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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사람들이 사라진다


우리 사회에 실종자와 가출인이 늘고 있다. 실종자는 아동, 지적 장애인, 치매 환자 중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이들을 말한다. 실종자 숫자는 2017년 3만 8789명에서 2019년 4만 2390명으로 지난 3년 동안 15.2% 증가했다. 성인 실종자를 뜻하는 가출인 숫자도 같은 기간 6만 5830명에서 7만 5432명으로 14.6% 늘었다. 작년 한 해 합쳐서 11만 7822명에 이른다. 

이들 중 시간이 흘러도 발견되거나 돌아오지 않고 영영 사라지는 사람도 증가 중이다. 미발견 실종자는 2017년 18명, 2018년 25명, 2019년 186명으로 늘었고, 가출인 역시 671명, 809명, 1436명으로 증가세다. 시간이 흐르면 작년 숫자는 서서히 줄지 모르나 그 추세는 변하지 않을 듯하다.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매년 10만 명씩 사람이 증발했고, 이들 중 85%는 자신의 선택이었다. 『인간 증발』(이주영 옮김, 책세상, 2017)은 프랑스의 르포 작가 레나 모제가 5년 동안 일본 각지를 다니면서 사라진 사람들을 끈질기게 추적한 기록이다.

사라진 사람들은 무한 경쟁 사회의 패배자들이다. 부동산 폭락, 사업 실패, 대량 해고 탓에 빚을 갚지 못한 이들이 대부업체의 독촉을 견디지 못하고 증발을 감행하는 경우가 많다. 또 취업 실패, 배우자 불륜 등 인간관계에 지친 이들도 흔하다. 이들 대부분은 먼 곳으로 떠나는 대신 자기가 살던 도시의 슬럼으로 스며든 후 인력 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해 낡은 여인숙과 불결한 쪽방을 의지해 홀로 살아간다.

사라진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 도쿄의 슬럼가인 산야 같은 곳들이다. 이 동네는 대낮에도 선뜻 발을 들이기 힘들 정도로 음산한 곳이다. 일본 정부는 이곳을 사회의 치부로 여기면서, 지도에서 산야라는 지명을 아예 없애 버렸다. 이로써 산야의 주민들은 일본에 있지만 없는 존재, 즉 이름도, 출신도, 사는 곳도 없는 비존재로 전락했다.

이들을 비존재로 몰아간 것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통념을 깨뜨린 이들을 용서하지 않는 일본 사회의 경직된 분위기이다. 타인한테 절대 폐 끼치지 않는 문화가 여기에 덧붙어서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 압력이 커지면 사람은 인생 리셋의 욕망에 굴복한다. 이들의 자발적 선택이란 점에서 증발은 자유의 한 형식이다. 그러나 이 자유는 실제로 호흡하고 움직이는 몸뚱이만 남은 ‘고기’의 자유에 불과하다.

인간 증발은 사실 자본의 배설물이자 필요조건이다. 자본주의는 목숨은 붙어 있으나 법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 없이 유지되지 않는다.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데 돈 안 되는 일을 높은 안전 비용 등을 지불하지 않고 처리할 이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이런 존재를 ‘벌거벗은 생명’이라고 불렀다. 한 사회 안에서 같이 살아가지만 다른 시민과 똑같이 대접받기 위한 법적,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비시민, 비인간으로 취급되는 존재라는 말이다. 

“갔다 올게.”

한 광고가 보여 주듯, 집에서 나갔다 되돌아오는 것이 사회생활의 기본 형식이다. 갔다 오지 못하는 이들이 많으면 사회는 불안하고 불행해진다. 실종의 재난도 끔찍하지만 가출의 증가도 무섭다. 한 차례 실패했다 해서 멀쩡한 성인이 수증기처럼 증발하는 것은 인간의 패배가 아니라 사회의 패배를 드러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책 말미에 도진보 자살 절벽 이야기가 나온다. 죽기로 결심하고 여기 올랐던 이들은 대부분 경찰관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울음을 터뜨리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사실, 이들은 너무나 외로웠던 것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안에서 인간 증발을 증발시키려면 여기가 출발점이다. 관심과 연대 속에 있는 인간은 절대 ‘고기’가 되지 않는다. 


레나 모제의『인간 증발』(이주영 옮김, 책세상, 2017)레나 모제,『인간 증발』, 이주영 옮김(책세상,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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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연재 칼럼, 여기에 옮겨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