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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시 / 에세이 읽기

시여, 사랑이여, 비극이여 _ 이응준 시집 [애인]의 발문




이응준 시집 [애인](민음사)이 출간되다. 그와의 우정을 표시하기 위해 오랜만에 짤막한 글을 발문의 형태로 한 편 쓰다.








시여, 사랑이여, 비극이여

이응준 시집 [애인] 발문





하나가 둘을, 이별이 사랑을, 고독이 공존을, 고요가 환호를 침식한다. 사랑의 소멸, 이것은 낭만적 환영의 결과가 아니다. 희망의 끝자리, 좌절의 절벽 앞에 선 자의 절망이 아니다. 거기에 숙명적 체념이나 운명적 슬픔 같은 것은 없다. 생계와 생명을, 고여 썩어 가는 삶과 약동하는 죽음을 맞바꾼 자의 분투가 있을 뿐이다. 그 분투는 모든 것을 대가로 치른다. 한없이 사랑을 갈망하지만 오로지 혼자로서만 살아 있을 수 있는 짐승이 모든 곳에서 출현한다. 연애하는 짐승의 무정함과 무정한 짐승의 연애가 빚어내는 기이한 변증이 빛을 어둠으로, 기쁨을 슬픔으로, 너에 대한 생각을 나에 대한 사유로 치환한다. 이게 이응준이다.

소년, 영원한 소년이 거기에 있다. 어둠에 웅크린 채 자기를 짐승처럼 벼리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가장 빛나기를 갈증하기에 오히려 존재의 어두운 심연으로 전진하는, 빛 속에서는 까맣게 웅크린 어둠에 끌리고 어둠 속에서는 희미하게 깃들인 빛에 유혹되었던 비극적 짐승으로서의 삶을 마다하지 않았다. 본래 시로 세상에 나왔으나 산문의 세계로 질주했던, 그러나 소설이라는 메마른 질서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시적인 것을 삽입하고자 했던 치열한 도전의 연속체는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이 시집 『애인』 은 사랑과 이별의 연맹을 보여 준다. 인생이라는 열기에 말라 버린 삶, 가장 뜨거운 자만이 가 닿아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 그러니까 “사막”에 대하여, 그 위를 떠돌면서 횡단하는 “낙타 같은 그녀”(「애인」)에 대하여, “마주하면 사라지게 될 그”(「피의 조건」)에 대하여 쓴다. 사랑의 순진한 갈망이 내면의 치열한 어둠을 만나서 꾸는 악몽들은 그의 오랜 주제였다. 일상의 사랑과는 달리 어떤 분비도 불러오지 않고 어떤 얼굴도 재생산하지 않는, 소름끼치는 사악한 공상을 통해서만 그/그녀를 만나는 청년은 우리 젊음들의 영원한 투영이었다. 이 베르테르적 인간은 현실이라는 봉건적이고 낡은 세계 속에서 근대의 세련된 삶과 문화를 엿보고 동경했던 시대적 불운 속에서 태어났지만, 그 시간적 지평을 뛰어넘어 사랑의 영원성을 번민하는 모든 우리에게 회귀한다. 

오랫동안 이응준의 작품을 읽어 온 사람은 모두 알리라. 사람에 대해서는 수줍어하고 세계에 대해서는 고집을 세웠던 젊은이가, 그리하여 자기 고독의 미학을 삶 속에서 수립하고 스스로 지켜 가면서 타자와 세계에 대해 강요했던 그 청년이 아직도 날을 시퍼렇게 세운 채 조금의 후퇴도 없이 그 자리에서 버팅기고 있음을. 이 시집의 언어들은 지난 스무 해 동안 그의 내면의 피를 먹고 성숙했지만, 내 기억 속에서 혈죽(血竹)으로서 곧추서서 세상을 내려다보았던 첫 번째 그는 조금도 희미해지지 않았다. 가령, 이런 모습.

"그대와 그대에 관한 빗소리 없이는 / 어두운 방에 잠시도 누워 있질 못하는 참 요긴한 우울과 두통"(「나는 장마에 대하여 다시 쓴다」)

이응준은 어둠 속에서 우울과 투통에 시달리면서 그/그녀를 생각하는 어떤 인간의 의미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추구한다. 『국가의 사생활』이나 『내 연애의 모든 것』 같은 이야기가 강화된 최근의 소설적 변신 중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이 끔찍한 우울, 사랑에 의해 촉발되고 예술에 의해 강화된 우울이야말로 그를 계속 현실 바깥으로, 그러니까 그만 홀로 있는 공간으로 내몬다.

이러한 자에게 사랑은 도착하지 않는다. 지연되고 미루어진다. 그러나 그 사랑은 실연의 형태가 아니라 어쩌면 짝사랑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에게 짝사랑이야말로 완벽한 사랑이다. 그것은 교환되지 않은 채, 아니 교환되지 않음으로써만 가치를 더한다. 그는 먼저 그리워하고 미리 사랑을 잃는다. 그/그녀에 대한 사랑을 보상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실연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실연은 끊임없이 욕망을 자기 기억과 교환하는, 내연할수록 더욱 자폐 속으로 떨어지는 사랑이다. 그에 비해 짝사랑은 몫 없는 자의 사랑, 이루어질 수 없지만 바깥으로 열려 결코 닫히지 않는, 그/그녀에게 끝없이 향하지만 귓바퀴에 걸리지 못하는, 그러나 끊어지지 않고 계속 반복되는 언어의 연쇄로 이루어진 외향적 사랑이다. 그것은 “상처”를 낳지만, 그 상처는 외려 “건강성”의 증거가 된다.

『애인』은 이런 사랑의 건강성에 대한 시집이다. 사랑이 그의 영혼에 낸 날카로운 빗금들, 그러니까 상처가 이 시들을 만든 게 아니다. 반대로 시가 존재하려고 먼저 상처들이 있었던 것이다. 사랑의 불운이 가져다 준 깊고 진한 어둠이 나에게 침투해 들어온 게 아니다. 바깥으로 열려 있으면서 동시에 단단히 자기를 지켜 온 내가 어둠으로 스며든 것이다. 그/그녀에게 열려 있지만 나를 잃지 않고, 나를 꾸준히 지켜 가면서 다시 그/그녀를 끌어들여 변주하는 자아의 이 대단한 건강성은 이응준이 여태껏 영구 기관이 달린 기계처럼 멈추지 않고 좇았던 일이다.

나만 있는 세계는 불행하다. 자기밖에 그릴 줄 모르는 화가는 비참하다. 타자가 들어오는 수치를 견딜 수 없는 자는 끔찍하다. 그러나 이 불행과 비참과 끔찍함을 양식 삼아, 이응준은 오늘도 우리에게 속삭인다, 읊조린다, 외친다. “사랑해.”




미학주의자로서의 이응준의 초상을 예리하게 포착한 중앙일보 권혁재 기자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