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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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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에 헌신하는 삶을 위한 세 가지 방법 그러니까 스페인 여행 이후, 나는 조금 더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말라가의 푸르른 지중해 바다 앞에서, 문득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는가 하는 물음이 떠올랐는데, 여행 내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읽기만이 내 인생의 유일한 근거였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읽는 것이 나의 도약대이자 진지이고 무덤이어야 하는 것이다. 편집자의 삶이란, 읽고 쓰는 일에는 오히려 지쳐 있기 마련이어서 자칫하면 진행하는 책 외에 자발적 독서가 증발하는, 읽기의 사막에 사는 데 익숙해지기 쉽다. 책을 둘러싼 수많은 전략과 전술의 난무가 읽기의 순박한 즐거움을 앗아 버리는 역설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 정신의 정화인 책을 다루는 편집자가 정신적 공허에 시달리는 기묘한 삶의 아이러니.스페인에서 돌아오면서 나는 앞으로..
김영하,『아랑은 왜』(문학동네, 2010)를 읽다 김영하,『아랑은 왜』(문학동네, 2010)를 읽었다. 김영하 소설을 모두 모아서 읽기 시작한 게 6월 중순이었으니 벌써 두 달이 지난 셈이다. 그동안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문학동네, 2010), 『호출』(문학동네, 2010),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문학동네, 2010)에 이어 네 번째 작품이다. 그 사이에 신작 경장편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 2013)을 읽었으니 모두 다섯 권의 작품을 읽었다. 쌓아 놓고 읽는 작품들이 많아서 본래 예상보다는 조금 늦어지고 있지만, 빠르다면 빠르고 느리다면 느린 템포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아랑은 왜』를 읽고 난 후 일종의 회고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작품이 아니라 작품 바깥의 일들이 더 많이 떠올랐던 것이다.『아랑은 왜』는 아..
여름에 읽기 좋은 우리 문학 예스24에서 여름마다 내는 전자 잡지 《문학의 숲을 거닐다》의 기획 코너 ‘여름에 읽기 좋은 우리 소설’에 짤막한 글을 하나 썼다. 아래에 옮겨 둔다. 문학과 관련해서 세상에 떠도는 말들 중 듣기 괴로운 말이 있는데, 이른바 ‘문단 4대 천왕’과 같은 말이다. 어디에서 연유한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공지영, 김훈, 신경숙, 황석영 등 소설책을 내기만 하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작가들을 가리키는 말인 듯한데, 이건 무슨 무협 세계도 아니고, 말초적 호기심을 달구어서 세속적 관심이나마 끌어 보려는 속셈이 어쩐지 아프고 불편하다.문학이란 제자리에서 각자의 모양으로 피어나는 야생초와 같다. 네 가지 풀 말고도 어떤 풀이든 상관없이, 이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삶의 온실 가스를 빨아들여 청량한 산소로 바꾸어 ..
치누아 아체베, 세상을 떠나다 나이지리아의 소설가 치누아 아체베가 세상을 떠났다. 82세였다. 젊을 때부터 읽고 마음에 간직해 왔던 문학과 사상의 대가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나이들어 감의 한 증거일까. 비워지는 것은 늘어만 가는데, 채워지는 것은 간혹이다. 쓸쓸한 감정에 주말이 즐겁지 않다. 치누아 아체베는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1958)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19세기 말 아프리카의 한 부족 마을이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인해 해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탈식민주의 소설의 명작이다. "자네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평생 동안이나 추방당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아는가? 얌도 자식까지도 모든 것을 잃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아는가? 난 한때 아내가 여섯이었지. 지금은 왼쪽과 오른쪽도 구별 ..
소설 플롯을 짜는 데 도움이 되는 열 가지 질문 미국의 소설가 로저 콜비(Roger Colby)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서 「소설 플롯을 짜는 데 도움이 되는 열 가지 질문」을 올렸다. 미국적이지만 재밌어 보여 간단히 번역해 소개한다. 1)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사건은 무엇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2) 당신 또는 당신이 아는 누군가에게 그 일이 어마어마하게 부당하다고 느꼈던 사건은 무엇인가?3)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가? 만약 당신이 작가라면 그 영화를 어떻게 마무리했겠는가?4) 좀비 종말 시대가 왔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5) 당신은 어떤 종류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는가? 그중 두 가지 이야기를 골라서 두 이야기를 섞어서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라.6)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어디로 가서 어떤 날짜에 돌아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