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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혼밥과 외로움

그동안 스스로 결정해서 혼자 먹는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왜 혼자 밥을 먹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현미밥을 씹듯 오래 곱씹었다. 그러다 결론에 이르렀다. 인간관계에서 추방되어 혼자 먹게 되었다고.

혼자 먹는 일이 자유로운 선택이었다면 다른 사람과 함께 먹겠다는 선택 역시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누군가와 먹고 싶다고 해서 함께 먹을 수 있지 않았다.

혼자 먹는 건 자유라는 이름으로 강제되는데, 홀로 밥 먹는 게 간편하다고 스스로 정당화했다. 인간관계를 상실해서 고독하게 밥 먹고 있다고 자각하는 건 괴로우니까.

이러한 정당화를 간파한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시장에 종속된 채 고독과 고립에 굴복하도록 강요받는데, 이때 자신의 고립을 자신이 선택한 최선의 결정으로 간주하도록 유혹받는다고.

_ 이인, 『고독을 건너는 방법』(에이도스, 202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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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답니다.

이인의 책은 『우리, 대한미국』(명랑한지성, 2017)에 이어 이번에 두 번째로 읽었다.

이 책은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개인 체험과 고독 공부를 단단히 결합한 일종의 지적 에세이다.

코로나19를 맞이해서 몰려드는 외로움을 이해하고 극복하고 나아가 즐기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책 뒤의 독서 목록이 말해 주듯, 시집에서 인문학, 사회학, 생물학, 의학 등 수십 권의 책들을 한 권으로 집약해 놓았다.

지난번 책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내용을 덜어내고 사례를 풍부하게 넣으면서 글의 밀도를 낮추고 속도를 늦춘다면 더 좋은 필자가 되겠다 싶다.

좋은 필자는 속도에 대한 감각이 있다. 독자가 곁에 있는지 안다. 이건 훈련되는 것인지, 처음부터 타고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어느 정도까지는 나아진다.

 

이인, 『고독을 건너는 방법』(에이도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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