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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밑줄과 반응 2012년 6월 14일(목)



장인 


리처드 세넷 지음, 김홍식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부산 영산대 한성안 교수의 블로그에는 거의 매일 그가 읽은 신문 기사 중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글이 밑줄 친 상태로 올라온다. 오늘 블로그에 올라온 것은 서울경제 조상인 기자가 쓴 『장인』의 리뷰 글이었다. 리처드 세넷의 책은 예전에 감동적으로 읽었기도 하고, 내 편집자론의(그런 게 있기만 하다면^^)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 준 책 중 하나여서 무척 반가웠다.  


2010년 스피노자상을 수상한 세계적 석학인 저자 세넷은 50여년 전 자신의 스승 한나 아렌트에게서 이같이 배웠다. 호모 파베르의 판단력이 인류를 문제적 상황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아렌트의 견해에 세넷은 문제를 제기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장인(匠人)의 이미지는 일 이외의 모든 것에 초연한 듯 오직 일 자체를 위해 몰입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스승(아렌트)은 노동 중의 인간은 의식이 없고 끝난 뒤에야 의식이 등장한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저자는 "과연 인간은 일하는 동안 아무 생각도 의식도 없는 것일까" 되묻는다. 저자는 "사람들은 자신이 만드는 물건을 통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울 수 있다"면서 "우리가 물건을 만드는 과정을 더 잘 알게 된다면 '호모 파베르'보다는 '아니말 라보란스'에게서 희망을 찾고 싶다"는 반론을 펼친다.

책은 인간 고유의 손 작업과 기능, 노동의 역사를 관통하며 '일'의 순수한 본질을 파고 든다. "일 자체를 위해서 일을 훌륭히 해내려는 욕망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고 보는 저자는 "간의 생각과 감정이 일하는 과정 안에 갇혀 있다고 보는 게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이라 전제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편집자들도 틈만 나면 핑게를 대고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떠나고 싶어 하며, 그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일에서 소외된다. 리처드 세넷의 말을 빌리자면, 편집자 역시 오직 자신이 만드는 책을 통해서만 자신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최근 편집자들이 살인적 일정에 쫓기면서 자신의 책을 읽고 교정하고 편집하는 일을 아웃소싱하는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자신의 책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일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내가 속한 회사도 최대한 애쓰고 있지만 이런 부분에서 전혀 자유롭지는 못하다. 편집자가 일하는 과정을 장인적인 방식으로 유지하지 않는다면  그의 노동은 투자 수익을 노리는 뱅커들(bankers)과 아주 비슷해질 것이다. 그러고 나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 가서 결국에는 이른바 ‘좋은’ 책이 출판 바깥으로 내몰리는 현재의 현상이 더욱 격렬해지리라. 책을 기획하기만 하고 만들지 않는 현대의 편집자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런 행위가 계속된다면 스스로의 미래를 삭제하는 게 될 테니까.


손과 머리는 하나이고, 행동하면서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 장인의 일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뛰어난 장인은 작업과 생각 사이를 오가면서 대화한다. 이런 장인 정신을 되살려 현대문명에서 장인과 예술가, 제작자와 사용자 등으로 구분해온 기존 이론을 떨쳐내고 '생각하는 손'을 되찾자고 주장한다. 

[출처] 생각하는 손|작성자 saintcom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