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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걷기’와 ‘뒤로 걷기’ 《대전일보》에 쓴 칼럼입니다. 올해 초 교토, 나라, 오사카 여행에서 느꼈던 바를 적어 보았습니다. ‘앞으로 걷기’와 ‘뒤로 걷기’ 새해를 여행으로 시작했다. 교토, 나라, 오사카 등을 쏘다니면서 온갖 명승과 유적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다. 스마트폰 어플로 확인하니 걸어 다닌 거리만 100킬로미터를 훌쩍 넘었다. 교토는 고스란하다.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인 천년고도답게, 세월을 얹을수록 아취를 더하는 중이다. 부족한 듯 소박하기에 오히려 마음이 충만해지고, 꾸미지 않아 한적하기에 도리어 마음이 광대해진다. 청수사도, 여우신사도, 금각사도, 메이지신궁의 정원도 좋지만, 교토의 절정은 개인적으로 은각사다. 비바람의 힘만으로 장식한 목조건물들, 굵은 모래흙으로 쌓아올린 탑, 갈퀴로 훑은 듯 꾸민 정원…. 저..
촛불과 출판 《기획회의》 올해의 출판계 키워드로 쓴 글입니다. “불의한 권력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두 가지지.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의 항쟁, 그리고 그 현장의 진실과 사상을 담은 한 권의 책. 그 기록과 기억이 다음에 오는 혁명의 불꽃이기 때문이지.” 『촛불혁명』에서 김예슬이 소개한 박노해 시인의 말이다.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더 편리한 도구가 출현한 지금, 길을 잃고 방황하던 출판의 눈앞에서 때마침 100만 촛불들의 열기가 오랜 적폐의 옹벽을 넘어뜨렸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사회, 새로운 경제, 새로운 생활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넘쳐 나는 이 시대, 우리에겐 이 역동의 현장을 기록할 의무와 함께 담론의 용광로에 앞날을 쏟아 부을 출판 실천이 필요하다. 이러한 실천과 함께, 책의 본질은 기존 권력의 재생산에 불..
[서점, 문화거점을 꿈꾸다·(6)동네 서점에 손 내미는 출판사들]'나만의 책' 찾는 독자들, 틈새시장을 열다 대형·온라인 마케팅서 선회소규모 '한정판 문고' 새바람할인·기념품보다 '물성' 중시책방주인 체험 등 기획 신선 각자 다른 개성으로 무장한 '동네 책방'이 하나둘 생활 주변에 자리 잡으며 대형 출판사의 마케팅 방식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그동안 출판사들은 신간 도서 예약판매나 기념품 증정 행사를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진행했으나, 동네 서점 마케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도서출판 민음사는 지난 여름 전국의 동네 서점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한정판 문고를 발간했다. '쏜살 문고 동네서점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등 2권의 책을 발간했는데, 이 책은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는 구매할 수 없다.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와 서울의 독립서점 '51페이지'의 제..
동네서점은 어떻게 운영되는가 책은 동일본대지진, 자연의 잔혹함이 인간에게 절망을 일으킨 자리에서 시작한다. 사와야 서점의 한 지점인 가마이시 지점은 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지역에 있었다. 전기, 수도, 가스 같은 기반 시설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 도시. 쓰러질 듯 기울어진 주택,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가 곳곳에 산을 이룬 도시에서 사람들은 서점으로 몰려들었다. “어떤 책이라도 좋으니 아무튼 책을 좀…….”서가가 순식간에 텅 비었다. 사람들은 왜 그 지옥 같은 상황에 책을 갈망한 것일까. 책이 없으면 왜 안 되었을까.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가공할 재난을 당해 전기가 완전히 끊어지자, 인간은 책의 소중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책은 필수품이었다.” “서점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다구치 미키토의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책 읽는 대통령 책 읽는 대통령 2017년 현재 합계출산율 1.23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과도한 양육비와 사교육비, 끔찍한 유치원 전쟁, 결혼·출산 후 여성 경력 단절… 아이 낳기 힘든 나라. 그래서 책이 있다. 2016년 OECD 주요국 어린이·청소년 주관적 행복지수 최하위. 자살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다는 대답이 어린이·청소년 5명 중 1명. 아이가 행복하기 어려운 나라. 그래서 책이 있다. 2015년 청년층(25~34세) 고등교육 이수율 세계 1위 69%. 2016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 25만6000원. 학력 없이 잘살기 곤란해 일단 대학부터 가지만, 돈 없이는 공부도 잘할 수 없는 나라. 그래서 책이 있다.2016년 청년층(15~29세) 실업률 9.8%, 2년 연속 사상 최고 ..
문고본은 ‘작은 책’이 아니다 문고본은 ‘작은 책’이 아니다_ 인간과 책이 만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을 때 “책의 세상 자체는 충분히 혁신적이다.”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미디어이지만, 그래서 아무런 변화 없이 이어져 내려온 것 같지만, 출판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책의 혁신이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출판의 위대한 선배들은 다른 분야에서 이룩한 첨단 기술을 수용함으로써 책과 인간이 만나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모험을 포기하지 않았다.출판의 혁신은 대부분 내용과는 별 관련이 없다. 출판의 위기가 일상화되면서, 참신한 콘텐츠와 새로운 기획의 출현을 중요한 대안인 것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독자를 놀라게 하는 콘텐츠는 항상 열광을 불러오므로, 하루를 살아가는 개별 출판사의 차원에서 볼 때에는 그다지 잘못된 이야기만도 아니다..
[낭독 TV] 인간과 책이 만나는 새로운 방법 ‘낭독TV’를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장은수입니다. 인간과 책이 만나는 새로운 방법, 모바일 기반의 슬로 텔레비전 ‘낭독TV’를 시작합니다. 인간과 책이 만나는 방법은 무궁합니다. 눈으로 읽고 머리로 생각하는 ‘묵독’도 있고, 책 하나를 가운데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정담’도 있고, 청중을 앞에 두고 저자 등이 책 이야기를 전하는 ‘강연’도 있습니다. 감명 깊게 읽은 구절을 함께 나누거나, 카드 뉴스를 만들어서 흥미롭게 전달하거나, 서평을 써서 돌려 읽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출판 환경은 책과 인간의 연결을 확장하는 동시에 단절시키고 있습니다. 모바일 콘텐츠 소비가 사회 전체에 확산되면서, 인간과 책을 연결하는 전통적 수단들은 점차로 혁신을 요구받는 중입니다. 특히, 데이터를 서로 교환하는 비용이 무료에 가깝게 떨어짐..
독고준, 정우, 전혜린, 전태일, 또 다른 삶을 꿈꾸다 《문화일보》 서평. 이번에는 박숙자 선생의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푸른역사, 2017)를 다루었습니다. 『속물 교양의 탄생』(푸른역사, 2012)에 이어서 이번에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독고준, 정우, 전혜린, 전태일, 또 다른 삶을 꿈꾸다 박숙자,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푸른역사, 2017) 읽으면서 가슴이 찢겼다. 때때로 울컥하기도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고, 늙으신 어머니가 겹쳤다. 평생을 노동으로 자신을 증명했던 아버지는 ‘죽지 않은’ 태일이었고, 공장에서 ‘다행히’ 정년을 한 어머니는 상경하지 않은 영자였다. 달동네에서 자라 문학을 하고, 또 책을 만들며 살았던 나 자신은 이 책에서 다룬 준과 정우와 혜린의 정신적 파편이자 후예였다.준은 『광장』의 독고준이고, 정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