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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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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서평] 타인에 대한 ‘연민’ 없이 민주주의, 제대로 작동할까 _마사 누스바움의 『감정의 격동』 경이(驚異).놀랍고 신기하다. 감각이 깨어나고 몸이 풀리면서 상념이 융기한다. 문장들이 누적되고 페이지들이 모이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낯선 지형을 머릿속에 만들어낸다. 이 지형도에는 ‘감정의 철학’ 또는 ‘감정의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리라. 이성의 사유가 아직 제대로 개척하지 못한, 때로는 의도적으로 배척하고 때로는 처치 곤란으로 미루어둔 광대한 황무지. 마음의 지층으로 볼 때 이성보다 아래쪽을 이루면서도 여전히 어둠에 남겨진 영역. ‘감정’이라는 이름의 신대륙이 마침내 지적도를 얻었다.사흘에 걸쳐 1400쪽에 이르는 책을 모두 읽었다. 역시 마사 누스바움이다. 그녀의 책은 지금까지 한 차례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 『시적 정의』, 『혐오와 수..
[오래된 독서공동체를 찾아서] <2> 전주 북세통 "더불어 읽고 놀며 느끼며… 생각하는 시민으로 살고 싶었죠" "더불어 읽고 놀며 느끼며… 생각하는 시민으로 살고 싶었죠"[책, 공동체를 꿈꾸다] 전주 북세통 스무 살, 세 남녀 13년 전 모여 대학 과제물 작성 고민하다"생각 기르려면 꾸준히 독서해야" '교회 오빠' 말 믿고 첫 모임한 해 4~6권 인문사회과학 교양서…사회공동체 속 유기적 인간 고민 스무 살, 세 남녀가 책을 들고 모였다. 막 대학교에 들어가 과제를 하라는데,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몰랐다. 불안하고 답답했다. 다니던 교회의 오빠(?)에게 상의했더니, 글을 잘 쓰려면 먼저 책부터 읽으라고 했다. 별로 책을 즐기지 않았지만, 혹여나 성적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순진하게도 일단 모여 본 것이다. 2003년 이래 열세 해 동안 전주 평화동 골목을 책으로 지켜 온 독서공동체 북세통(책으로 세상과 소통하다)이..
풍월당 아카데미 6월 강의 "무엇을 사랑이라 할 것인가" 풍월당 아카데미 문학 강의 네 번째입니다. 숭고, 애도, 긍정에 이어서 이번에 다루어 보고 싶은 주제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탐구는 어쩌면 문학의 가장 고유한 영역 중 하나입니다. 어떤 다른 사유도 문학만큼 사랑의 구체성과 보편성을 함께 사유하지 못합니다. 오래전부터 한 번 다루어보고 싶은 주제였는데, 이번 기회에 공부 삼아 본격적으로 정리해 보려 합니다. 사랑은 인간의 감정 중에서 가장 신비로운 감정이다. 사랑은 흔히 자신의 모습을 흔히 증오로 위장하기에 더욱더 알아채기 어렵다.사랑은 문학의 가장 오래된 주제이자 영원한 탐험의 대상이기도 하다.그리스 비극에서 현대 소설에 이르기까지 사랑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사랑이 어떻게 인간을 고귀하게 만드는지를 이야기하자. 혹시 문학 함께할 분들은 풍월당 아카데미로 ..
가족은 병이 아니다 《조선일보》 기사를 보니 일본에서 시모주 아키코(下重曉子)라는 전직 유명 아나운서가 쓴 『가족이라는 병』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모양이다. 내용은 아래와 같단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하지만, 사실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기대기보다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 서로를 정확하고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그러지도 못하면서 입만 열면 가족 얘기를 하고, 연하장에 가족 사진을 첨부하는 건 "행복을 강매하는 것"이 아니냐고 독자에게 묻는다. 때때로 이런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을 볼 때마다 괜스레 슬퍼진다. 또 이런 책을 수입해 보겠다고 편집자들이 달려들까 봐 겁이 난다. 기자의 요약이 사실이라면 이 책의 저자는 사랑에 대한 기초적인 ..
