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번역/한시

온정균(溫庭筠)의 「보살만(菩薩蠻) 4」

보살만(菩薩蠻) 4

 

푸른 꼬리 금빛 깃털 물수리 한 쌍(翠翹金縷雙鸂鶒),

물결무늬 살짝 이는 봄 연못이 파라네(水紋細起春池碧).

연못가 해당화는(池上海棠梨)

비 갠 후 가지를 붉은 꽃으로 채웠구나(雨晴紅滿枝).

 

수놓은 저고리로 보조개를 살짝 가리는데(繡衫遮笑靨)

안개처럼 무성한 풀에는 나비가 달라붙었네(烟草粘飛蝶).

청색 창살 밖엔 향기로운 꽃들이 만발한데(靑瑣對芳菲)

옥문관 너머 임 소식은 드물기만 하구나(玉關音信稀).

 

온정균 초상

 

====

온정균(溫庭筠, 812∼870)은 만당(晩唐)의 시인으로 노래 가사를 잘 지어서 이름이 높았다. 

제목의 보살만(菩薩蠻)은 기루에서 주로 불리던 노랫가락의 한 종류이다. 온정균은 이 노랫가락에 맞추어 여러 편 작품을 지었는데, 이 작품은 그중 한 편이다.

봄의 화려한 색채감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아름답게 꾸민 여성을 화자로 내세워 변방으로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다. 생동감 넘치는 봄 풍경, 잘 꾸민 옷차림이 쓸쓸한 마음과 대비되면서 임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히 드러내고 있다. 

앞의 시편에서 화자는 봄을 맞아 짙푸른 연못에서 헤엄치는 물수리 한 쌍을 바라본다. 연못을 가득 메운 푸른 기운과 해당화의 붉은 꽃이 어우러지면서 한 편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이 화려한 풍경은 임의 부재를 더욱 절실히 만들 뿐이다.  

뒤의 시편에서 화자의 위치가 현재 방 안에 있음을 암시한다. 화자는 수놓은 저고리를 입은 채 미소짓는 입가를 살짝 가리고 있는 중이다. 푸른 창살 밖으로 풀들이 안개처럼 무성하고, 그 위에는 나비가 올라앉아 있다. 함께 봄볕을 즐기던 임은 머나먼 변방 어디에 있는지 아무런 소식도 없다. 

임과 함께 바라보던 봄을 더욱 아름답고 향기롭게 묘사할수록, 쓸쓸한 마음과 애타는 그리움은 더욱더 깊어진다. 변방으로 원정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불안한 마음은 당시의 주요 정서 중 하나였다. 온정균의 이 시는 그 마음을 묘사한 명편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