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

(29)
소설의 진짜 재미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동아일보 인터뷰) 역시 한 달 전쯤 《동아일보》 김지영 기자랑 인터뷰를 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수다도 떨었습니다. 노벨문학상 발표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그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국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어쨌든 북21에서 한국소설의 표지를 분석해서 낸 보고서 내용은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내용 자체의 깊이도 깊이이지만, 이런 시도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독자들은 소설에서 재미와 의미를 함께 얻고자 하는데 한국 소설의 홍보 문구들은 재미는 빼고 의미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소설 카피뿐 아니라 한국 소설의 엄숙한 내용을 아우르는 지적임은 물론이다. 오해가 조금 있을까 봐 덧붙여 둡니다. 소설 자체가 ‘의미를 향한 강박’을 갖..
소셜네트워크에 시를 공유할 때 앞으로는 돈을 내게 될까? 예전부터 시나 소설 등을 온라인 사이트에서 이용하는 데 과금을 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한 번도 그것이 실행된 적은 없었다. 출판은 서점이라는 별도의 판매 채널을 가지고 있고, 온라인에서 독자들이 게시를 통해 시나 소설 등을 주고받는 행위는 사적 친교의 형태이자 오히려 자신을 홍보해 주는 입소문 마케팅의 일종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문예협)에서 음원 사이트와 유사한 시원(詩源) 사이트를 만들어서 블로그, 카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서 시를 공유하는 행위에 대해서 과금을 하겠다는 주장을 한 것 같다. 최근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문예협)가 디지털 음원 사이트와 비슷한 형태의 시 유통 사이트를 구축하기로 해 주목된다. 이 협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어문 저작..
신경숙 표절논란… 의혹 제기와 해명의 윤리(세계일보) 어제 올린 표절 관련 글에 대해 《세계일보》 조용호 선배가 인용해서 기사를 썼다. 아래에 옮겨 둔다. 신경숙 표절논란… 의혹 제기와 해명의 윤리작가 영혼에 상처… 문제 제기 신중 필요…기준 정해 시비 가리되 여론재판 안되야 일본 네티즌들이 자기네 나라 우익 작가의 문장을 한국 인기 작가가 표절했다는 소식에 시끌벅적한 모양이다. 소설가 신경숙(사진)이 자신의 단편 ‘전설’의 내용 중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 한 대목을 차용했다는 소설가 이응준의 문제 제기에 이미 한국에서는 작가 본인의 해명까지 나오는 상황에서도 사안은 가라앉지 않는 형국이다. 출판사 창비에서는 작가의 대답을 빌려 대단히 우익적인 색채의 일본 작가 작품과 신경숙의 그것은 판이하게 다르며, 인용 문장들조차 신경숙이 더 우월하다고 밝..
『무의미의 축제』를 읽고 편집을 생각하다 “내린다는 느낌보다는 공기 중에 가득한 느낌의 가랑비.”새벽에 일어나 이케자와 나쓰키의 『문명의 산책자』(노재명 옮김, 산책자, 2009)를 읽다가 밑줄을 그어 두었는데, 예감일까, 하루 종일 이런 비가 홍동에 내렸다. 도서관 창밖으로 보이는 공기는 맑았던 어제와는 달리 무겁고 축축하지만, 힘껏 집중하지 않으면 비가 내린다는 것을 알아채기 어렵다. 이곳의 소리는 풍부하다. 멀리에서 끊임없이 산비둘기가 운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어루만지는 소리, 엄마를 따라 온 아이들 웃음소리, 건너편 도서관 회의실에서 중학생들이 토론하는 소리도 가끔씩 창턱을 넘어온다. 길 건너 논에서는 벼들이 낟알을 실어 고개가 휘어지기 시작했다. 초록에서 노랑으로 들의 색깔이 막 바뀌려는 참이다. 음력으로 표시하는 자연의 절기는 정확하..
권력의 말과 문학의 말 말의 정의 - 오에 겐자부로 지음, 송태욱 옮김/뮤진트리 오에 겐자부로의 『말의 정의』(송태욱 옮김, 뮤진트리, 2014)는 오키나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그리고 후쿠시마를 문학적 에세이의 형태로 사유한다. 이 세 장소는 “인간의 교만 위에서 성립한 지금의 삶”의 뿌리와 귀결을 드러내는 중요한 공간적 상징이다. 태평양 전쟁 말, 오키나와에서는 강요된 자결이 있었다. 기울어져 가는 전세 속에서 일본군은 도카시키지마 섬 주민에게 ‘집단 자결’을 강요하고, 군대가 건넨 수류탄으로 300명 이상이 자결하고 그러지 못했던 주민들은 한낱 어린아이까지도 가족이 도끼나 낫, 또는 손으로 죽인 사건이 있었다.(오에는 이 사건을 고발해 쓴 『오키나와 노트』 때문에 소송을 당했고, 결국 무혐의로 승소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
드니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3)을 읽다 1마흔이 넘어서야 작품을 비로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있다면, 드니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3)을 첫손에 꼽고 싶다. 사실 이 작품은 예전에도 읽은 적이 있지만, 그때는 지루하기만 하고 어찌 읽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신비로웠다. 몸속의 시계가 작품의 리듬을 새롭게 일깨우는 기분이랄까, 한 방향으로 계속해서 흐르지 않고 군데군데에서 허리가 부러지고 샛길로 새어 나가면서, 독자와 끊임없이 게임을 벌이는 이 안쓰러운 화자, 그러니까 작가의 이야기 솜씨는 신이 빚은 듯 매끄럽고, 흥미로우며, 풍미가 넘쳤다. 때때로 날카로운 잠언이 깊은 생각을 더해 주고, 때때로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가 마음을 끌어당긴다. 2대화..
거대한 여백 - 디자인에 대한 몽상(《디자인》 2012년 7월호) 이 글은 작년 7월에 월간 《디자인》에 실었던 글이다. 게재 직후에 원고 파일을 실수로 삭제하는 바람에 사라졌는데, 북디자인과 관련해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문득 발견했다. 과거에 쓴 글이 어느 날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기분이다. 여기에 옮겨 둔다. 거대한 여백 디자인에 대해서 쓰려 하니 가장 먼저 거대한 여백이 떠오른다. 순전한 흰색, 어떤 문자도 문양도 그 위에 그려질 수 없는 절대 공간. 한창 산을 좋아했을 때, 새벽에 텐트 문을 열고 나오면 첫 빛으로 자태를 드러내면서 망막을 하얗게 태우고 언어의 길을 단숨에 끊어버렸던 눈 내린 직후의 흰색 산야. 어느 한밤중 문득 자다 일어나 꿈속에서 썼던 아름다운 시를 끼적여보려고 대학 노트를 여는 순간, 형광등 아래에서 날카롭게 빛을 뿜어내 머릿속의 리셋 ..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박용준 옮김, 궁리, 2013)를 읽다 올 가을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 중 하나가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박용준 옮김, 궁리, 2013)이다. 이 책은 세계적인 법 철학자로 정치 철학의 대가인 누스바움이 시카고 대학 학생들과 함께 진행한 ‘법과 문학’이라는 강의의 결과물이다. 이 책의 중심에는 “좋은 시민이 되는 데 왜 문학을 읽는 것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다. 누스바움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 『어려운 시절』을 밑 텍스트로 삼아 이 질문에 뒤따르는 여러 문제를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풀어 간다.누스바움에 따르면, 문학의 힘은 독자들에게 타자의 삶에 대한 공감하도록 하는 능력에 있다. 나와는 다른 삶의 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고 그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 것은 사회공동체 속에서 성숙한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