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에서 희망을 읽다
집 앞, 당현천 산책길에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지루한 방바닥 구르기와 답답한 마스크 생활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몰려나와 물 따라 난 길을 천천히 걷는다. 따스한 봄볕이 마음을 부추기고, 상쾌한 바람이 생기를 가져오며, 살짝 벌어진 꽃들이 기쁨을 일으킨다. 우연히 마주친 이웃과 가볍게 안부를 나누고 반가운 대화를 즐기기도 한다. 우정과 사랑이 곳곳에서 피어난다.프랑스 철학자 로제 폴 드루아의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백선희 옮김, 책세상, 2017)에 따르면, “모든 이동이 기계화・동력화된” 현대 사회에서 걷기는 “산으로, 숲으로, 들판으로, 바닷가로” 떠나야만 할 수 있는 “특별한 활동”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걷기’는 “인간의 기본적 몸짓, 세상에 존재하는 본래적 방식”이다. “오래 걸을수록 ..
신도시에는 거리의 생활이 없다
어릴 때 살던 서울 약수동 달동네는 골목 천국이었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집들이 복잡하게 맞물리면서 좁고 넓은 길들을 거미줄처럼 뽑아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지나지 못할 골목에서 양보의 미덕을 익혔고, 동네 아이들 비밀 장소인 세 평 공터에서 놀면서 우정을 쌓았으며, 과일, 채소, 생선, 철물, 등유, 곡물, 잡화, 약국 등 구석구석 가게들을 구경도 하고 심부름도 다니면서 셈을 배웠다.약수동 떠나 서른 해 가까이 살아온 동네가 서울 노원이다. 갈대 무성한 드넓은 벌판을 바둑판처럼 정리해 비슷한 건물들을 줄지은 신도시다. 등산할 수 있는 산과 산책할 수 있는 강이 있고, 집 근처 한두 블록 안에 꼭 공원이 있다. 백화점과 쇼핑센터, 종합병원과 대학, 미술관과 과학관, 학원가와 상점가 등도 마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