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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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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마케팅, 어떻게 할까 이 글은 《기획회의》 419호(2016년 7월 5일)에 발표한 것이다. 문학 마케팅의 기본을 확인하고 이를 정리해 두려는 목적으로 썼다. 문학의 마케팅이 다른 책의 마케팅과 특별히 다른 점은 없겠으나, 작품은 그 비목적성과 작가 브랜드가 월등히 중요하다는 점에서 차별화 요소가 있다. 아래에 옮겨 둔다. 문학의 마케팅, 어떻게 할까 초여름 밤, 갑자기, 번개가 이루어졌다. 사실, 흔히 있는 일이다. 전화와 문자로 사발통문을 돌려 편집자들, 작가들, 기자들이 모여들고, 문학에 대한 온갖 이야기가, 여기저기 건너뛰면서, 활짝, 꽃을 피운다. 그러다 그날은, 어느새, 문학의 마케팅을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기억이 선명하다. 평소, 만드는 이야기는 많이 해도, 파는 이야기는 거의 안 한다. 마음에 상처 날까 ..
[21세기 고전] 망각을 강요하는 권력과 싸우다 _김탁환의 『방각본 살인사건』(민음사) 한 인간의 죽음, 그중에서도 살인을 소설화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한 작가의 진정한 재능은 심지어 이 주제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느냐에 달려 있다고까지 할 수 있다. 살인으로 이어지는 연속적 과정의 개연성을 온전히 구축하는 일만 해도 보통 난해한 일은 아니다. 재능 없는 작가들은 서사적 가치가 없는 우발로 처리하거나, 원한과 복수라는 흔해빠진 구조에 호소하거나, 사이코패스 같은 타고난 살인마를 출현시키는 등 삼류의 수법을 통해 살인의 이유를 독자들에게 떠넘기는 지적 태만을 보인다. 물론 그러한 태만에 속아 넘어가는 독자는 사실 거의 없다. 그래서 베스트셀러 등 출판 당시의 사회적 주목 여부와 상관없이, 살인을 그려낸 작품 중에 시간의 시련을 이길 정도로 훌륭한 소설이 거의 드물지도 모른다.현실에서든 이야기..
자유를 향한 무섭고 끔찍한 갈망 _한강의 『채식주의자』(창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영예를 안은 한국문학의 쾌거입니다. 예전에 경향신문에 썼던 서평을 블로그로 옮겨서 기념합니다. 자유를 향한 무섭고 끔찍한 갈망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어느 날, 불쑥, 마음속으로 문장이 일어선다. 아침을 챙기려고 문득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일 수도 있다. 바쁨과 분주함 사이 올려다본 눈으로 파란 하늘이 끼어들었을 때일 수도 있다. 하루를 지내고 노란선 바깥에서 지하철을 멍하니 기다릴 때일 수도 있다. 아무튼, 무조건, 찾아온다. 삶의 의미를 신으로부터, 자연으로부터, 공동체로부터 얻지 못하고 스스로 길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은 인생이 습기를 잃어 ..
소설을 읽을 때 우리 머릿속에 일어나는 일들(오르한 파묵) 소설을 읽을 때,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1우리는 전체 풍경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우리가 마주치는 것들이 어떤 의미가 있고 주제가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하면서 읽습니다. 2 우리는 머릿속에서 단어를 그림으로 전환합니다. 단어들이 설명하는 것들을 상상 속에서 떠올리면서, 우리 독자들은 이야기를 완성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서술자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말하려고 한 것, 또는 말했다고 우리가 추측하는 것을 추적해 나갑니다. 3우리는 작가가 설명한 것 가운데 어디까지가 경험이며,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궁금해 합니다. 소설 읽기란 가장 깊이 빠졌을 때조차 ‘어디까지가 상상이며, 어디까지가 경험일까?’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하는 것입니다. 소설 읽기는..
