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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심보선과 지그문트 바우만

통제할 수 없는 현재와 무엇이 닥쳐올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공포로부터 달아나는 동시에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지난한 노력 속에서 사람들은 더욱 더 표면적인 것, 더 즉각적인 것에 몰두한다. 그것들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빠져나올 수 있는 부담 없는 임시 정박지와 같다. 예를 들어 살아갈수록 정작 속내를 털어 놓을 만한 친구의 숫자는 줄어드는데 트위터의 팔로워와 페이스북의 친구가 늘어가는 것에 우리는 흐뭇해한다. 하지만 이 만족감은 오래 가지 못한다. '리트윗'과 '좋아요' 버튼을 클릭할 때, 우리는 수백, 수천 명과 소통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 때의 소통이란 '액션'이 아니라 '리액션'의 연쇄에 하나의 고리를 덧붙이는 것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따라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소통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러한 '유사 소통'의 폐쇄 회로에 갇힌 상태에서 불만족으로의 급락을 다시 만족으로 끌어올리는 해결책이 있다면, 그것은 예전보다 더, 더, 더 많은 클릭을 주고받는 일 뿐이다(주식 시장에서 개미들이 보이는 기민함처럼). 그리고 이런 클릭질의 교환이 결코 끝을 맺지 않는다는 점에서 해결책은 언제나 임시적일 뿐 본질적으로 무용하고 심지어 더 해롭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더 중요한 것을 상실한다. (심보선)


《프레시안 북스 리뷰》 3호가 나왔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이번 호 주제이다. 바우만의 최신작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심보선의 서평 중에서 한 구절을 골랐다. 나는 오랫동안 바우만의 글을 읽고 좋아해 왔고, 이 책은 영어로 먼저 읽고 번역본이 나오기를 기다려 왔다. 하지만 그 책에 대한 서평을 심보선의 글로 읽는 것은 또다른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시인이자 사회학자이자 행동예술가인 심보선의 작업은 늘 고독하면서도 집합적인 지점을 겨냥해 왔고, 그의 시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가해한 감정을 평이한 언어로 선연하게 감각화해 왔는데, 이번 서평 역시 사상가 바우만의 깊이와 예술가 심보선의 예리함이 서로 만나서 합창적 사유를 보여 주는 특장이 충분히 드러나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현대의 소통에 대한 위의 글은 서평 안에서 둥지를 틀고 자리 잡은 심보선의 독립적인 공간을 잘 보여 준다. 서평이란 이렇게 쓰는 것이다. 책의 틈새에 슬쩍 자신의 사유 공간을 끼워 넣어 전체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심보선이 뽑은 바우만의 글들


"얇은 빙판 위의 스케이터가 얼음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서는 스케이트를 더 빠른 속도로 지치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31쪽)


"인간은 인생이라는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이다.


자기 실존의 그 철저한 부조리에 직면해 있었던 시시포스의 곤경일지라도 그 안에는 분명 (아무리 지독히도 아주 작은 공간일지라도) 프로메테우스가 발을 들여놓아도 될 만큼 충분한 공간이 있는 법"(387쪽)이다.


"수용하는 저 행위 자체가 반항으로 나아가는 길을 마련"(388쪽)할 수 있다.


"반란과 혁명, 자유를 향한 노력들이야말로 인간의 실존에 필연적인 측면들"(389쪽)이다.



기타


"이 복잡한 암흑 세계와 대면한 나의 생각들은 혼란스럽다. (슈타인라우프처럼) 정말 체계를 세워서 그것을 실천해야 할까? 아니면 (엘리아스처럼) 체계가 없는 것에 적응하며 사는 것이 나을까?"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이현경 옮김, 돌베개 펴냄), 58쪽. 괄호 안은 심보선 삽입.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이탈로 칼비노)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동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