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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아빠 찬스’가 취업을 지배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대부분 출신 배경보다 근면 성실이 성공의 열쇠라고 믿는다.” 

로런 리베라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쓴 『그들만의 채용 리그』(지식의날개)의 첫머리다. 오늘날 현대사회는 시민들의 이 건강한 믿음을 배반한다. 이 책의 원제는 혈통(pedigree). 고학력 엘리트 학생들이 고임금 엘리트 직장을 독점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충격적인 책이다. 비결은 ‘아빠 찬스’다.

부유한 고학력 부모는 자신들이 보유한 물질적 재화와 문화자본을 이용해 자녀들의 우월적 신분을 재생산한다. 자녀가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고소득 직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아이의 일생을 처음부터 설계한다. 이 탓에 ‘대대로 엘리트’와 ‘우연한 엘리트’는 같은 대학을 나와도 들어가는 직장이 다르다.

리베라 교수에 따르면, 첫 직장은 경제적 계층화가 발생하는 최초의 순간이다. 또한 많은 경우, 이 일자리는 평생의 사회적 지위 및 경제적 성공에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국에서 입사와 함께 억대 연봉을 보장받는 최상급 일자리는 일류 투자은행, 경영 컨설팅 회사, 로펌 등 “돈의 흐름”이 집약되는 세 곳이다. 이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나중에 정부, 대기업, 비정부기구 등에서 고위직에 진출하는 데 특혜를 받는다. 그런데 이곳은 어떻게 인재를 채용할까?

우선은 ‘학벌’이다. 일류 기업 채용 기준은 일류 대학의 입학 사정 기준과 비슷하다. 정확히 말하면, 대학은 기업에 맞추어 “지적 능력이 탁월하면서 모든 면에서 균형 잡힌 사람”을 미리 선발해 둔다. 여기에서 ‘지적 능력’이 아니라 ‘균형 잡힌’이 핵심이다. 이 말은 사실 ‘취향’을 뜻한다. 일류기업과 일류대학은 특정 문화의 공동체인 것이다.

입사 시험에 제출하는 서류 전형은 작동하기 힘들다. 종이 한 장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다. 전공, 학점, 자격증 등 지적 능력도 살피지만, 기업이 더 중점적으로 들여다보는 게 있다. 이 사람과 함께 일하면 불편할까 하는 점이다. 막 졸업한 학생이 실제로 무얼 할 줄 알겠는가. 

일은 너무나 복잡한 기술이다. 같은 업무도 누구랑, 어디에서, 어떤 조건으로 일하느냐에 따라 처리 방식이 모두 다르다. 업무 능력은 함께 일하기 전엔 정확히 알 수 없다. 기본을 갖추었다면, 일을 잘 한다는 것은 능력보다 적응 문제에 가깝다. 

게다가 직장 생활은 종합적이다. 업무가 전부는 아니다. 직장인들은 배우자나 자녀 또는 친구보다 동료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른바 케미스트리가 맞지 않으면 불편하다. “출장에 동행하거나, 기상이변으로 공항에 갇히거나, 업무 후에 맥주 한잔하러 갈 때 편안하게 느낄 동료가 필요”하다. 고전 문학, 클래식 음악, 클럽 스포츠, 와인 등이 익숙한 사람, 즉 ‘적합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취향 자본은 어릴 때부터 훈련되지 않으면 보유하기 어렵다. ‘학벌 대학’ 입학 사정관이 주로 평가하는 것도 이 점이다.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빠’ 있는 소수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여기에 올라타지 못하고 미끄러질 뿐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에서 드러났듯 질 좋은 일자리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이 전면화되고 있다. 산업화 세대의 관심이 ‘생존’이라면, 민주화 세대의 관심은 ‘평등’이고, 요즈음 청년 세대의 관심은 ‘공정’이다. 보릿고개를 체험했던 노인 세대 담론은 근본적으로 ‘밥만 먹여 주면’ 정서를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여기에 ‘우리 손자소녀만 빼고 눈높이를 낮춰라’를 합치면, 평균치 인식에 이르는 것 같다. 노동자대투쟁을 경험했던 586세대 담론은 ‘열심히 일하면 모두 중산층’ 정서에서 머무는 중이다. 여기에 ‘우리 아들딸만 고임금 엘리트로’를 합치면, 역시 평균에 가까워진다. 

두 세대 모두 자기 세대의 경험에 고착된 인지 편향에 빠져 ‘일터 양극화’ ‘일터 균열’로 인해 고통당하는 청년 세대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소확행’이나마 누리고 살려면 눈높이를 낮추면 큰일 나고, 첫 직장 잘못 들어가면 젊어 고생이 평생 고생인 사회에서 노력은 무조건 배신당한다. 일부 지도자들이 보인 공적 담론과 사적 행위의 분열, 즉 양두구육의 도덕적 파탄은 이들의 언어에 담긴 진정성을 청년들이 더 이상 믿을 수 없도록 만든다.

청년들이 현재 외치는 공정은 절차의 정당성을 요구하는 논리적・이성적 담론이 아니라 질 좋은 일자리 고갈에 따른 ‘감정적 절규’에 가깝다. 이러한 호소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경쟁에 찌든 일부 청년들의 미숙하고 형편없는 논리에 혀를 쯧쯧 차거나 도덕적 비난을 퍼붓는 게 아니다. 진짜 문제는 공기업이나 대기업 같은 좋은 일자리가 드물다는 데 있고, 이들의 고임금, 고복지는 불행히도 갑을노동의 전 사회적 구조화를 통해서만 가능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국공 사태’의 진정한 해결책은 ‘일터 균열’의 기계적 봉합에 있지 않다. 사회 전체를 둘로 갈라놓은 ‘일터 양극화’의 현실에서 이 기계적 봉합은 상하 노동 시장의 더 극심한 양극화를 불러올 가망이 있다. 부분 개선이 전체 개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 고소득 엘리트 직장에 ‘아빠 찬스’를 쓰고 싶은 마음도 커질 것이고, 소수 엘리트 집단이 아예 ‘아빠 찬스’가 유리하게 작동하도록 채용 절차를 디자인하려는 유혹도 무진장해질 것이다. 따라서 ‘그들만의 채용 리그’가 우리 사회에 더 확고해지지 않도록 사회 전체의 일자리 구조를 손볼 때가 되었다. 필요한 것은 부분적 생색이 아니라 전면적 개혁이다. 이 일을 누가 할 것인가.  


로런 리베라,  『그들만의 채용 리그』, 이희령 옮김(지식의날개, 2020).로런 리베라, 『그들만의 채용 리그』, 이희령 옮김(지식의날개,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