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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15일(수)

절각획선(切角劃線)은 책장의 귀를 접고 밑줄을 긋다는 뜻으로 리쩌허우가 쓴 글 제목에서 가져온 말이다. 이는 책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직접 몸을 움직여 체험하고 힘써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읽기의 금언으로 삼아 매일의 기록을 남긴다. 그러고 보면 옛 선인들은 매일 읽은 것을 옮겨 적고, 나중에 이를 모아서 편집하여 하나의 책을 만듦으로써 읽기에 대한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그로써 새로운 지혜를 축적하고 표명했다. 이 기록이 언젠가 그 끝자락에라도 닿기를 바라면서.

 

 

(1) 드니 디드로, 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3) 중에서

 

여자들만이 사랑할 줄 안답니다. 남자들은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156)

육체를 가진 두 존재가 최초로 서약한 곳은 부서지는 바윗덩어리 아래에서였다. 그들은 한시도 같은 모습이 아닌 하늘에다 대고 그들의 굳은 지조를 맹세했다. 주변 모든 것과 그들 내부 모든 것이 변하는데도, 그들 마음만은 이런 삶의 변전에서 벗어났다고 믿었다. , 아이들이여, 언제나 어린 아이들이여! (165) 멋진 글이다. 서약과 부서지는 바윗덩어리가 대비되고, 지조와 한시도 같은 모습이 아닌 하늘이 대조된다. 변하지 않는 것이란 본래 불가능한 것이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사람은 그 말을 듣는 사람을 바보로 간주하는 바보라고 했어요. (168)

그의 원한은 좋은 술, 아름다운 여자 앞에서는 결코 오래가지 않았다. (174) 그래서 축제는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는 최고의 시도가 된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무슨 상관이에요? 군인이란 죽기 위해 있는 게 아닌가요? 열 번의 공격과 대여섯 번의 전투 후에 저 너절한 검은 수단을 입은 신부들 사이에서 죽어 가는 자신을 보고 격분하는 게 군인 아닌가요? (177) 대단히 냉혹하고 통절한 문장이다. 진실은 이처럼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옹호해야 하는 이유!!! 산 자를 죽은 자로서 남기지 살게 하지 않으려면.

아주 비천하고 위험하며 별 소득 없는 일을 합니다. 마음에는 안 들지만 필요 앞에서는 법도 소용없더군요. (180)

그는 위선자고 야심가고 무지한 사람이고 험담가고 너그럽지 못한 사람이에요. 자신처럼 생각하지 않는 이는 누구든지 무자비하게 박살내는 사람을 우리는 아마도 그렇게 부르죠. (183)

샴페인이 당신 눈에 비친 날 아름답게 만드는 모양이군요. (187

돈이 없을 때 나쁜 점은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에요. 가난한 사람은 폐가 될까 봐 두려워하죠. (192)

예전에 사랑을 나눌 때에는 저의 좋은 점만 보더니 이제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니 결점만 보는군요. (199)

명예와 미덕은 진실할 때라야 그것을 소유한 사람들 눈에 무한한 가치가 있는 법이에요. (216)

아내가 불행하면 남편도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아내가 기억하는 한 다시는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듣지 않으리라는 걸 맹세하오. 그러니 정숙하고 행복해지시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만들어 주구려. (228)

인물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그 역할이 일관되어야 한다네. (230)

, 독자여, 그대는 칭찬하는 데는 경솔하고 비난하는 데는 너무 엄격하군. (235)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저 자신을 통제할 수만 있으면 그 일을 기뻐하지도 불평하지도 않을 겁니다. (241)

나리의 모든 명령이 자크의 승인을 받지 않으면 아무 가치도 없다는 걸 사람들이 아는데도요. 제 이름에다 나리 이름을 나란히 붙여,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이 없으면 결코 아무 데도 가지 않으며, 또 모든 사람이 자크와 그의 주인이라고 말하는데도요. (246)

각자에겐 자신의 개가 있죠. 장관은 왕의 개고, 차관은 장관의 개고, 아내는 남편의 개고, 또는 남편은 아내의 개고, 파보리는 이 여자의 개, 티보는 길모퉁이 저 남자의 개입니다. (중략) 또 의지가 약한 사람들은 의지가 강한 사람들의 개입니다. (255)

