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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의자, 침묵의 살인자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질병에 시달린다. 타고난 질병도 일부 있으나, 대부분 삶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젊을 때에는 사고나 중독이나 감염 탓에 병에 걸리고, 나이 들면 주로 노화로 인해 병든다. 그러나 당뇨병, 고혈압, 요통, 불안, 우울 같은 이상한 질병들도 있다. 우리의 구석기 조상들은 이러한 질병들을 몰랐다. 자연 상태에서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바이바 크레건리드는 『의자의 배신』(고현석 옮김, 아르테, 2020)에서 인간을 괴롭히는 이 이상한 질병들을 일으킨 범인이 ‘의자’라고 말한다. 

바이바 크레건리드의 『의자의 배신』(고현석 옮김, 아르테, 2020) 

인간의 기본형은 직립이다. 인간은 일어서서 두 발로 걸어서 손을 해방시킴으로써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인간 발은 움직임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고, 특히 오랫동안 걷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하루 대부분을 움직일 수 있도록 인간은 거친 발바닥, 발과 허리를 잇는 거대한 근육, 긴 종아리 근육 등을 타고난다. 

그런데 인간이 걷기를 멈추고 정착과 농경 생활로 이행하면서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운동량이 줄어들고 탄수화물 위주 식단으로 바뀌면서, 키는 줄어들고 뼈는 얇아지고 턱의 모양이 달라졌다. 가축과 더불어 밀집해 사는 도시 생활 덕분에 식량 조달은 편해졌으나 결핵, 천연두, 독감 같은 감염병이 주기적으로 인간을 덮쳤다. 

의자는 약 6000년 전 지중해 지역에서 처음 나타났다. 당시 의자는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앉는 삶’은 소수의 특권이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육체노동을 기계가 대체하자, ‘의자’가 삶의 일반 형식으로 도입된다. 장시간 의자에 앉아 학습하고 노동하는 생활이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20세기 이후, 사무직 노동이 등장하면서 ‘의자’는 일상 곳곳으로 더욱더 퍼져 나간다. 현대인 대부분은 이제 더 이상 걷지 않는다. 집에서, 회사에서, 자동차에서, 음식점에서, 즉 모든 곳에서 의자와 연결된 채 생활한다. “우리는 보통 일주일에 약 70~100시간을 앉아서 보낸다. 이는 수면 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일을 하는 시간보다 길다.” 인간-의자 결합체, 즉 의자 생활자가 우리의 현대적 정체성이다.

‘의자’, 즉 ‘앉는 삶’은 더 쾌적하고, 더 안전하고, 더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느라 움직이기를 포기한 인간 문명 전체의 상징이다. 앉아 있기는 ‘관문 질환’이다. 온갖 질환의 출발점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앉는 삶을 ‘침묵의 살인자’로, 인간이 자기 몸을 배신한 사건으로 비판한다. 하루 8~14km 이동에 최적화된 몸이 걷기를 멈추고 콘크리트 건물에 갇혀 살자, 근육은 약해지고 다양한 관절들은 쓰임새를 잃으면서 우리 몸이 어긋나고 뒤틀리기 시작한다. 천식이 생겨나고, 골밀도가 줄어들고, 요통이 찾아오고, 비만에 시달리고, 혈액순환이 늦어지고, 혈당이 떨어지고, 심장이 허덕댄다. 

일주일에 한두 번 하는 스트레칭 같은 ‘운동’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지 않고, 쪼그려 앉아 쉬며, 속도와 보폭을 달리해 걷고, 맨발로 활동하는 것이 우리 몸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걷기는 기적의 치료제이다. 수백만 년 전 초원에서 살던 종과 우리를 연결하는 연결고리이다.”

초겨울이다. 찬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하는 데다 코로나 탓에 외출 자체가 두렵다. 그러나 일어서 걷고 달리지 않으면 인간은 분명히 병든다. 자, 당장 문을 열고 오늘의 긴 산책을 나갈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