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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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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미래] 휴머리즘시대의 창조 교육 인간과 기계가 지능적 협업을 통해서 새로운 종류의 일을 창출하는 ‘휴머리즘(human+algorithm)’의 시대다. 인공지능은 기존 데이터 패턴을 빠르게 파악하고, 거기에 인간이 창조성을 더해서 눈부신 성취를 얻자는 말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의 등장은, 인간 자신의 고유성을 촉진하는 쪽으로 진화할 것을 인류에게 요구한다.인공지능과 공진화하려 할 때 ‘인간의 고유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토머스 프리드먼의 『늦어서 고마워』에 중요한 실마리 하나가 나온다. ‘정지 또는 휴식하는 능력’이다. “기계는 정지 버튼을 누르면 멈춘다. 그러나 인간에게 정지 버튼을 누르면 무언가를 시작한다. 멈춰 서서 곰곰이 생각하고, 전제를 다시 생각하며, 무엇이 가능한지 다시 구상하고, 무엇보다 가장 깊이 간직하고 있는 믿..
부러움에 지치면서 읽은 책 ― 김혜형의 『자연에서 읽다』(낮은산, 2017) 부러움에 지치면서 읽은 책― 김혜형의 『자연에서 읽다』(낮은산, 2017) 하루 종일 논물 위에 엎드려 피를 뽑으며 생각했어요. 밥이 내 입으로 들어올 때 이젠 이 모든 것들이 오버랩 될 거야, 하고요. 갓 발아한 볍씨, 연둣빛 모판, 발가락 사이로 감겨드는 논흙의 감촉, 흙때 낀 손톱, 끊어질 듯한 허리, 햇빛에 반짝이는 수면, 논둑을 걷는 아이들의 물그림자……. 체감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들은 쉽게 망각되지 않습니다. (중략) 머릿속으로 아는 것의 뿌리는 참 얕아서, 알았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모르는 것일 수 있겠구나 싶어요. 내가 보는 세상의 피상성, 상투화가 은폐하는 삶의 세부, ‘안다’는 생각이 일으키는 착시와 결여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부러움에 지치면서 읽는 책이 있다. 김혜형의 『자연에서 읽..
[매경칼럼] 스스로 공부하는 인간 “지적 욕구에 불타던 터라 일주일에 한두 번 하는 세미나 수업을 많이 신청했습니다. 그리스어로 플라톤을 읽고, 라틴어로 토마스 아퀴나스를 읽고, 프랑스어로 베르그송을 읽고, 독일어로 비트겐슈타인을 읽었습니다. …… 모두 소수학생만 듣는 수업이어서 결석은 불가능했습니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만 했던 셈입니다.”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 나오는 동경대 수업 이야기다. 요즈음 대학을 생각하면 정말 꿈같아 보인다. 이 회고는 학부 수업만으로 다치바나 같은 지적 거인을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등교육의 목표는 ‘공부한 인간’이 아니라 ‘공부하는 인간’을 기르는 것이다. 대학은 수업료를 내고 강의를 들은 후, 졸업 단추를 누르면 직장이라는 상품이 쏟아지는 자판기가 아니다...
국내 최초, 동네서점에서만 판매하는 책이 나왔다 국내 최초, 동네서점에서만 판매하는 책이 나왔다 책을 사랑한다면, 여름휴가는 동네서점으로 민음사 쏜살문고 동네서점 독점판 2종 출간 국내 최초로 동네서점에서만 판매하는 특별판 책이 나왔다. 민음사는 기존 세계문학전집에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두 종을 특별판으로 제작해서 전국의 동네서점 125곳의 서점에서만 판매하기로 했다. 이 이벤트에는 진주문고, 충주 책이있는글터, 군산 한길문고, 안산대동서적, 춘천 광장서적, 속초 동아서적, 일산 한양문고, 서울 불광문고 등 지역 대표서점들과 51페이지, 책방 이음, 달팽이책방, 동네책방 숨, 개똥이네, 풀무질, 그날이오면, 최인아책방, 고요서사, 봄날의책방, 소심한책방 등 전국 독립서점들이 함께 참여한다. 인터..
