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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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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걷는 사람들 얀 마텔의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는 뒤로 걷는 사람들이 나온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자들의 독특한 애도 방식이다. 뒤로 걷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지나온 시간을 복기하며 등으로 밀고 나가는 걸음이다. ―강의모 ===== 아침에 일어나 SBS ‘책하고 놀자’ 강의모 작가의 『살아 있는 한, 누구에게나 인생은 열린 결말입니다』(목수책방, 2019)를 읽었다. 목수책방의 새로운 기획 ‘읽는 사람’의 첫 책이다. 읽는 삶을 둘러싼 짤막한 에세이 한 편이 먼저 나온다. 생각하는 일상을 사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데, 책과 함께하는 삶을 다룬 에세이 한 편 한 편이 생생하다.이어서 나오는 코너는 ‘읽으며― 읽어 갑니다’라는 덧말 꾸러미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구절 놀이 할 때 흔히 하..
사랑할 수 있는 지겨움 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자꾸 섭외에 신경 쓰게 돼. 그게 제일 티가 많이 나거든. 안에서 '그 피디 열심히 하네.' 소리도 듣기 쉽고, 밖에서 기사도 많이 나고.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매일 하는 코너야. 오프닝 같은 거 있잖아. 매일 반복하는 코너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그 프로그램의 성패를 결정하는 거야. _장수연,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라이킷, 2020) 중에서 MBC 라디오 장수연 PD의 에세이집.오후에 눈에 들어와, 한 시간, 가볍게 읽다. 어떤 일이든, 핵심은 반복에 달려 있다.나쁜 회사들은 리더가 매일 규칙을 바꾸고,그 때문에 점점 나쁜 회사가 된다.좋은 회사는 어제 한 일을 오늘 또 하고,그럴수록 점점 좋은 회사가 된다. 사랑할 수 있는 지겨움이 있다면,잘 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시와 지성 (보들레르) 오래전 나는 시인이 더할 바 없이 지성적이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시인은 지성 그 자체이고, 상상력이 [정신의] 기능들 가운데 가장 과학적이라고 한 적도 있다. 상상력만이 보편적 유추 또는 신비 종교에서 교감이라고 부르는 바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_보들레르 =====아무렴!!! 시적 상상력이야말로 가장 지적이고 과학적인 사고 형태라는 걸 모른다면, 시를 쓰는 건 고사하고 읽을 수조차 없다.
테니스의 미학이 탄생하다 스포츠가 예술의 일종임은 누구나 안다. 아름다우니까. 위대한 선수들은 모두 인체의 물리학을 위반한다. “인간 안에서 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초월”을 실행한다. ‘아!’ 하는 외마디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동작의 기적적 응축. 언어의 길을 완벽하게 무너뜨리는 순간적인 창조가 거기에 있다. 오랜 연습을 통해 인간의 모든 움직임을 극한에 이를 때까지 단련한 후에도, 아주 잠깐 동안만 구현할 수 있는 힘의 엄청난 약동. 그런데 순간은 예술이 아니다. 찰나의 덧없음을 영원의 형태로 붙잡아 둘 수 있는 미학적 힘이 있어야 비로소 예술이 된다. 위대한 선수들의 자서전은 흔히 자신의 아름다운 움직임을 예술로 만드는 데 실패한다. 잘못은 없다. “한 번에 공 하나씩” 같은 언어적 클리셰에 대한 완전한 믿음과 게임에서 이를 ..
이미… ‘미국의 세기’는 저물고 있다 세계의 심장이 부활하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은 “세계 인구의 75%, 에너지 매장량의 75%, 세계 총생산의 60%를 보유”하고 있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 동안 이곳이 “지정학적 중심축”이었으며, 서반구와 오세아니아 등은 “지정학적 주변부”에 불과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서구 여러 제국은 함선 등 과학기술을 활용해 기동력을 확보함으로써 이 심장을 해양에서 포위하는 식으로 패권을 얻었다.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미국 등이 모두 같은 지정학적 전략을 사용했다. 그러나 경제 대국으로 일어선 중국의 거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철도와 고속도로, 석유와 천연가스 수송관 등이 유라시아 내륙에 들어서면서 유라시아 전체가 하나로 통합돼 ‘세계섬’을 이룩하는 ‘대전환’이 시도되는 중이다. 제국이란 “강대국이 직접 통치..
프랑스 카페의 역사 카페의 기원카페(cafe)라는 말은 터키어 카흐베하네(kahvehane)에서 연유한다. 카르베하네는 카흐베(kahve, 커피)와 하네(hane, 여관 또는 선술집)가 합쳐진 말이다. 카흐베의 어원은 카흐와(quhwa) 또는 카와(khawah)인데, 이 말은 ‘자극과 활기를 불어넣다’는 뜻이다. 커피는 본래 이슬람 수피들이 종교의식을 위한 신성한 각성제로 이용했다. 현세 부정의 화신인 수피들이 철저히 비사교적이었던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카페는 ‘활기를 불어넣는’ 커피의 힘을 이용해 활발한 사교의 장을 열어젖힌다. 카페는 커피가 본래의 종교적 기능을 잃고, 세속화하면서 생겨난 사교 공간에서 출발했다. 카페의 나라 프랑스프랑스는 ‘카페의 나라’이며, 세계 카페 문화의 중심지이다. 1686년 카페가 처음 생겨난..
북튜버는 어떻게 돈을 버는가 유튜브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최소한의 조건이란 구독자 수 1000명, 시청 시간 4000시간입니다. 둘 모두를 충족해야 하므로 꽤 어렵습니다. 채널에 정기적으로 방문할 의사가 있는 사람이 1000명을 넘어야 하고, 사람들이 실제로 시청한 시간의 총합이 4000시간, 즉 24만 분을 넘어야 합니다. (중략) 시청자가 광고를 건너뛰지 않고 충분히 오랜 시간 보면 유튜브와 유튜버에게 광고 수익이 돌아갑니다. 혹은 영상 중간의 결정적인 순간에 광고를 삽입할 수도 있습니다. (중략) 유튜브를 통해서 돈을 버는 또 다른 방법은 생방송에서 후원을 받는 것입니다. (중략) 또 하나 채널 멤버십 서비스를 통해서도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이 역시 후원의 개념입니다. (중략) 현재 북튜..
편집자로 일하면 좋은 세 가지 이유 편집자는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최고의 직종이다. (중략) 첫 번째, ‘재능 칵테일’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 편집자는 한 번이라도 대면하면 인생을 격변시켜 줄 만한 천재들을 매일 만난다. (중략) 독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한 권의 책을 통해 가장 많이 성장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편집자다. (중략) 두 번째,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편집자의 일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 시대는 상품의 기능이나 가격에서 큰 차이가 없다. 앞으로는 ‘상품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중략) 그것은 편집자가 가장 잘하는 일이기도 하다. (중략) 세 번째, 사람의 감정을 감지하는 후각을 연마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무엇에 울고, 무엇을 고민하고,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