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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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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의 『아가씨와 철학자』(박찬원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를 읽다 벼르던 일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두 주 전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양억관 옮김, 민음사, 2013) 교정을 끝마치고 난 후, 기왕에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김욱동 옮김, 민음사, 2003) 말고 피츠제럴드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나온 『피츠제럴드 단편선 1』(김욱동 옮김, 민음사, 2005)와 『피츠제럴드 단편선 2』(한은경 옮김, 민음사, 2009)를 읽으려고 꺼내 놓았다가, 곧 마음을 바꾸어서 피츠제럴드의 첫 번째 단편집으로 예전에 편집 참고용으로 사 두었던 『아가씨와 철학자』(박찬원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를 이번 주 내내 읽었다. 가장 거칠고 미숙했던 시절의 피츠제럴드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이 나온 것은 1920..
나쓰메 소세키의 『태풍』(박현석 옮김, 현인, 2012)를 읽다. 1며칠 동안 틈을 내어 나쓰메 소세키의 『태풍(野分)』(박현석 옮김, 현인, 2012)를 읽었다. 여름 무렵부터 국내에 출간된 소세키 작품을 하나씩 챙겨 읽기 시작했는데, 『도련님』(양윤옥 옮김, 좋은생각, 2007)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진영화 옮김, 책만드는집, 2011)에 이어서 세 번째이다. 소세키 소설들은 어느 작품이든 깊은 사유의 힘과 반짝이는 위트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태풍』은 나쓰메 소세키가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하여 전업 작가로서 살아가기 직전인 1907년에 쓴 작품으로, 이전 작품인 『도련님』이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비하면 다소 직설적이고 관념적으로 작가의 문학에 대한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작품은 생동감은 다소 떨어지는 편에 속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정예영 옮김, 을유문화사, 2008)을 읽다 삼류 작가의 시시한 작품보다 거장의 걸작을 오해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어린 시절, 루카치의 ‘리얼리즘의 승리’라는 마르크스주의 문예 미학의 깃발 아래 읽었던 발자크의 작품들은 얼마나 재미없었던가. 그때는 소설 속 인물들의 인생은 보이지 않고, 작가의 사상이 왕당파에 가까운 데도 불구하고 그 핍진한 묘사 때문에 소설 내용이 ‘부르주아의 승리’라는 역사적 법칙의 엄중함에 따른다는 것만을 눈에 불을 켜고 확인하려 들었다. 작품마다 독자를 압도하는 거대한 관념들의 전개, 귀족 세력을 서서히 압박해 들어가는 상인 세력의 발흥, 그 갈피에서 오로직 역사 법칙에만 복무하는 듯한 인물의 행위들, 이런 독서는 결국 나의 발자크 읽기를 극도로 피로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나는 발자크 작품들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극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