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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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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10년 여행을 계획하다 요즈음 아내와 나는 들떠 있다. 인생 100년의 절반을 막 지난 아내와 함께 오래전부터 두런두런 이야기해 온 일을 실행에 옮기려 하고 있다. 다리 힘이 더 떨어지고 호기심이 더 줄어들기 전에 앞으로 10년 동안 한 계절에 한 차례씩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도시 마흔 곳쯤을 골라서 차례로 방문할 생각이다. 주로 주말을 이용해 한 도시에서 사나흘, 또는 휴가를 얻으면 일주일쯤 돌아보려 한다.버스 타고 몰려다니며 잠깐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는 관광 여행은 질색이지만 오랜 검색 끝에 찾아낸 '가성비 맛집'이나 '인스타 골목 명소' 같은 식으로 이른바 '현지인 체험'을 즐길 생각도 없다. 짧은 방문에 현지인 어쩌고는 청춘들이나 행할 일로 치부하는 '솔직한 꼰대'가 되는 쪽을 택하려 한다.유명 관광지를 깊게 즐기는 ..
물질에 취해 ‘사유 불능’에 빠진 중국 두 주에 한 번 쓰는 《문화일보》 서평. 이번 주에는 쉬즈위안의 『한 유랑자의 세계』(김태성 옮김, 이봄, 2018)를 다루었습니다. 베이징 독립서점 ‘단샹제’의 주인으로 중국 내에서는 상당한 지적 스타인 쉬즈위안의 책은 2012년 『독재의 유혹』(김영문 옮김, 글항아리)이 출판된 이래, 국내에 꾸준히 소개되었습니다. 중국, 타이완, 홍콩의 반체제 인사를 다룬 『저항자』(김택규 외 옮김, 글항아리, 2016)는 상당힌 인상 깊었던 책입니다. 이번에 나온 『한 유랑자의 세계』는 『미성숙한 국가』(김태성 옮김, 이봄, 2017), 『나는 내 나라가 낯설다』(김태성 옮김, 이봄, 2017)와 함께 ‘국가 3부작’으로 불리는 책입니다. 인도, 부탄, 러시아, 독일, 프랑스, 영국, 이집트, 팔레스타인, 버마 등..
환골탈태 동네서점…지역명소로 육성? 종편인 《채널 A》에 기획 특집으로 ‘독립서점’ 이야기가 방송되었습니다. 아래에 소개합니다. 환골탈태 동네서점…지역명소로 육성?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존폐 위기에 몰렸던 동네서점들이,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갈 수 있는 반려동물 전문서점으로 변신하는가 하면, 맥주를 마시며 독서모임을 할 수 있는 서점도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박수유 기자가 보도합니다.[리포트]20제곱미터 남짓한 작은 공간에 전 세계 150여 개국이 담겼습니다. 어디론가 당장 떠나고픈 마음을 책 한 권으로 달래봅니다. [배태환 / 서울 관악구] “여행을 좋아하는 편인데 현실적으로 많이 못가다 보니까 찾게 되더라고요. 다양한 디자인과 내용의 책들이 많고 작가님들의 개성이 많이 살아있어서..“ 한껏 낮..
