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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소설 / 희곡 읽기

[21세기 고전] 그래도 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 《경향신문》에 연재 중인 ‘21세기 고전’. 이번애는 이현수의 『신기생뎐』을 다루었습니다. 역사의 밀물에 떠밀리고 있는 근현대사의 잊힌 삶들에 주목하는 이 작가의 성취는 아주 높습니다. 언어의 세밀화가로서 그녀가 그려내는 세계는 정말 풍요롭죠.  이 작품을 비롯하여 『토란』(문이당,  2003), 『나흘』(문학동네, 2013) 등은 독서공동체에서 같이 읽고 이야기하기에 아주 좋습니다.


군산 부용각. 빼어난 노래와 신명나는 춤을 빌미로 여자들이 사랑을 사고파는, 그러다 사랑을 하기도 잃기도 하는 기생집이다. 이현수의 『신기생뎐』의 무대다. 주요 주인공은 넷이다. 소리기생 오 마담, 부엌어멈 타박네, 춤기생 미스 민, 오 마담을 스무 해 동안 외사랑하는 박 기사. 연작소설의 화자를 이루는 사람마다 사연이 절절하고 구구하다.

“못 본 새 자귀나무 우듬지에도 연분홍이라니. 타박네의 세모진 눈이 자꾸 감긴다. 천지가 아리삼삼하다. 마늘 냄새, 파 냄새를 배리착지근하게 풍기고 다니는 타박네의 조막만 한 몸뚱아리가 때 아닌 꽃향기에 취해 하늘하늘 풀어지려고 한다.”

이현수 소설의 높은 경지는 때때로 ‘문장의 맛깔’에 가려진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의 삶을 세밀한 한 조각조차 버려두지 않으려는 작가의 집중된 관심은, 그 삶의 생생한 현실성에 입문하는 길을 막는 문턱이 된다. 문명의 숨 가쁜 속도와 리듬에 적응하고 살아야 할 우리의 비루한 현대적 정신이 몸속 어딘가에서 낯익은 괴물처럼 솟아오르는 고전적 문장의 신명에 놀라 주춤거리게 하는 것이다. 

“넘실거리는 춤사위에 자신을 내맡긴 채 태산과 같은 장중함으로 소슬바람을 치마 가득 품고 지그시 돌아설 제, 이제 막 한창인 연보랏빛 들국화가 채련의 어깨 위로 흐드러지고 그녀의 발아래로는 못다 진 희디흰 연꽃 숭어리 소리도 없이 이울었다”

그러나 일단 문턱을 넘고 나면, 부용각 기생으로 피어난 인생의 꽃들을 마음에서 도무지 내려놓을 수가 없다. “단 일 초라도 좋으니 내 것이 아닌 양 아무도 모르게 땅바닥에 살짝 부려놓을 수만 있다면.” 하고 바라는 인생이란 얼마나 처연한가. 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인간으로는 차마 말하지 못해서 창자가 끓는 독백으로만, 외마디 비명으로만 고백하는 사랑이 심금을 끝없이 건드린다. 

섬뜩할 정도로 치밀하게 조사된 자료에 한국어의 격조와 운율을 한껏 불어넣은 섬세한 연출이 결코 잊지 못할 사랑의 풍경을 빚어낸다. 결국에는 소멸할 운명을 이미 맞았으면서도 새로운 형식을 발견할 때까지 언어를 방황시키는 사랑의 폭죽들.

소설은 새로운 기생 미스 민의 출현으로 안절부절못하는 늙은 기생 오 마담의 불안을 먹이로 삼는다. 언어의 풍속화가로서 이현수는 신들린 묘사와 걸쭉한 입담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부용각에 모여든 사람들의 인생 역정을 끈질기게 기록한다.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속절없이 잊혀 버린 전통 기방 풍속이 무진장한 세밀화로 그려지고, “뼈가 자라기도 전에 뼈가 시린 느낌부터 익힌” 채 살아낸/살아갈 기생의 일생이 그 갈피에 오밀조밀 새겨진다. 

“사랑은 말이다. 비누가루랑 똑같은 기다. 거품만 요란했지 오래 쓰도 못허고, 생각 없이 그 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마 살 속에 기름만 쪽 빼 묵고 도망가는 것도 글코, 그 물이 담긴 대야를 홱 비아뿌만 뽀그르르 몇 방울 거품이 올라오다가 금세 꺼져 뿌는 기 똑 닮었다.”

