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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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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을 위한 영화 vs 소수를 위한 영화 오늘 아침 미국의 영화 비평가 데이비드 덴비(David Denby)가 쓴 글을 읽다가 아래와 같은 부분을 마주쳤다.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곱씹어 볼 만한 부분이 많아서 여기에 번역해 둔다. 이 글을 읽으면서 모든 사람을 위한 소설을 쓰는 작가, 모든 이를 위한 시를 쓰는 시인의 재도래를 고대하는 게 다만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사소한 기술적 진전보다는 영혼을 건 위대한 도전에 몰두했던 시대가 그립다. 과거의 위대한 감독들(데이비드 그리피스, 찰리 채플린, 프리드리히 무르나우, 장 르누아르, 월터 랭, 존 포드, 호워드 호크스, 앨프리드 히치콕, 오슨 웰스, 로베르토 로셀리니, 비토리오 데 시카,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 잉마르 베리만, 젊은 프랜시스 코플라, 마틴 스콜세즈, 로버트 올트먼 ..
『출판 천재 간키 하루오』를 읽고 책과 출판의 세계를 앞서 밟아 간 선배들의 회고를 읽는 것은 늘 가슴 벅찬 감동을 준다. 책에 대한 책이나 출판에 대한 책이나 편집에 대한 책을 오랫동안 읽지 않으면 어쩐지 투지가 생기지 않고, 어느새 책 만드는 일이 시들해져 버리곤 한다.지난주 내내 『출판 천재 간키 하루오』(커뮤니케이션북스, 2011)를 읽어 오늘에야 끝마쳤다. 평소보다 독서 속도가 떨어진 것은 책이 지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치열한 출판 정신에 적잖은 감동을 받았고, 그래서 생각들이 군데군데 계속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출판을 꿈꾸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목록에 올려두고 싶다. 간키 하루오(神吉晴夫, 1901~1977)는 일본 출판계에 한 전설을 남긴 편집자로서 고분샤(光文社)의 대표를 역임했다. 일본 최대의 출판사인 고단샤(講談..
심보선과 지그문트 바우만 통제할 수 없는 현재와 무엇이 닥쳐올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공포로부터 달아나는 동시에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지난한 노력 속에서 사람들은 더욱 더 표면적인 것, 더 즉각적인 것에 몰두한다. 그것들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빠져나올 수 있는 부담 없는 임시 정박지와 같다. 예를 들어 살아갈수록 정작 속내를 털어 놓을 만한 친구의 숫자는 줄어드는데 트위터의 팔로워와 페이스북의 친구가 늘어가는 것에 우리는 흐뭇해한다. 하지만 이 만족감은 오래 가지 못한다. '리트윗'과 '좋아요' 버튼을 클릭할 때, 우리는 수백, 수천 명과 소통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 때의 소통이란 '액션'이 아니라 '리액션'의 연쇄에 하나의 고리를 덧붙이는 것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따라서 고개를 끄덕..
행복에 대하여(에피쿠로스) “행운아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은 청년이 아닌, 지금껏 잘 살아온 노인이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청춘기에는 자신의 믿음에 확신이 없어 많이 방황하지만, 정박할 항구에 다다른 노인은 자신의 참 행복을 잘 지켜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가장 위대한 지혜는 우정이다.” 쾌락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는 에피쿠로스는 사실 행복의 철학자였던 것이다. 나는 그의 글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데, 오늘 《월스트리트저널》 한국어판 기사를 읽다가 문득 위의 구절을 만나고는 이 사람 책을 읽고 싶어졌다.
밑줄과 반응 2012년 6월 14일(목) 장인 리처드 세넷 지음, 김홍식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부산 영산대 한성안 교수의 블로그에는 거의 매일 그가 읽은 신문 기사 중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글이 밑줄 친 상태로 올라온다. 오늘 블로그에 올라온 것은 서울경제 조상인 기자가 쓴 『장인』의 리뷰 글이었다. 리처드 세넷의 책은 예전에 감동적으로 읽었기도 하고, 내 편집자론의(그런 게 있기만 하다면^^)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 준 책 중 하나여서 무척 반가웠다. 2010년 스피노자상을 수상한 세계적 석학인 저자 세넷은 50여년 전 자신의 스승 한나 아렌트에게서 이같이 배웠다. 호모 파베르의 판단력이 인류를 문제적 상황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아렌트의 견해에 세넷은 문제를 제기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장인(匠人)의 이미지는..
밑줄과 반응 2012년 6월 13일(수) 무엇이 과연 진정한 지식인가 요아힘 모르 외 지음, 박미화 옮김/더숲 ‘진짜 지식’은 세상 어딘가 특별한 곳에 핏기 없이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정보를 접하는 주체가 세상과 호흡하며 맥락과 용도에 맞게 꾸준히 선별하고 정련시키는 가운데 만들어진다. 동떨어져 있는 듯이 보이는 파편화된 정보들을 잇고 묶고 나누는 ‘정보 편집’ 능력이 중요한데, 이것은 부단한 지식 습득과 정보의 탐구 없이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평생학습사회라는 의미가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수동적 대응 이상의 ‘능동적인 배움의 즐거움’을 표상하는 말로 이해되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출판연구소 백원근 본부장이 오늘 아침 북모닝 CEO 서평에서 한 말로, 『무엇이 과연 진정한 지식인가』(더숲, 2012)에 관..
밑줄과 반응 2012년 6월 2일(토) 1 때때로 그런 방식으로 팔아먹고는 있지만 소셜 미디어 버튼들은 소셜 미디어 전략이 아니다. 월등하게 좋은 콘텐트, 진지한 네트워킹, 지속적인 인간적 참여가 바로 당신이 [소셜 미디어에서] 프로필을 만들어 가는 방법이다. 속마음을 숨긴 채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정보디자이너 올리버 레이첸스타인의 말이다. 소셜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흔히 좋아요나 리트윗 단추를 누르는 것만으로 견고한 사회적 관계가 구축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자신의 내실을 키우고 진지하게 소통하며 지속적으로 타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행위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이 사람 책을 찾아서 읽어 봐야겠다. 날카로운 통찰이다. 2 당신 인생을 위한 비전을 품을 필요가 있다. 인생을 위한 어떤 계..
밑줄과 반응 2012년 5월 31일(목) 고대 중국에서 민(民)이란 글자는 한쪽 눈을 찔러서 상해를 입힌 노예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하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지배층 인(人)과 피지배층 민(民)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인’이 사람이었다면 ‘민’은 사람도 아니었다. ― 『저항자들의 책』 누군가의 서평을 읽다가 인용문을 밑줄쳐 두었다. 여기까지 적어 두고 다른 일을 하다가 잊어버리는 바람에 출처를 상실했다. 아마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서평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다. 보통선거와 의무교육이 실시된 이후, 그래서 모두가 한 표만큼의 정체성을 갖게 된 이후, 우리는 이 사실을 깜빡 잊어버리곤 한다. 역사는 민(民)이 인(人)으로 바뀌는 기나긴 진보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