민중이 분노하면 무섭지만 그 분노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들의 비참한 생활이 그들을 관대하게 만든 것이다. (259)

독창적인 사람은 첫 번째로 교육이, 다음으로 지나친 사회 경험이 소진시키지만 않았다면 더 많았을 것이다. 마치 은화에 새겨진 것이 유통되다 보면 닳아 없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282)

 

 

(2) 김우창, 문화의 안과 밖 ―― 객관성, 가치와 정신

이 글은 네이버문화재단과 함께 진행하는 열린 논단문화의 안과 밖의 기조 강연 원고이다. 이번 주말 오후 2시에 광화문에서 첫 강의가 있을 예정이다. 글의 난도는 상당히 높지만, 대가의 글답게 깊이가 있고 사색할 거리를 끊임없이 던져 주었다. 언젠가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도덕적 기초 또는 더 넓게 말하여 내면의 깊이에 이어지지 않고는 조화된 사회 공동체가 성립하기 어렵고 참다운 모습의 인간적 삶이 실현되기 어렵다.

사람의 삶의 조건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환경이 인간의 내면의 요구에 합당한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환경 전체를 하나의 조화된 공간이 되게 한다.

사람의 정신은 끈질긴 것이면서도 연약한 것이기 때문에 물질적 사회 표현의 약화는 바로 정신이 소멸하는 원인이 된다.

인간적 삶의 구체적 실현으로서의 문화나 문명은 전쟁의 파괴와 전체주의의 싹쓸이에 의하여 없어지기도 하지만, 그것을 지탱하는 정신의 빈곤 내지 소멸로 하여 내면 폭발(implosion)을 겪을 수도 있다.

대체로, 개인의 기억은 없거나 무의미하고 종족의 기억 —― 개인 기억과 관계없이 구성된 역사만이 의미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정치적 이해의 주류가 된다. 한국에서 이것은 특히 그렇다. 개인의 기억이나 역사는 완전히 말소해도 상관없는 것이 우리 도시 계획이다.

기억은 모든 것이 하나의 시간 질서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지만, 그때그때 체험되는 현실로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내면의 소리는 쉽게 말로 표현되지 아니한다. 진실한 말은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자라 나와야 한다.

 

 

(3) 리쩌허우, 중국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이유진 옮김, 글항아리, 2013) 중에서


문자는 음성언어를 쓴 것이 아니라 일을 기록한 것이지요. 최초의 문자는 발생한 일(역사 경험)을 기록하기 위한 부호였어요. 결승(結繩)처럼 말이죠. 그리고 이게 점차 변해서 문자가 되고, 마지막에 음성언어와 결합한 것예요. (141)

명명(命名)은 중요합니다. 그건 역사의 근원이에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중국식 사유를 총괄해 낸다면, 바로 역사로 나아가고 경험을 중시하는 겁니다. (143)

생명이 있으면 정이 있게 마련이니, 정을 헤아리는 것은 자연이다. 만약 그것을 끊어서 밖으로 내친다면 생명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생명이 있다 해도 무슨 귀함이 있으랴?(상수) (146)

()’는 일종의 예술이에요. 위대한 정치가는 분수를 파악할 줄 아는데, 그게 바로 정치의 예술이에요. (147)

다른 이에게 거시적인 견해와 의견을 제공하는 것은, 설령 부정확하다 하더라도 의미가 있다. (중략) 사실 나무를 보든 숲을 보든, 미시든 거시든, 전문적인 학문이든 통섭적인 학문이든, 잘하기만 하면 모두 의미가 있어요. 세계는 본래 다원적이라서 다양하고 풍부하지요. (150)

인문과학의 개념은 분석을 견뎌내야 하고 자연과학 개념을 본받고자 해야 합니다. (151)