『신기생뎐』 속의 주인공들은 사랑의 부재를 ‘운명의 형식’으로 타고났다. 그들은 모두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의 노예들이다. 그러나 사랑의 풍요를 위장하는 기방에 종속된 ‘말하는 꽃’이기에 그들은 도리어 사랑의 끝없는 불모를 감당하도록 되어 있다. 그들의 사랑은 거품의 형태로만 세상에서 존재한다. 그리하여 사랑의 갈증으로 늘 가슴이 타지만 사랑의 기쁨은 결코 누리지 못하는 해어화들과 그 주변 인물들의 처연한 비명이 소설 전체에 가득하다. 하아, 다음과 같은 에로티시즘은 절정의 솜씨로 재현되었으나 실제로는 매춘의 한 형태일 뿐, 얼마나 무력한가.

“홑치마로 간신히 몸을 가린 미스 민,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대뜸 느린 살풀이에서 자진 살풀이로 옮아간다. 무릎을 꿇고 두 팔로 바닥을 쓸 제 젖무덤이 훤히 드러나고 겨드랑 사위로 감았다 뿌릴 제는 다리와 허리의 선은 물론이요, 거웃까지 거뭇거뭇 비친다. 몸을 외로 틀 때, 허리를 숙일 때, 한 발을 살짝 들고 돌 때, 얇고 부드러운 홑겹의 생비단 치마는 미스 민의 알몸에 서슴없이 감겨들며 흐르고 감겨들며 나부낀다.” 

부용각의 주인이자 기방 음식의 달인인 타박네. 그녀의 사랑은 ‘환각’이다. 어린 나이로 기생집에 팔려왔으나 못생긴 얼굴로 인해 부엌으로 쫓겨나 음식을 배운다. 그녀의 인생 비밀은 음식 솜씨에 반한 손님에게 강간을 당해 낳은 아들 영식. 손이 끊겼다는 말에 영식을 그 남자 집에 보낸 후, 그녀는 손님을 맞을 때마다 아들이 온 듯 여기면서 살아간다. 

“나중에는 부용각에 오는 모든 손들이 영준이 너로 보이더라. 젊은 영준이, 약간 늙은 영준이, 마른 영준이, 살찐 영준이. 많고도 많은 영준이들이 웃고 떠드는 것 같은데 내 어찌 영준이들에게 먹일 음식에 정성을 들이지 않겠느냐. 혼신의 힘을 다해 마련하지 않겠느냐. 제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처럼 흐뭇한 일이 어디에 있으랴.”

집 나간 아들이 돌아왔을 때 어미가 차리는 음식이니 얼마나 정성을 다하고 솜씨를 더했겠는가. 덕분에 타박네의 음식 솜씨는 달인의 경지에 오른다. 그러나 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는 허무한 인생이 서서히 그녀를 좀먹는다. 비눗방울 같은 사랑밖에 알지 못하면서 오로지 모정에만 매달려서 애 끓이는 사막이 그녀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오 마담은 증조할머니부터 3대를 내리과부로 지내온 집안의 딸. 어미가 “팔자도망은 생각지도 못하고 하나 있는 딸마저 늙힐까 봐 지레 겁을 먹어” 여덟 살 어린 나이에 권번에 넣었다. 수련을 거쳐서 소리를 익히고 부용각을 상징하는 소리기생이 된 그녀는 한때 약속을 두지 않으면 만나지 못할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지금은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고 술에 중독되는 바람에 높은 소리를 치지 못하는 몸이 된 후 뒷방으로 물러나 쓸쓸한 여생을 불안해하는 중이다. 물론 여전히 오 마담의 소리에는 산전수전을 모두 겪으면서 이룩한 그윽함이 담겨 있다. 

“오 마담 시김새 소리 좀 들어보게나. 특정 음에서 특정 음으로 곧장 가지 않고 한 음의 주변을 맴돌며 잘게 떨리는 소리. 음가를 짧게 쪼개어 때로는 끌어올리고 때로는 미끄러져 내려 본래의 음 높이마저 흐리는 저 소리.”

오 마담은 철새 도래지 같은 사랑을 한다. 소리로는 꿈같은 인생을 실어서 듣는 사람의 가슴을 베어낼 줄 알지만, 몸으로는 고독을 전혀 이기지 못한 채 모든 것은 내주고 허망함을 돌려받는 사랑을 반복 중이다. 그녀의 사랑은 오는 남자 막지 않고 가는 남자 잡지 않는 사랑, 즉 떠도는 사랑이다. 

