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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한시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오형(吳詗)의 추일범주(秋日泛舟, 가을날 배를 띄우다)

가을날 배를 띄우다


오형(吳詗, 1242∼1314)


물새는 떴다가 가라앉고,

모래톱은 곧았다 구부러지네.

배 옆으로 산이 그림을 펼치고,

노를 맞아 물결이 꽃을 피우네.


秋日泛舟


水鳥浮還沒,

沙洲直復斜.

傍舟山展畵,

迎棹浪生花.


이 시는 고려 후기의 문신 오형의 작품입니다. 오형은 어릴 때 이름인 오한경(吳漢卿)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학문이 정밀하고 넓었으며 마음이 너그럽고 꾸밈이 없어 대인의 풍모가 있었다고 전합니다. 「가을날 배를 띄우다(秋日泛舟)」는 오형의 문재를 알 수 있는 수려한 작품으로 공민왕 때 최해(崔瀣, 1288∼1340)가 편집한 『동인지문(東人之文)』(1355)에 실려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시는 두 수 연작으로 된 작품 중 뒤의 것입니다.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작품으로 요즈음 같은 만추(晩秋)에 읽으면 참 좋은 작품입니다. 

시의 화자는 지금 강물에 배를 띄우고 가을을 즐기는 중입니다. 눈을 들어 멀리 내다보니 물새들이 수평선 위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마치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 같습니다. 고개를 돌려 좌우를 보니, 배가 흘러감에 따라 강가 모래톱이 곧아졌다 구부러졌다 하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유유자적(悠悠自適), 물살이 흐르는 대로 마음도 같이 너그러워집니다. 나타남과 사라짐, 곧음과 구부러짐이 꼭 삶의 굴곡과도 같습니다. 오를 때가 있으면 내려가고 내려갈 때가 있으면 오르기도 하는 게 삶 아닐까요? 강을 따라 서서히 흐르는 한 조각 배처럼, 인생 역시 세상이라는 강물에 떠서 곧음과 굽음을 겪어가면서 지나가는 것이겠지요.

배가 흘러감에 따라 좌우로 울긋불긋한 산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배 옆으로 산이 그림을 펼친다(傍舟山展畵)”니, 참으로 생동감 있는 묘사입니다. 단풍을 빌려서 살아 있는 듯, 산이 눈앞으로 그림을 그려냅니다. 복사꽃이 가득 피어난 듯합니다. 살아서 무릉을 보는 황홀이 화자를 사로잡습니다. 몽롱한 눈으로 다시 물을 내려다보니 흰 꽃들이 연이어 피어납니다. 물결이 노에 부딪히면서 점점이 하늘로 꽃을 피워 올립니다.(迎棹浪生花) 늦가을에 꽃을 보다니, 아, 절정입니다.


1구의 환(還)은 부사로 ‘도로’라는 뜻입니다. 2구의 부(復)도 부사로 ‘다시’라는 뜻입니다. 3구의 방(傍)은 ‘곁’ ‘옆’으로 새깁니다. 전화(展畵)는 두루마리에 만 그림을 펼쳐내는 모습을 형용한 것입니다. 영도(迎棹)는 ‘노 젓는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사람이 물결을 가르면서 노를 젓지만, 물결의 관점에서 보면 노를 맞이하는 일과 같습니다. 생화(生花)는 ‘꽃을 피우다’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