감상(感傷)은 사람을 의기소침하게 만들지 않아요. 그와 반대랍니다. 인생은 쉬 늙고 세월은 멈춰 있지 않으니, 더욱 기운을 내 인생의 참뜻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지요. (158) 이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사실 세계가 굳건히 이룩한 것으로부터 덧없음의 슬픔을 발견하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이 감정, “세상사의 처량함에 대한 깊은 슬픔”(162)을 미학의 중심 지렛대로 삼은 것은 정말 독특하다. 누군가 신경숙의 작품을 위해 이 한마디를 덧붙여 주었다면, 우리는 좀 더 위대한 작가를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삶의 세계에서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삶의 과정에 있는 온갖 크고 작은 변수를 체득하며, 이를 통해 느낌, 아낌, 미련, 슬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161) 이 평범한 진술을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그가 사유란 결국 삶의 간난신고에 답하는 것이어야 함을 깊게 깨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철학자가 아니라 사상가이다.

중국 전통은 본래의 전통이든 혁명 전통이든, 각종 희생정신을 지니고 있어요. 그런데 인간의 욕망과 철저히 결별한, 영혼의 성결과 순수에 대한 추구가 결핍되어 있지요. 자신의 육체를 호되게 채찍질해서 영혼을 깨끗하게 하려는 행위가 결핍되어 있어요. 중국 전통에서는 오로지 목욕재계처럼 굉장히 가벼운 정도의 금욕(禁慾) 조치가 있을 뿐이지요. (169) 이 생각을 현대 한국문학의 방황에 연결하고픈 충동을 느낀다.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이야기 정감과 작가들의 사적 추구(“개체의 절대 고독을 기초로 한 정감”(170)) 사이의 거대한 단절이 느껴진다.

계몽 이성과 보편 가치를 받아들이고 흡수하며 이것을 기초로 하여 중국의 전통 요소를 더한 정 본체의 현대성, 서체중용의 현대성. (173)

봉건적 특징을 지닌 자본주의에 반대해야 합니다. 그것을 중국 모델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이런 경계심을 유지해야만 우리는 자신의 새로운 길을 잘 걸어갈 수가 있고, 진정으로 세계적 의미를 지닌 중국 모델을 도출해 낼 수 있답니다. (174)

인간에게는 믿는 바가 없을 수는 없으니까요. 믿는 바가 없으면 마음의 편안이 있을 수 없고 생존할 수가 없지요. 철학의 역할이 무엇인지 가장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사실은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데요. 인간이 자기 믿음에 따라 생활할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 (177)

경제는 어느 정도의 필연성을 지니고 있답니다. 이게 바로 제가 말하는 밥 먹는 철학이에요. 사람은 모두 밥을 먹어야 하잖아요. 여기서 밥을 먹는다는 건 단순히 배불리 먹는 것만 가리키는 게 아니라 좀 더 잘 먹고 잘 입는 것을 포함합니다. , , , 행의 개선은 누구나 다 바라는 것이죠. 여기엔 어느 정도의 필연성이 있어요. (180)

중국의 전통 윤리학은 동물적 정감의 인간화라는 기초 위에 건립하여, 자연적 정감을 이성화했지요. 이성화란, 인류가 일련의 이성적 관념과 이성적 사상을 운용함으로써 인간의 정감을 명명’, 즉 관할하는 거예요. 이게 의 형성이고 바로 윤리이지요. 그것을 점차 외재적 규범에서 내재적 자각으로 변화시킨 것이 바로 도덕이고요. 윤리는 외재적인 제도, 규범, 요구인데 근대에는 법리로 나타나지요. (182)란 무엇인가. 이는 요즈음 나의 가장 깊은 관심사이다. 작년 아들 졸업식에서 받은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탓이다. 결혼식도 정말 엉망이다. 기념을 기념하지 못했을 때, 인생은, 더 나아가서 문명은 파탄 나는 게 아닐까.

바로 앞에 적이 둘 있는데, 한 명은 때려 죽어도 투항하지 않는 반면에 다른 한 명은 잽싸게 투항할 경우, 비록 두 번째 적으로 인해 홀가분하고 기쁘겠지만 투항하지 않은 적에게 탄복할 겁니다. 이건 윤리적 가치가 일시적인 공리적 쾌락보다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는 걸 말해 주지요. (185) 멋진 예증이다.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적에 대한 윤리적 탄복은 중국 역사 기록의 한 중요한 흐름을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