[책과 미래] ‘헬조선’을 말하는 청년 햄릿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헬조선’을 둘러싼 사회적 잡담이 치열하다. 카이스트 이병태 교수가 “헬조선이라 빈정대지 마라. 부모들 모두 울고 싶은 심정”이라며, “스타벅스, 배낭여행, 컴퓨터 게임 등 지금 누리는 것 중 청년세대가 이룬 것”은 없으니, “응석부릴 시간에 공부하고 너른 세상을 보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자,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5천년 역사 최고 행복세대의 오만”이라고 거세게 비판하는 등 이에 대한 찬반이 이어지는 중이다.이 교수가 『햄릿』을 읽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는 마치 햄릿의 이해와 사랑을 갈구하는 거트루드 왕비 같다. “아들아, 어두운 낯빛을 버리고 친구를 바라보는 눈으로 덴마크를 보아라. 죽은 네 아버지를 찾지 마라. 흔한 일이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을 수밖에 없어.”완벽한 헛발질..
[책과 미래] 아이들은 왜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매주 토요일, 《매일경제신문》에 제 이름으로 나가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저의 관심사는 책이 기록한, 또 제가 경험했던 책의 인간들 이야기입니다. 저자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발상하고, 일하고, 사랑하고, 저술하면서 창조성을 유지하는 것일까요.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인간들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칼럼이니까, 100% 맞출 수는 없겠지만, 대략 이런 이야기들을 써보려고 합니다. 아래에 옮겨 둡니다. 칼럼마다 반드시 제가 읽었던 책이 하나씩 들어갑니다. 아이들은 왜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옛날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단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싫어하는 아이는 이상하게도 전혀 없다. 졸린 눈을 억지로 비벼 뜨고, 부모가 지칠 때까지 ‘하나 더’ 이야기를 ..
[풍월당 문학강의] 인간은 모두 블라디미르이거나 에스트라공이다 -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 씨가 오늘밤엔 못 오고 내일은 꼭 오겠다고 전하랬어요.”저녁이 되면 소년이 온다. ‘내일’이 선포되고, ‘오늘’이 또다시 지나간다. “밤을 기다리고, 고도를 기다리고…… 또 어쨌든 기다리는……” 내일이 오늘과 똑같지 않기를 갈망하지만, 밤이 지나 다음 날이 오면, 도돌이표처럼 붙박인 하루가 또 온다. 오늘이 찾아오면 내일이기를 바라지만, 그 내일이 다시 오늘과 다르지 않다. 그 무한한 반복 속에서 우리들 블라디미르와 우리들 에스트라공은 ‘고도’가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고도는 오지 않고, 또다시 소년이 온다. 그렇다면 고도를 기다리는 우리의 삶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한 달에 한 번, 풍월당 아카데미에서 고전문학을 같이 읽습니다. 요즈음 같이 읽는 것은 ‘실존의 문학들’입니다. 헤밍웨이의 『노..
꼰대가 될 것인가, 시인이 될 것인가 《중앙선데이》에 한 달에 한 번 쓰는 칼럼입니다. 지난달, 풍월당에서 강의했던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다가 영감을 얻어 일종의 ‘문학적 꼰대론’을 써 보았습니다. 강의를 위해 반복해서 작품을 읽다 보니, 사르트르가 평생에 걸쳐 싸웠던 삶의 실체, 이른바 부르주아적 삶에 깃든 역거운 허위의식의 실체가 조금은 들여다보이는 듯했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죠.《중앙선데이》 편집이 바뀌어서 조금 손보았는데, 아래에 전문을 옮겨 둡니다. 꼰대가 될 것인가, 시인이 될 것인가 “40대가 넘으면 ‘경험의 직업인’들은 작은 집착이나 몇몇 속담을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들은 자동판매기가 되기 시작한다. 왼쪽 주입기에 동전 몇 개를 넣으면 은종이에 싸인 일화가 나온다. 오른쪽 주입기에 동전 몇 개를 넣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