[21세기 고전](2) 문학은 참혹한 현실에서 황금빛 새를 기르는 일이다 _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경향신문》에 한 달에 한 차례 ‘21세기 고전’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21세기 고전’은 2000년 이후 출간된 도서 가운데 다시 곱씹어 읽을 만큼 깊이와 넓이를 지닌 책, ‘이 시대의 고전’ 반열에 오를 책을 전문가들이 분야별로 엄선, 주 1회 서평으로 소개합니다. 제가 맡은 부문은 문학 부문입니다. 김훈의 『칼의 노래』(2001)에 이어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2002)를 소개합니다. “글씨가 있는 세상은, 참 놀라운 세상이란다.”아홉 살 동구는 아직 글씨를 읽지 못한다. 속 깊고 정 넘치는 아이이지만, “언어적 성장이 교란”(도정일)되어 있다. 그런데 동구가 글씨를 못 읽는 것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 탓이다. 못 읽어서가 아니라 너무 잘 읽어서다. 언어의 내포와 외연, 사람이 표현하고 싶..
나는 선택하기를 거부한다 ―살만 루슈디의 『이스트, 웨스트』(김송현정 옮김, 문학동네, 2015)를 완독하다 나 역시 목에 밧줄이 감겨 있었고, 오늘날까지도 그 밧줄이 나를 이리저리로 끌어당기고 있다. 동과 서, 그 팽팽한 끈들이 명령한다. 선택하라, 선택하라.나는 껑충껑충 뛰고, 콧김을 내뿜고, 히힝 울고, 뒷발로 서고, 발길질을 한다. 나는 어떠한 밧줄도 선택하지 않는다. 올가미, 올무, 그중 어떠한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듣고 있는가? 나는 선택하기를 거부한다. ―살만 루슈디, 「코터」, 『이스트, 웨스트』, 김송현정 옮김(문학동네, 2015), 232쪽 『이스트, 웨스트』를 드디어 완독하다. 작년 가을에 선물로 받아서 조금씩 아껴서 읽던 작품이다. 이 책에 담긴 아홉 소설들은, 동양과 서양 사이에 끼여서 정체를 이룩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주로 동양인으로 태어나 그 문화 속에서 정..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김명남 옮김, 창비, 2016)를 읽다 연휴에 틈틈이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김명남 옮김, 창비, 2016)를 읽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이 뛰어난 영어 작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아프리카적 현실 속에서 인간적 삶의 위엄을 이룩하려는 인물들을 작품으로 그려왔다. 이 책은 지나치게 소품이고, 페미니즘이라는 상식적 가치를 다루지만 저자 특유의 이야기 솜씨가 읽기에 리듬과 활기를 부여한다. 스무 살이 된 딸에게 꼭 읽어 보라고 권하려고 한다.그러나 이 책을 이야기할 때에는 아디치에가 소설가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녀의 작품은 아직 우리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빠짐없이 번역되었기에 쉽게 구해서 읽을 수 있다. 나는 처음 접할 때부터 그 작품들이 마음에 들었고, 한국에 소개하기로..
일본소설이 많이 출간되는 이유(연합뉴스) 연합뉴스와 같이 2011년부터 현재까지 소설 출간 종수 및 판매 동향을 분석했습니다. 일본 소설의 출간 증가세가 상대적으로 가팔랐습니다. 국가별 상세자료는 받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소설시장 전체와 대비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국내소설 출간 종수 및 판매 동향의 경우는 따로 자료 요청을 못해 아쉬웠습니다. 이 자료와 함께 보면 훨씬 유의미한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아래 기사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일본 소설의 출간 종수는 지난 4년 동안 매년 꾸준히 늘어서 지난 11월 말 기준으로 전체 소설 출간 종수(7,074종)의 15.4%에 이르렀습니다. 4년 전에 비해 종수 기준으로 무려 23%가 늘었습니다. 물론 소설 출간 종수 전체도 6,413종에서 7,074종으로 10.3% 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