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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린 삶의 축을 바로잡아줄 길잡이 《주간동아》 1126호(2018. 02. 14, 60~61쪽)에 실린 글입니다. 지난해 나온 책들 중에 연휴를 맞이해서 읽을 만한 책을 골라서 소개했습니다. 비틀린 삶의 축을 바로잡아줄 길잡이연휴에 꼭 손에 들어야 할 8권 책을 왜 읽는가. 지식이나 정보를 얻는다고 생각하면, 지금에야 굳이 책일 까닭도 없다. 온라인 공간에는 평생 봐도 다 못 읽을 자료와 기록이 이미 즐비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끝없이 생겨나는 중이다. 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좋은 스승을 좇아 서점이나 도서관 등에서 열리는 강좌나 강연에 참석해도 좋고, 바란다면 여러 가지 동영상 강의를 이용할 수도 있다. 내용이 충실하고 수준 높기로 정평 난 강의만 챙겨도 이번 생을 채우고도 남는다.하지만 지식과 정보의 습득 말고 책을 읽는 더 깊은 이유..
기자 헤밍웨이는 어떻게 글을 썼을까 기자 헤밍웨이는 어떻게 글을 썼을까― 사실을 말하기, 오직 진실만을 이야기하기 “전쟁은 작가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노년의 대가 헤밍웨이가 말한다. 확실히 그럴 만하다. 전쟁과 같은 끔찍한 경험은 작가에게 인생의 비밀을 깨닫게 해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말에 대해 당신이 작게라도 매혹을 느꼈다면, 덧붙은 한마디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나는 전쟁을 깊이 증오합니다.”청년 헤밍웨이가 기자 생활을 했다는 것, 그리고 작가가 된 이후에도 때때로 종군 기자의 임무를 즐겼음은 잘 알려져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을 입었고, 스페인 내전에 직접 뛰어들어 반파시스트 전선에 섰다는 것은 ‘극한의 경험’을 통해 ‘지혜를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신화를 이룬다.헤밍웨이가 기자로 쓴 글이..
한 걸음 앞으로, 영원한 혁명을 향하여 ― 사사키 아타루의『제자리걸음을 멈추고』를 읽다 지난 한 달, 사사키 아타루의 『제자리걸음을 멈추고』(김소운 옮김, 여문책, 2017)를 틈을 내서 두 번 읽었다. 마음에 드는 책은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다. 사사키 아타루의 말처럼, 끌리는 책은 “마지막 장까지 읽자마자 서두로 되돌아가서 한 구절을 읽는” 식으로밖에 접근할 수 없으니까. 이 영감 넘치는 책에 대한 작은 글을 적어 아래에 옮겨 둔다. 한 걸음 앞으로, 혁명을 향하여사사키 아타루, 『제자리걸음을 멈추고』(김소운 옮김, 여문책, 2017)를 읽고 여러분, 소리 높여 말하세요. 지금 잃어버리고 있는, 있어야 할 대학이 무엇인지를. 그것은 좋은 교양주의이며 연구와 교육의 일치다, 즉 전공만이 아니라 전 인격을 도야하는 지(知)의 집단적 행위이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대학의 자치이고..
[21세기 고전] 그래도 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 《경향신문》에 연재 중인 ‘21세기 고전’. 이번애는 이현수의 『신기생뎐』을 다루었습니다. 역사의 밀물에 떠밀리고 있는 근현대사의 잊힌 삶들에 주목하는 이 작가의 성취는 아주 높습니다. 언어의 세밀화가로서 그녀가 그려내는 세계는 정말 풍요롭죠. 이 작품을 비롯하여 『토란』(문이당, 2003), 『나흘』(문학동네, 2013) 등은 독서공동체에서 같이 읽고 이야기하기에 아주 좋습니다. 군산 부용각. 빼어난 노래와 신명나는 춤을 빌미로 여자들이 사랑을 사고파는, 그러다 사랑을 하기도 잃기도 하는 기생집이다. 이현수의 『신기생뎐』의 무대다. 주요 주인공은 넷이다. 소리기생 오 마담, 부엌어멈 타박네, 춤기생 미스 민, 오 마담을 스무 해 동안 외사랑하는 박 기사. 연작소설의 화자를 이루는 사람마다 사연이 절..
말년의 헤밍웨이가 남긴 글쓰기의 비결 《문화일보》에 실린 서평입니다. 『헤밍웨이의 말』(권진아 옮김, 마음산책, 2017)을 다루었습니다. 말년의 헤밍웨이가 남긴 네 편의 인터뷰를 엮은 가볍고 따스한 책입니다. 누구나 하룻밤 만에 읽을 수 있습니다. 말년의 헤밍웨이가 남긴 글쓰기의 비결 “우리 세대에 작가 헤밍웨이에게 감동받지 않은, 자기 전설의 창조자 헤밍웨이에게 매혹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이 말이 입술을 탄 지 무려 60년을 훌쩍 넘겼지만, 이 ‘우리’가 전혀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열일곱 살에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읽고, 스무 살에 『무기여, 잘 있어라』를 읽고, 서른 살에 『노인과 바다』를 읽었다면, 아니 인생 어느 시기에 그의 작품을 한 편이라도 읽었다면, 이 말이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헤밍웨이는 항상 ‘지금 여기..
[문화일보 서평] 동물원에서 인간과 역사를 성찰하다 _나디아 허의 『동물원 기행』(어크로스, 2016) 이번 주에 읽은 책은 대만의 소설가 나디아 허의 『동물원 기행』(남혜선 옮김, 어크로스, 2016)입니다. 동물원의 역사를 통해, 동물과 인간이 맺어온 관계를 탐색하는 책입니다. 동물원 마니아로서 기회 닿으면 이런 기행을 다녀서 글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러웠다는 뜻입니다. 지면 관계상 조금 줄여서 실렸기에, 아래에 《문화일보》 서평을 원본대로 옮겨 둡니다. 아름다운 문체로 쓰인 글을 읽으면 언제나 질투부터 난다. 특별히 그 문체가 풍요로운 지식과 신선한 감각과 예리한 통찰을 한꺼번에 견디려고 이룩된 것일 때에는 속에서 불이 솟는 기분이 든다. 거기다 나이까지 나보다 어리면 신진을 만난 기쁨과 헛삶에 대한 슬픔이 섞이면서 만감을 불러일으킨다. 대만의 젊은 소설가 나디아 허의 『동물원 기행』..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정수윤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5) 외국어 텍스트를 읽으면서, 그것도 주로 사전에 의지해 읽어가면서 제 마음속 혹은 머릿속에, 그러니까 제 언어의 세계에 다양한 형태의 영어나 프랑스어 원서가 메아리쳤습니다. 그것을 일본어로 옮겨놓고자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정말 새로운 언어와 만나게 됩니다. 혹은 새로운 문장이 떠오르기도 하죠. 이런 식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외국어와 일본어 사이를 오가면서요. 이렇게 언어의 왕복, 감수성의 왕복, 지적인 것의 왕복을 끊임없이 맛보는 작업이,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문체를 가져다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은 번역을 하게 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소설을 썼습니다. ―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정수윤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5), 67쪽 오에 선생의 글은 살짝만 건드려도 소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