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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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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말한다, 이 부정의한 세상에 - 마흔 권의 책으로 말하는 2010년대 책 의 결산 2019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또한 달리는 말에서 갈라진 벽의 틈새를 보듯, 2010년대도 훌쩍 지나갔다. 지난 10년 책의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2009년 아이폰 출시와 함께 ‘스티브 잡스’가 열어젖힌 ‘제4차 산업혁명’의 봇물에 휩쓸려 그사이 삶의 전 영역이 ‘좋아요’와 ‘하트’ 놀이에 중독됐다. ‘생각을 빼앗긴 세계’에서 우리는 어느새 정보와 상호작용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됐다. 머리 한쪽이 늘 멍한 산만함에서 우리 정신을 지켜 주는 것은 역시 호흡 긴 서사인 책밖에 없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다시, 책으로’ 돌아와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책의 대지에 핀 꽃들은 자주 불(不)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먼저, ‘정의란 무엇인가’가 사유의 어둠 속에 찬란한 빛..
그래도 도서정가제가 답이다 현행 ‘도서정가제 폐지’를 주장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8일 18만 명 가까이 이르렀다. 청원이 시작된 지 꼭 2주 만이다. 청원인 숫자가 20만 명을 넘으면 어떤 식으로든 청와대는 공식 답변을 해야 하므로 편집자로서 이 과정을 심각히 지켜보는 중이다. 이들의 주장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도서정가제 시행 명분은 ‘동네서점 살리기’였는데, 서점 수는 그사이 오히려 줄었다. 둘째, 신간의 경우 창작자 보호 등을 위해 규제할 수 있으나 구간에도 이를 적용하는 것은 과잉이다. 이 탓에 독서율은 떨어지고, 평균 책값은 올랐다. 셋째, 정가제를 시행하는 외국의 경우 소비자 부담을 더는 장치가 있다. 가령 프랑스는 출간 후 24개월 지난 책을 오프라인 서점에 한해 제한 없이 할인 판매하며, 일본은 싼 가격의 ..
베스트셀러 어뷰징 독서운동을 빌미삼아 단체를 만들고 회원을 모집해 서적을 추천한 후, 읽고 나서 별점 달고 댓글 쓰고 서평 활동을 하도록 독자들에게 권한다. 여기까지는 여느 독서단체와 비슷한 일을 한다. 그런데 운영자 자신이 간여하는 특정 출판사의 신간이 발행된 직후, 이를 활동 도서로 추천해 집중구매를 유도하면 어떨까. 당장 제 이익을 위해 공공성을 위장하는 이해충돌 문제를 유발하기에, 윤리적으로 양두구육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게다가 규모가 크지 않은 한국 출판시장의 특성상, 일종의 ‘사재기 효과’가 나타나 해당 도서가 단숨에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를 수 있다. 최근 출판계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베스트셀러 어뷰징’ 현상이다. 독자들의 자연스러운 구매활동이 누적되어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 아..
소출판 인플레이션 - 발행종수 8만 종, 실적 출판사 8000개 시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18년 출판산업동향 보고서’가 발표됐다. 한국 출판산업의 상태 변화 추이를 살필 수 있는 유일한 공식 자료에 해당한다. 국민이 출판 실상을 알 수 있게 정확한 사실을 알리는 게 정부 산하기관의 임무일 터인데, 이상하게도 아무 보도자료 없이 자료실에만 올려 두었기에 내려받아 한 해 동안 출판산업의 변화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2018년 출판산업은 한마디로 ‘소출판 인플레이션’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전체 산업 규모는 단행본 1조 1698억 원, 교육출판 2조 8244억 원 등 3조 9982억 원으로, 전년 대비 0.1% 상승에 그쳤다. 오래전부터 시장규모는 정체와 하향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이에 반해 해마다 출판사 숫자는 늘어나고 발행 종수는 폭증 중이다. 2018년..
편집자로 일하면 좋은 세 가지 이유 편집자는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최고의 직종이다. (중략) 첫 번째, ‘재능 칵테일’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 편집자는 한 번이라도 대면하면 인생을 격변시켜 줄 만한 천재들을 매일 만난다. (중략) 독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한 권의 책을 통해 가장 많이 성장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편집자다. (중략) 두 번째,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편집자의 일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 시대는 상품의 기능이나 가격에서 큰 차이가 없다. 앞으로는 ‘상품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중략) 그것은 편집자가 가장 잘하는 일이기도 하다. (중략) 세 번째, 사람의 감정을 감지하는 후각을 연마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무엇에 울고, 무엇을 고민하고, 무..
독서공동체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 같이 읽고 함께 사는 삶을 찾아서 독자를 만나고 싶다 독자들을 실감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였다. 편집자들은 솔직히 말하면 독자를 잘 모른다. 편집자로 일한 시간이 오래될수록 이 격절, 독자로부터의 소외는 심해진다. 때때로 저자 강연회, 사인회, 애독자 모임 등에서 독자를 만나기도 하지만, 관계자 입장이니 선뜻 속마음을 듣기가 어렵다. 독자들은 늘 저 너머에 있다. 책은 분명히 독자들한테 가 닿지만, 독자들은 항상 모니터 건너편이나 판매부수 이면에 흔적으로 존재한다. 편집자는 스스로 자기 분야 책들의 독자가 됨으로써 소외를 극복하려 애쓰지만, 어느 순간 가상과 실재 사이의 격차가 섬뜩할 정도로 벌어지곤 한다. 자신이 읽고 싶은 책과 독자가 읽으려는 책이 천만리 멀어지는 것이다. 나가던 책이 안 나가고, 팔리던 책들이 줄어든다. 초판 ..
출판과 종교(필사에서 종교로, 금속활자에 대하여) 고려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 낼 만큼 오랜 출판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세 유럽 수도사의 일과가 성경을 베껴 쓰는 일과 기도로 이루어졌듯이, 고려의 승려도 경전을 직접 베껴 쓰며 사경을 제작했다. 필사의 전통에서 인쇄로의 전환은 세계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또 하나의 혁명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쇄 문화는 수도원과 사찰, 성경과 경전이라는 신앙 공간, 종교의 성전(聖典)을 매개로 꽃피었다. 대장경에는 불교의 성전이라는 신앙적 의미로서뿐 아니라 지식을 체계화하고 소통하고자 했던 인류의 지혜가 담겨 있다. 대장경판이 봉안된 해인사 장경판전은 진리를 향해 나아간 당대의 노력을 보여주는 거대한 도서관과 같다. (중략)필사의 방식에서 목판 인쇄로의 발전은 인류의 역사에서 결정적 장면 중 하나이다. 나..
출판의 미래, 연결에 있다 “디지털 경제에서 우리는 자신이 일하는 영역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초예측』(웅진지식하우스)에서 프랑스의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이 말한다. 일반적으로 ‘규모의 경제’는 물리적 재화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정의한다. 대량생산을 통해 생산원가를 낮추고 대량소비를 유도해 가격을 파괴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이롭게 할 수 있는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원리다. 저렴하고 잘 훈련된 대량의 노동력, 큰 공장을 지을 수 있는 싸고 넓은 토지, 부채를 포함해서 동원 가능한 대규모 자본 등 세 박자를 갖추면 비용을 낮추고 시너지를 높여 규모의 경제를 이룩할 수 있다. “재벌이라도 출판을 잘할 수는 없어. 출판은 돈으로 하는 게 아니야.” 고(故) 박맹호 민음사 회장은 늘 말하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