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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문득문득 편집이야기

출판 전문지의 임무 ―《기획회의》 20주년에 부쳐


출판과 출판사는 다르다. 출판은 개별 출판사의 활동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을 지속적으로 넘어선다. 독자들 삶에 촉수를 뻗고 각각의 접점을 추구하는 개별 출판사의 활동과 달리, 출판은 ‘출판다움’을 성찰하고 조직하며 또 추구한다. 출판사의 일과 출판의 일은 긴밀히 이어져 있으되, 그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분명한 점은 출판이 출판사 너머에 있지 못할 때, 즉 출판사가 출판의 공적 성격에 대한 고민을 잃을 때 ‘출판의 위기’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창간 20주년을 맞는 《기획회의》는 이 엄연한 사실의 증거다. 출판전문지는 책이 아니라 출판을 다룰 때, 출판사가 아니라 출판에 복무할 때 비로소 제자리에 있을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임무를 지속해온 것은 이 잡지뿐이었다.

책을 만드는 것은 개별 출판사의 몫이지만, ‘출판에 대한 생각’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기획회의》의 몫이었다. 편집, 마케팅, 영업, 디자인 등 미숙한 상태에 있던 출판의 전 분야가 이 잡지를 통해 생각의 기초를 다졌으며 머리를 얻어 날개를 펼 수 있었다. 현재 출판 각 분야의 리더로 활동하는 이들 중에 이 잡지에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다. 

과거를 돌이켜 역사를 기록하고, 현재를 들여다보면서 흐름을 소개하며, 앞날을 내다보면서 담론을 구축한다. 책의 우주에서 시시각각 펼쳐지는 온갖 출판행위를 때로는 응원하고, 때로는 감시하고, 때로는 질타한다. 출판의 발전을 가로막는 현실의 벽에 대항해 대안을 꾸미고, 국내외 좋은 사례를 소개해 노력을 촉구하고, 권력의 손에 떨어지지 않도록 출판의 길을 지킨다. 이대로 계속, 달리 더할 바는 별로 없다.

다음 20주년을 앞두고 강화할 바가 있다면, 아마도 셋 정도일 것이다. 

첫째, 저자에서 독자에 이르는 출판의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평을 활성화한다. 《기획회의》는 일찍이 문학을 향해 ‘주례사 비평을 넘어설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별다른 감시 없이 질주 중인 현행 출판행위에 이를 엄밀히 적용한다면, 우리는 출판문화의 성숙을 대가로 얻을 것이다. 

둘째, 기존의 종이책을 넘어 물리적 또는 전자적으로 확장 중인 출판의 새로운 도전들을 좀더 자주, 세심하게 소개한다. 축소되는 시장에서 분열을 거듭 중인 출판의 현재를 생각할 때 시장을 현재로 고착하기보다 파괴적 혁신을 유발하는 도전을 장려하는 쪽이 더 좋은 미래를 가져올 것이다. 

셋째, 국내외 독서 및 출판 관련 연구를 특집을 통해 종합하고, 각종 데이터를 분석하는 작업을 보다 자주 한다. 모바일 평면에서 콘텐츠 비즈니스와 경쟁하는 상황에서 출판은 더 이상 ‘감’으로 발전 전략을 세울 수 없다. 지난 십여 년의 출판이 뚜렷이 이를 보여 준다. 도서정가제 등 시도를 다했지만, 출판의 위축은 꾸준하지 않았는가. 출판이 발 딛고 선 현실을 확인해 새로운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이 임무를 마땅히 져야 할 터이고, 한국에서는 《기획회의》가 기꺼이 그 짐을 떠맡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