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움에 지치면서 읽은 책 ― 김혜형의 『자연에서 읽다』(낮은산, 2017)
부러움에 지치면서 읽은 책― 김혜형의 『자연에서 읽다』(낮은산, 2017) 하루 종일 논물 위에 엎드려 피를 뽑으며 생각했어요. 밥이 내 입으로 들어올 때 이젠 이 모든 것들이 오버랩 될 거야, 하고요. 갓 발아한 볍씨, 연둣빛 모판, 발가락 사이로 감겨드는 논흙의 감촉, 흙때 낀 손톱, 끊어질 듯한 허리, 햇빛에 반짝이는 수면, 논둑을 걷는 아이들의 물그림자……. 체감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들은 쉽게 망각되지 않습니다. (중략) 머릿속으로 아는 것의 뿌리는 참 얕아서, 알았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모르는 것일 수 있겠구나 싶어요. 내가 보는 세상의 피상성, 상투화가 은폐하는 삶의 세부, ‘안다’는 생각이 일으키는 착시와 결여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부러움에 지치면서 읽는 책이 있다. 김혜형의 『자연에서 읽..
시여, 사랑이여, 비극이여 _ 이응준 시집 [애인]의 발문
이응준 시집 [애인](민음사)이 출간되다. 그와의 우정을 표시하기 위해 오랜만에 짤막한 글을 발문의 형태로 한 편 쓰다. 시여, 사랑이여, 비극이여 이응준 시집 [애인] 발문 하나가 둘을, 이별이 사랑을, 고독이 공존을, 고요가 환호를 침식한다. 사랑의 소멸, 이것은 낭만적 환영의 결과가 아니다. 희망의 끝자리, 좌절의 절벽 앞에 선 자의 절망이 아니다. 거기에 숙명적 체념이나 운명적 슬픔 같은 것은 없다. 생계와 생명을, 고여 썩어 가는 삶과 약동하는 죽음을 맞바꾼 자의 분투가 있을 뿐이다. 그 분투는 모든 것을 대가로 치른다. 한없이 사랑을 갈망하지만 오로지 혼자로서만 살아 있을 수 있는 짐승이 모든 곳에서 출현한다. 연애하는 짐승의 무정함과 무정한 짐승의 연애가 빚어내는 기이한 변증이 빛을 어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