는 “사회적 삶의 일부”다.구글 북스는 단순히 빅데이터가 아니라 롱데이터다. (28쪽)책은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 문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담은 초상화를 제공한다. (29쪽)다윈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사물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렇게 존재하게 됐을까? 우리가 세상을 지금의 모습 그대로 이해하려면 오늘날의 상태를 ..
[오래된 독서공동체를 찾아서] “제주에서, 제주 책 읽으며… 앎과 삶이 하나 됐죠” (제주 남원북클럽) 책을 혼자 읽는 것과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읽는 것은 다르다. 혼자 읽기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거나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함께 읽기는 삶에 우애를 불러오고 공동의 추구를 형성한다. 오랫동안 책을 함께 읽는 것은 결국 삶을 같이하는 일이다. 책으로 자신을 바꾸고, 가족을 바꾸고, 지역을 바꾸는 아름다운 혁명이다. 함께 읽기로 생각하는 시민을 만들어가는 전국의 독서공동체들을 시리즈 ‘책, 공동체를 꿈꾸다’에서 격주로 소개한다. 책읽기 문화와 독서공동체 확산을 위한 한국일보와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공동 캠페인의 일환이다. “제주에서, 제주 책 읽으며… 앎과 삶이 하나 됐죠”[책, 공동체를 꿈꾸다] (1) 제주 남원북클럽 국토 최남단의 독서공동체, 새 삶 꿈꾼 뭍사람들이 시작같이 책 읽고 삼삼..
책의 발견 _초연결 사회에서 출판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 방금 전에 통보받았는데, 이 행사는 메르스 때문에 연기되었습니다. 가을로 연기된 도서전이 다시 열릴 때 다시 공지하겠습니다. 6월 19일 오전 10시부터 제가 사회를 보면서 이중호, 이홍, 박주훈 세 분 출판 전문가를 모시고 서울국제도서전 출판전문가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초연결사회에서 출판의 진화를 고민하고 모색하는 귀한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출판의 미래를 고민하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2015 서울국제도서전 출판 전문가 세미나 1책의 발견 _초연결 사회에서 출판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 오늘날 출판은 모든 것이 연결된 사회에서 이루어집니다. 저자와 독자, 독자와 독자, 저자와 책, 독자와 책이 서로 연결된 데 이어서 책과 책이 연결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출판은 저자와 독자를..
출판을 생각하다 나쓰메 소세키를 만나다 “당신은 뱃속까지 진지합니까?”새벽에 상반기 출판 상황에 대한 글을 쓰다가 문득 나쓰메 소세키의 말이 떠올랐다. 강상중의 『고민하는 힘』에서 마주친 구절이다. 수첩에 슬쩍 적어두었는데, 메모해 둔 자료를 뒤적이다가 중간에 툭 튀어나온 것이다. 얼어붙은 듯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루하루 사는 것은 그냥저냥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의 형태로 내 삶에 출몰하는 세상사를 ‘뼛속까지 내려가서’ 마주하는 것은 어렵다. 햄릿의 대사처럼 세계의 사개가 물러나 있고 이를 바로잡을 운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그 막중한 임무를 외면하고 싶지 않은 이는 누구이겠는가. 지난주 기획회의에 “편집 전략이란 무엇인가요?”라는 글을 보낸 후, 후배 한 사람이 답장을 보내왔다. “편집자의 역할은 과연..
몽테뉴의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_ 츠바이크의 『위로하는 정신』을 읽다 (2) 연이틀 슈테판 츠바이크의 『위로하는 정신』(안인희 옮김, 유유, 2012)을 읽었다. 아침에 시내에 나갈 일이 있어서 지하철에서 어제 읽다 아껴 둔 부분을 마저 끝냈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츠바이크의 글은 한 위대한 정신에 대한 지극한 공명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소리굽쇠의 한 축이 되어 저자의 삶이나 글과 부딪힐 때마다 울음소리를 낸다. 역사적 인물의 복원이 아니라 ‘위대한 현재’를 발굴하는 광부의 솜씨를 가지고 있다. 기이하고 훌륭하고 본받고 싶은 글이다. 서른여섯 살, 아버지가 죽자 유산을 물려받은 몽테뉴는 비로소 홀로 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관심을 둔 것은 영지의 경영이 아니었다. 몽테뉴는 세상에서 물러나 성 안에 있는 작은 성인 ‘치타델레(Zitadelle)’에 서재를 꾸미고 그 안에 틀어박..
글쓰기에 대하여(헤르만 헤세) 작가들에게 글쓰기란 언제나 멋지고 흥미진진한 일이다. 그것은 일엽편주에 이야기 한 편을 싣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것 혹은 우주 속에서 홀로 비행하는 것에 비견된다. 적절한 단 어 하나를 찾아내고 가능한 말 세 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짓고 있는 문장 전체를 감정과 귀에서 잃지 않는 것, 문장을 다듬고 자신이 선택한 구성 방식을 실현하고 구조물의 나사를 조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장 전체 혹은 책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부단히 감정 속에 현전시키는 것. 이 모든 것은 매우 흥미로운 활동이다. ―헤세 올해 열여덟 번째 책은 폴커 미켈스가 편집한 헤르만 헤세의 『화가 헤세』(박민수 옮김, 이레, 2005)이다. 헤세는 문학자로서만이 아니라 화가로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책에 대하여(롤랑 바르트) 문득 바르트 책을 꺼내 아무 곳이나 펼쳐 읽다가 마주친 한 구절. 밑줄이 선명하다. 언제, 그어둔 것일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 욕망만은 선연하다. 나는 읽기를 통해 인생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읽는 자로서의 인생. 그게 다였다. 정말 이게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이었다. “책은 의미를 창조하고, 의미는 인생을 창조한다.” ―롤랑 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에서 아래는 오래전 장석주 선생이 쓴 『일상의 인문학』(민음사, 2012)에서 밑줄 친 구절들인데, 모두 바르트의 것이다. 함께 여기에 옮겨 둔다. “그의 텍스트로부터 와서 우리 생 속에 들어가는 저자는 통일된 단위가 없다. 그는 간단히 복수적인 ‘매력들’이며, 몇몇 가냘픈 세부사항의 장소이고, 그럼에도 싱싱한 소설적 광휘의 근원이며, 다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