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텍스트를 읽으면서, 그것도 주로 사전에 의지해 읽어가면서 제 마음속 혹은 머릿속에, 그러니까 제 언어의 세계에 다양한 형태의 영어나 프랑스어 원서가 메아리쳤습니다. 그것을 일본어로 옮겨놓고자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정말 새로운 언어와 만나게 됩니다. 혹은 새로운 문장이 떠오르기도 하죠.
이런 식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외국어와 일본어 사이를 오가면서요. 이렇게 언어의 왕복, 감수성의 왕복, 지적인 것의 왕복을 끊임없이 맛보는 작업이,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문체를 가져다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은 번역을 하게 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소설을 썼습니다. ―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정수윤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5), 67쪽
오에 선생의 글은 살짝만 건드려도 소리를 내는 악기와 같다. 왕복이라고 부른다면, 이 왕복은 길게 메아리치는 왕복이다. 정신의 솜털을 하나하나 건드린 후에야 되돌아오는 왕복, 그 울림 어느 한 부분은 마음속 깊은 곳에 머무르는 비회귀적 왕복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그래서 오에 선생의 글은 읽을 때마다 새로 읽는 것 같다. 이전에 쳐둔 밑줄이 허망하다. 또 다른 세부들, 또 다른 문장들이 울림을 빚는다.
“새로운 문체”라는 부분에 밑줄을 긋는다. 문체란 단순한 문장 연습으로는 만들지 못한다. 타자와의 언어적, 감성적, 지적 왕복을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다. ‘왕복’이 중요하다.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자꾸 쓰는 것, 즉 읽기를 통해서 생겨난 메아리를 내 혀끝으로, 내 손끝으로 자꾸만 보내는 연습을 통해서 이룩된다. 타자의 책이 타전하는 모스 부호를 자전적 언어와 감성과 앎으로 변환하는 일이 바로 문체다.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쓰기 없이 읽기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쓰기란 또한 내 안에 적층된 읽기를 바깥으로 밀어내는 일이다.
이 아름다운 책은 오에 선생의 독서록이자 창작방법론이자 문학적 자서전이기도 하다. 나중에 다시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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