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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한시

온정균(溫庭筠)의 「정서번(定西蕃) 3」

정서번(定西蕃) 3

 

                                      온정균(溫庭筠)

 

내리는 보슬비, 새벽의 꾀꼬리, 봄날은 저무는데(細雨曉鶯春晩),

옥 같은 사람, 눈썹 같은 버들잎(人似玉, 柳如眉),

더없이 그립구나(正想思).

 

비단 휘장, 비취 주렴, 걷으려 하는데(羅幕翠簾初捲),

거울 속에는 꽃 가지 하나 놓여 있네(鏡中花一枝).

변방 소식에 애간장이 끊어지는데(腸斷塞門消息),

기러기마저 드물게 날아오누나(雁來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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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꾀꼬리

 

제목의 정서번(定西蕃)은 당나라 말기, 송나라 초기에 만들어진 노래 곡조 중 하나이다. 사패마다 글자 수가 정해져 있어서 여기에 맞추어 가사를 지어야 했다.

이 작품은 변방으로 군역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모습을 애절하게 그려낸다.

시절은 봄날이다. 보슬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새벽, 짝을 찾는 꾀꼬리 소리에 아내는 문득 잠에서 깨어난다. 임은 곁에 없는데, 꾀꼬리 소리는 옥 같은 임의 얼굴을 떠오르게 하고, 낭창하게 늘어진 버들잎은 임의 눈썹을 생각나게 한다. 어찌 그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욱한 안개비는 그리움이 번져 가는 아련한 심정을 부추긴다. 탁월한 묘사력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내는 침상의 휘장을 걷고 창가의 주렴을 올리려 움직인다. 그러다 문득 거울에 눈이 간다. “거울 속에는 꽃가지 하나만 있다.”

나비는 어디로 갔는가. 홀로 남은 여인의 외로운 심정을 잘 보여 주는 당시의 명구 중 하나이다. 혹여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남편에 대한 근심에 애간장이 끊어지는데, 북에서 오는 기러기마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고독에 몸부림치면서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마음을 이만큼 절절히 표현한 작품은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