‘앞으로 걷기’와 ‘뒤로 걷기’ 《대전일보》에 쓴 칼럼입니다. 올해 초 교토, 나라, 오사카 여행에서 느꼈던 바를 적어 보았습니다. ‘앞으로 걷기’와 ‘뒤로 걷기’ 새해를 여행으로 시작했다. 교토, 나라, 오사카 등을 쏘다니면서 온갖 명승과 유적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다. 스마트폰 어플로 확인하니 걸어 다닌 거리만 100킬로미터를 훌쩍 넘었다. 교토는 고스란하다.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인 천년고도답게, 세월을 얹을수록 아취를 더하는 중이다. 부족한 듯 소박하기에 오히려 마음이 충만해지고, 꾸미지 않아 한적하기에 도리어 마음이 광대해진다. 청수사도, 여우신사도, 금각사도, 메이지신궁의 정원도 좋지만, 교토의 절정은 개인적으로 은각사다. 비바람의 힘만으로 장식한 목조건물들, 굵은 모래흙으로 쌓아올린 탑, 갈퀴로 훑은 듯 꾸민 정원…. 저..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는 다시는 반복할 수 없는 백민석의 아바나 여행기 당신은 볼거리가 많은 나라에서 왔다. 아바나에서 보내는 일상이 벌써부터 지루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볼거리가 많다는 것은 당신이 소파에 앉아 줄곧 텔레비전과 휴대전화만 들여다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에 볼거리가 없다는 말은 당신 스스로 볼거리를 찾아 나서고, 스스로 볼거리를 창출하고, 스스로 볼거리가 되기 위해 엉덩이를 떼고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바나의 시민들이 거실에 캔버스를 놓고 그림을 그리고, 플로리다 해협을 등지고 앉아 트럼펫을 불고, 광장에 이천 명씩 모여 살사 댄스를 주고, 프라도 거리에서 시민 노래 경연을 벌이듯이. 글은 이인칭으로 쓰여 있다. 소설도 아니고 쿠바 아바나에 대한 여행기인데, 웬 이인칭? 여행을 다녀와 사진을 고르는 민석과, 사진을 고른 후 자신한테 중얼거..
여행, 살아서 겪는 죽음 《중앙선데이》에 한 달에 한 번 쓰는 칼럼입니다. 이번에는 다가올 휴가철을 맞아서 ‘여행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최고의 여행은 카타바시스, 즉 저승여행입니다. 살아서 죽음을 겪는 것, 산고를 겪고 여자가 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조금 보충했습니다. 여행, 살아서 겪는 죽음 소년은 불우했다. 어머니는 죽고, 아버지는 떠났다. 숙부네 집에 얹혀살면서 인쇄 견습공 일을 하던 소년은 열여섯 살 때 처음 여행을 한다. 순간적인 충동이었다. 친구들과 놀다 돌아오는데 성문이 닫혀 있었을 뿐이다.“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라.”야훼의 명령을 받고 기꺼이 집을 나선 아브라함처럼, 어떤 운명을 느낀 소년은 숙부의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그대로 몸을 돌려 길을 떠난다. 며칠 동안 제네바 성 주변..
길 위에 서자 지혜가 찾아왔다 ― 마리아 베테티니·스테파노 포지 엮음, 『여행, 길 위의 철학』을 읽고 《문화일보》에 쓰는 서평, 이번 주에는 『여행, 길 위의 철학』(책세상, 2017)을 다루었습니다. 여행을 통해서 지혜를 얻었던 철학자들의 삶을 다룬 책입니다. 이탈리아에서 나온 책답게, 이 책에 나오는 여행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에 나오는 철학자들은 이탈리아를 지혜의 땅으로 만드는 데 복무합니다. ‘공간인문학’의 측면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도 이런 기획이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길 위에 서자 지혜가 찾아왔다― 마리아 베테티니·스테파노 포지 엮음, 『여행, 길 위의 철학』(천지은 옮김, 책세상, 2017) 철학자들의 여행에 대한 책이지만 여행자들의 철학에 대한 책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때때로 정치적 탄압을 피하거나 개인적 야망을 달성하려는..
다빈치는 조약돌 하나를 보고 산을 상상했다 _ 실뱅 태송, 『여행의 기쁨』(문경자 옮김, 어크로스, 2016)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조약돌 하나를 보고 산을 상상했다. 소로는 귀뚜라미 노랫소리에서 신의 음성을 들었다. 반 고흐는 전원에서 풍경의 역선(力線)들을 보았다. 네르발은 파리의 길들과 자기 영혼의 미로를 혼동했다. 풀카넬리는 황금비가 천체의 운행을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암술을 둘러싼 꽃잎들의 배치도 주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위고는 산사나무 향기가 별자리와 무관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견자(見者)’는 눈이 만족하는 곳에서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지엽적인 것들을 모두 뒤져서 우주를 추격한다. 이것이 관찰에 적용되는 환유의 원리다. 여행자는 풀잎에서 우주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어야 하고, 머리 위로 지나가는 구름을 보고 평면구형도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정신이 모래알 하나로도 충분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