당신을 위한 러브 스토리를 찾아 주는 인포그래픽스 「새로운 사랑, 새로운 삶」이라는 시에서 괴테는 이렇게 사랑을 노래했다. 끊기지 않는이 가느다란 마법의 실 가닥에사랑스럽고 장난기 어린 소녀는내 뜻일랑 아랑곳없이 나를 단단히 묶어 버렸다.그녀의 마법의 원 속에서나 이제 그녀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이 변화, 아, 얼마나, 엄청난가!사랑아, 사랑아, 날 좀 놓아 다오!― 「새로운 사랑, 새로운 삶」(전영애 옮김, 『괴테 시 전집』, 민음사, 2009, 175쪽) 사랑만큼 우리를 설레게 하고, 사랑만큼 우리를 아프게 하고, 사랑만큼 신비로운 것도 없다. 그래서 그 토록 많은 노래들이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바쳐지고, 그토록 많은 노래들이 사랑을 잃은 괴로움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우리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궁금해 한다.지난주 전 세계의 독서계..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30일(목) 명절 첫 날이라 오늘을 하루 종일 읽던 책들을 내키는 대로 읽었다. 방 청소를 하고 읽으려고 쌓아 둔 책들을 정리했다. 읽는 속도가 책이 쌓이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서 방이 점점 비좁아지는 중이다. 조만간 과감하게 읽지 않는 책을 버려야 할 때가 올 것 같다. 지셴린의 『인생』(이선아 옮김, 멜론, 2010)을 완독했다. 사유의 대가답지 않은 가벼운 에세이인데, 오히려 그 소박함과 평범함으로 사람을 끄는 데가 있다. 내용이 일부 중복되는 것은 대부분이 신문 등에 연재된 짧은 글을 모은 탓이다. 이 점은 대단히 아쉬웠다. 중국 지식인들의 장점이라면 자신의 글에 춘추 전국에서 명청에 이르는 명문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함으로써 그 논지에 품격을 불어넣고 깊이를 더한다는 점이다. 지셴린이 자주 인용하는 도연명이나 ..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15일(수) 절각획선(切角劃線)은 책장의 귀를 접고 밑줄을 긋다는 뜻으로 리쩌허우가 쓴 글 제목에서 가져온 말이다. 이는 책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직접 몸을 움직여 체험하고 힘써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읽기의 금언으로 삼아 매일의 기록을 남긴다. 그러고 보면 옛 선인들은 매일 읽은 것을 옮겨 적고, 나중에 이를 모아서 편집하여 하나의 책을 만듦으로써 읽기에 대한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그로써 새로운 지혜를 축적하고 표명했다. 이 기록이 언젠가 그 끝자락에라도 닿기를 바라면서. (1) 드니 디드로,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3) 중에서 ― 여자들만이 사랑할 줄 안답니다. 남자들은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156쪽)― 육체를 가진 두 존재가 최초로 서약한 곳은 부서지는 바..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10일(금) 절각획선(切角劃線)은 책장의 귀를 접고 밑줄을 긋다는 뜻으로 리쩌허우가 쓴 글 제목에서 가져온 말이다. 이는 책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직접 몸을 움직여 체험하고 힘써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읽기의 금언으로 삼아 매일의 기록을 남긴다. 그러고 보면 옛 선인들은 매일 읽은 것을 옮겨 적고, 나중에 이를 모아서 편집하여 하나의 책을 만듦으로써 읽기에 대한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그로써 새로운 지혜를 축적하고 표명했다. 이 기록이 언젠가 그 끝자락에라도 닿기를 바라면서. (1) 드니 디드로,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3) 중에서 ― 사람들은 자기가 가는 곳을 안단 말인가? (7쪽)― 사랑을 하거나 사랑을 하지 않는 일이 어디 우리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요? 그리고 우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