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7/05

(9)
[서점의 미래] 쓰타야 서점 비판 오늘 모 신문에 쓰타야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시골 소도시에 10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모은 다케오 시립도서관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드는 땅에 서점을 연 긴자서점 이야기도 함께 실려 있다. 모두 쓰타야가 주도한 일이다. ‘리딩 엔터테인먼트’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코엑스몰이나 현대백화점에 생긴 도서관 등도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겠다.쓰타야의 혁신 스토리는 정말 놀랍다. 스페이스 비즈니스를 책을 이용해서 혁신한 일은 거의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쓰타야가 서점의 미래는 아니다. 도서관의 미래는 더욱더 아니다. 출판의 미래는 당연히 될 수 없다. 예전에 쓰타야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블로그에 공유하기에는 적당하지 못하다 싶어서 놓아두었다. 하지만 쓰타..
[21세기 고전] 복종을 금지하고 제멋대로 말하자 - 박형서의 『자정의 픽션』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21세기 고전. 이번에는 박형서의 ‘침 같은 작품’ 『자정의 픽션』을 다루었습니다. 이 작품, 참 입이 걸죠.^^ 자유롭게 해방된 말들이 넘쳐납니다. 야유와 풍자를 통해 울음을 만드는 기이한 미학이 여기에 있습니다. 복종을 금지하고 제멋대로 말하자박형서, 『자정의 픽션』(문학과지성사, 2006) 박형서는 아주 “막나가는” 작가다. 평론가 김형중의 말이다. 이 평가는 중요하다. 조심하고 절제하는 금욕을 통한 축적은 이 시대의 윤리가 아니다. 미리 쓰고 나중에 갚는 신용 있는 허풍선이야말로 찬양받는 시민의 모델이다. 발끝으로 더듬대고 눈치를 돌리면서 한껏 조심해 봐야 이곳에서 미래라 해 봐야 청년 실업과 중년 해고와 노인 파산으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그러니 카르페 디엠(Carpe Di..
힘의 역사는 실크로드로 흐른다 _ 피터 프랭코판의 『실크로드 세계사』를 읽다 이번 《문화일보》 서평은 피터 프랭코판의 『실크로드 세계사』(이재황 옮김, 책과함께, 2017)를 다루었습니다.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세계를 조망하는 정말 대단한 역작입니다. 과거의 세계가 아니라 오늘날의 세계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읽자마자 냉큼 아이들한테 넘겼습니다. 이런 책은 젊은이들한테 꼭 읽혀야 합니다. 시야를 열어 주니까요. 힘의 역사는 실크로드로 흐른다피터 프랭코판, 『실크로드 세계사』(이재황 옮김, 책과함께, 2017) “2000년 전, 중국산 비단옷은 카르타고와 지중해 지역의 다른 도시들에 사는 부유하고 권세 있는 사람들이 입었으며, 남부 프랑스에서 생산된 도자기가 잉글랜드와 페르시아 만 지역으로 흘러들어 갔다. 인도의 향신료와 양념이 신장의 부엌뿐 아니라 로마의 부엌에서도 사용되었다. 북부..
제4차산업혁명?! 코딩교육보다 차라리 교과서를 폐지하자 며칠 전 자주 이용하는 논문 사이트 첫 화면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다운로드 숫자가 가장 많은 논문 열 편의 제목에 모두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이 정도면 제4차 산업혁명은 업계의 호들갑을 넘어선 국가적 재앙에 가깝다. 학자들 공부가 편벽되면 사회 전체가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정부 부처는 또 어떤가. 가는 곳마다 모두 제4차 산업혁명 타령이다. 이 말만 쥐고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요술방망이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제4차 산업혁명은 이 시대의 남근숭배다. 절대적 쾌락을 보장할 것 같아서 모두가 제사에 참여하고, 자신도 참여했다는 사실로부터 얻는 미시권력적 위안에 몸을 떠는 중이다. 초연결성에 기반을 둔 사회의 혁신은 분명히 일어나는 중이다. 누구도 이 흐름에서 예외일 수는 없..
