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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권력의 말과 문학의 말

말의 정의말의 정의 - 8점
오에 겐자부로 지음, 송태욱 옮김/뮤진트리


오에 겐자부로의 『말의 정의』(송태욱 옮김, 뮤진트리, 2014)는 오키나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그리고 후쿠시마를 문학적 에세이의 형태로 사유한다. 이 세 장소는 “인간의 교만 위에서 성립한 지금의 삶”의 뿌리와 귀결을 드러내는 중요한 공간적 상징이다. 

태평양 전쟁 말, 오키나와에서는 강요된 자결이 있었다. 기울어져 가는 전세 속에서 일본군은 도카시키지마 섬 주민에게 ‘집단 자결’을 강요하고, 군대가 건넨 수류탄으로 300명 이상이 자결하고 그러지 못했던 주민들은 한낱 어린아이까지도 가족이 도끼나 낫, 또는 손으로 죽인 사건이 있었다.(오에는 이 사건을 고발해 쓴 『오키나와 노트』 때문에 소송을 당했고, 결국 무혐의로 승소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 전말을 부분부분 다루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집단 자결로 내몰린 사람들” 등과 같이 말을 교묘하게 만들어 이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는, 더 나아가 애국적 행위로 미화하려는 움직임에 맞서 오에는 작가답게 말의 정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싸워 나간다. 오에는 말한다. 


문장에서 주어를 감추고 수동태 문장을 만들어 앞뒤를 맞춤으로써 문장의 의미(특히 그것이 밝혀 주는 책임)를 모호하게 한 것입니다. 이는 일본어를 사용하는 우리가 빠지기 쉬운 과오, 때로는 의식적으로 당하는 확신범의 속임수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인용을 고쳐 씀으로써 자신을 단련해야 합니다.(75쪽) 


권력의 언어를 통찰하고 그와 대립적으로 말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언어를 통해 인류의 모럴을 책임져 온 문학자로서 오에는 이 에세이에서 “자신을 단련하는 법”, 즉 비권력적 언어 사용법을 구축하려는 그의 길고 오랜 투쟁을 보여 준다. 전반적으로 문체는 다소 드라이하지만, 그에 담긴 사유는 끝없이 깊어서 발을 담그면 머리끝까지 빠질 것 같다. 

오에 겐자부로는 오키나와에서 있었던 강요된 집단 자살 사건의 책임이 모호한 채로 처리되었기 때문에, 그 결과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나날의 희생을 강요하는 후텐마 미군 기지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았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 문제를 인류의 관점에서 명확히 사유하지 않기 때문에, 핵 억지력이니 핵의 평화적 이용이니 하는 모호한 표현이 사유를 파고들었고, 그 결과 동일본대지진이 불러온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대재앙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정치 사회적 문제를 깊이 다루지만, 이 책은 근본적으로 문학의 영역 바깥으로 좀처럼 나가지 않는다. 오에는 이 문제들을 평생 작품을 통해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말의 형태를 명확히 부여하려 애써 온 본인의 문학적 작업과 결부해서 사유하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오에는 말의 길이 끊어지는 지경에 이르러 고뇌하면서 사태가 언어에 남긴 희미한 흔적을 더듬어(“목소리 없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 작품을 이룩하는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면서 일본어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그 작업을 오에 겐자부로는 ‘고쳐 쓰기’라고 부른다. 누군가가 오랜 탐구 속에서 이룩한 것들을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들여서 다시 쓰는 것, 그로써 정치적, 사회적 탐구에 문학의 옷을 입히는 것이 오에 겐자부로의 수법이다.(그는 이를 시동(尸童, 사람이 죽은 후 그 시신 곁에 나타나는 아이)의 역할이라고 부른다.) 


오랫동안 해 온 소설가로서의 일은 (중략) 자신의 속 깊은 곳을 매우 거친 외부와 맞대고 문질러 거기에서 표현의 리얼리티를 달성하는 것이었고, 저의 삶도 그것으로 단련되었던 것 같습니다.(116쪽) 

제 인생의 행복은 학자 친구의 저작을 문학의 현장으로 끌어당겨 자신의 습관에 따라 읽어내고 직접적인 대화로 그것을 심화하는 일입니다.(222쪽) 


이와 같이 이 책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문학론으로 읽기에 충분하다. 「새로이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사람에게」라는 제목 아래 쓰인 다섯 편의 글은 그 자체로 간결하고 훌륭한 창작방법론에 해당한다. 또한 에드워드 사이드, 귄터 그라스, 밀란 쿤데라, 오르한 파묵 등의 책에 대한 오에의 독서는 좋은 독후감의 한 모범이자 읽기가 쓰기와 어떻게 연결되면서 서로를 빛나게 하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가 된다. 

마지막 부분에 오에 겐자부로가 밀란 쿤데라의 『커튼』에 나오는 표현을 빌려 다짐하는 것은 지금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정의한다. 그것은 문학이면서 문학을 넘어선다. 


어떤 소설가도 우선 손쉬운 일부터 시작하여 근본적이지 않은 모든 것을 배제하고 자신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본질적인 것의 모럴을 주장해야 한다.(362쪽) 


모럴의 주장, 즉 새로운 윤리학의 수립. 세월호 사건이 보여 주듯, 이제 이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오에 겐자부로의 『말의 정의』를 읽으면서 다시 이를 생각한다. 오에가 옮겨 적은 미야타 미쓰오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긴다. 


이른바 풍요로움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설령 가난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견디는 한이 있더라도,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진실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지금이야말로 깊이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지금 인간인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355쪽)

http://bookedit.tistory.com2014-05-12T13:14:550.3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