“남자를 믿은 적이 없으니 그들이 날 버려도 배반을 해도 난 언제나 모든 걸 내줄 수가 있었다. 남자를 부정하고 나니 모든 남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너른 품이 생기더라. 이것이 내 사랑의 방식이었느니.” 

그러나 이 사랑의 형식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소리기생의 높은 긍지도 그녀를 전혀 구원하지 못한다. “이 세상 과부들의 억눌린 살 내 생전에 모다 풀어주고,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애끓는 사랑일랑 싸그리 짊어지고” 살아간다고 눙치지만, 오 마담은 소리에 배어든 쓸쓸함을 도무지 어쩌지 못한다. 

부용각의 새 얼굴 미스 민의 사랑은 텅 비어 있다. 그녀는 본명은 나끝순이다. 이름 그대로 위로는 세 언니가 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단하게 살다가, 세 언니의 바람을 이어받아 국악원에 들어가 춤을 배운다. 하지만 그녀 앞에 놓인 것은 간난과 신고가 분명한 “무형문화재 전수생”의 길. 

예인의 삶을 불안해하던 그녀는 운명의 우연한 희롱에 따라 부용각으로 들어선다. 그러고는 “춥고 고독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무형문화재 전수생으로 견딜 자신이 없어” 화초머리를 얹는 의식을 치르고, 이 시대 마지막 기생이 된다. 자신의 재능을 발현할 손쉬운 길을 찾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족으로부터 그토록 갈구했으나 끝내 받지 못한 정을 부용각에서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춤이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그 정이 아무리 따뜻할지라도, 그녀의 사랑은 필연적으로 속수무책의 절망으로 치달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의 마음속 상처는 자신이 느끼는 공허의 불안대로 전혀 치유되지 못하리라.

“수많은 길들을 헤치고 나아가면 평평한 길이 나올까. 그 길을 가다 보면 길의 끝이 보일까. 십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십 년 같은 나날. 열두 개의 산과 열두 개의 들과 열두 개의 내를 건너 먼먼 곳으로 가면 언니들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 꿈이, 그 미래가 있는 길의 끝에 도착하면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이 보일 것인가. 정말 보이기는 하는 것인가. (중략) 기방은 연회가 계속되는 밤도 있지만 고요한 낮도 있다. 고요함은 기생에게 치명적인 독이 된다. 속수무책이다.” 

박 기사는 군산에 수금하러 왔다가 오 마담에게 반했다. 이 사랑은 붙잡힌 사랑이다. 사내들이 들고나는 오 마담의 방을 망연히 쳐다보면서 스무 해째 속을 끓이는 중이다. 매일 아침 정한수 올리듯, 꿀물을 오 마담 방문 앞에 놓아두는 것이 박 기사의 가장 중요한 일과. 하루를 거르지 않고 같은 자리에 대접을 놓다 보니, 마루가 내려앉아 “인두로 지진 것처럼” 자국이 남았다. 아아, 사랑의 자리를 이토록 가혹하게 표현한 작가는 일찍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대접을 들면 대접 밑 동그란 테의 자국이 인두로 지진 것처럼 마루에 찍힌 것을 볼 수 있다. 여러 개의 테가 아니고 완전하게 둥근 것 하나. 마루를 뜯어내지 않는 한 누구도 그 자국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자국이 결국 오 마담의 마음에도 스며든다. 갈라진 소리를 되찾고자 회음에 사향뜸을 놓을 때, 까무러쳐 기절하는 오 마담의 비명에 박 기사의 이름이 올라선다. 소리의 절정이란, 절정의 소리란, 사랑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도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 마담은 말한다.

“박 기사, 당신에겐 정말 뭐라 할 말이 없소. 당신의 마음이 하는 말을 내 마음이 몰랐다 생각지는 마오. 그러니 너무 헛헛해 말아요. 천지간의 사내란 사내는 모두 품을 수 있으나 당신에게만은 그리 하지 못하는 걸 난들 어떡하오. 그런 삶도 있으려니, 그런 사랑도 있으려니 하면 그뿐. 도덕이나 규범도 규정짓기 나름이고 사랑도 규정하기 나름 아니겠소.”

박 기사가 낸 처절한 자국이 퇴락한 부용각에서 간신히 작은 희망을 만든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별 볼일 없는 삶일지라도, 사랑은 기어이 계속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