동네서점은 어떻게 운영되는가 책은 동일본대지진, 자연의 잔혹함이 인간에게 절망을 일으킨 자리에서 시작한다. 사와야 서점의 한 지점인 가마이시 지점은 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지역에 있었다. 전기, 수도, 가스 같은 기반 시설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 도시. 쓰러질 듯 기울어진 주택,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가 곳곳에 산을 이룬 도시에서 사람들은 서점으로 몰려들었다. “어떤 책이라도 좋으니 아무튼 책을 좀…….”서가가 순식간에 텅 비었다. 사람들은 왜 그 지옥 같은 상황에 책을 갈망한 것일까. 책이 없으면 왜 안 되었을까.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가공할 재난을 당해 전기가 완전히 끊어지자, 인간은 책의 소중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책은 필수품이었다.” “서점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다구치 미키토의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책 읽는 대통령 책 읽는 대통령 2017년 현재 합계출산율 1.23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과도한 양육비와 사교육비, 끔찍한 유치원 전쟁, 결혼·출산 후 여성 경력 단절… 아이 낳기 힘든 나라. 그래서 책이 있다. 2016년 OECD 주요국 어린이·청소년 주관적 행복지수 최하위. 자살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다는 대답이 어린이·청소년 5명 중 1명. 아이가 행복하기 어려운 나라. 그래서 책이 있다. 2015년 청년층(25~34세) 고등교육 이수율 세계 1위 69%. 2016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 25만6000원. 학력 없이 잘살기 곤란해 일단 대학부터 가지만, 돈 없이는 공부도 잘할 수 없는 나라. 그래서 책이 있다.2016년 청년층(15~29세) 실업률 9.8%, 2년 연속 사상 최고 ..
[풍월당 문학강의] 어떻게 이 부조리한 생을 사랑할 것인가 2 -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문학을 왜 읽고 또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이 죽도 밥도 안 되는 언어들이 어떻게 해서 우리를 이토록 매혹하는 걸까요. 문학으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아무래도 우리는 불완전한 사람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의문들을 마음에 담아서 한 달에 한 번 서울 강남 압구정동에 있는 풍월당 아카데미에서 고전문학을 같이 읽고 있습니다. 요즈음 같이 읽는 것은 실존의 문학들입니다. 지난달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었고, 이달에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습니다. 이 작품들은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세상에 던져져 죽음의 불안에 사로잡힌 우리 비루한 현대인들에게 참된 용기와 자유를 연습하게 해줍니다. ​ 강의 신청은 여기서 해주세요. http://www.pungwoldang.kr/board_lec/con..
돌이 눈뜨는 시간을 찾아서 _ 문학은 죽음을 견디는 것이다 《중앙선데이》 칼럼, 이번에는 설악산에 가족 여행을 했을 때 느꼈던 바를 하이데거, 엘리엇, 릴케의 시를 읽으면서 곱씹어 보았습니다. 속초는 ‘신이 깃든’ 땅이다. 설악이 있고, 동해가 있다. 머무르는 것과 움직이는 것이 동시에 이 도시에서는 ‘영원성’을 얻는다. 아내와 나, 딸과 아들, 네 식구가 틈을 얻어, 산의 울림을 품었다 바다의 소리를 들었다. 스무 살, 홀로 또는 친구와 온 곳을, 서른 해 건너, 같은 나이 아이들과 함께, 아내의 손을 쥐고 걷는다. 하이데거는 말한다. 숲은 고요히 쉰다./ 계곡물은 쏟아진다./ 절벽은 영구하다./ 비는 똑똑 듣는다.// 밭은 기다린다./ 샘물은 솟는다./ 바람은 거주한다./ 축복은 곰곰 생각한다. 여기에 여덟 줄로 응축된 만물이 있다. 숲은 고요하고 물은 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