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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김종철 선생을 추모하며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이십 년이나 삼십 년쯤 후에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생태 비평지 《녹색평론》 창간사의 첫머리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생태운동가이자 문명의 철학자 김종철 선생의 글이다. 《녹색평론》은 1991년 11월에 첫 선을 보였다. 올해가 선생이 말했던 30년 후다. 다들 이 세상을 과연 어떻게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나날의 삶을 축복으로 느끼는가, 하루치 저주를 오늘도 힘겹게 견디는 중인가.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다른 세상이 왔으면 하는가.

물질적으로 풍요한 세상에서 어른들은 볼이 부풀도록 먹고 배를 두드리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하루하루 앞날이 불안한 세상을 사는 중이다. “당신들은 헛된 말로 저의 꿈을 빼앗았습니다.” 스웨덴의 청소년 생태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말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명확해졌듯이, 우리의 손이 아이들의 미래를 목 조르고 있다. 인간의 탐욕은 무한한데, 지구는 유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룩한 근대 문명의 힘은 지구의 회복 탄력성을 초과한 지 이미 오래다. 인간이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면서 탐욕을 부리자, 지구가 우리의 삶에 ‘위기의 형식’을 되먹이고 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경고한다. 현재 인류를 패닉에 몰아넣은 코로나 팬데믹은 닥쳐올 위기 중 규모가 작은 것에 불과하다. 이 사태는 희생을 치르겠지만 오래지 않아 극복될 것이다. 그러나 그다음에 또 다른 감염병이 있을 것이고, 이를 또다시 이겨내더라도 더 큰 위기가 찾아온다. ‘기후 위기’다. 불행히도, 이 위기는 일단 발현된 후에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 파멸뿐이다.

김종철 선생이 마지막으로 남긴 『근대 문명에서 생태 문명으로』(녹색평론사)에 따르면, 석유에 의존하는 근대 문명의 생활 양식은 그 자체가 우리 행성을 파괴하는 것이요, 지구 생명체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다. 살려고 한껏 벌린 우리의 입이 우리 자신의 꼬리를 덥석덥석 먹어 치우는 기막힌 상황이다. 개발을 뜻하는 영단어 exploitation은 동시에 착취를 의미하기도 한다. 착취는 어떤 것이 본래 가진 역량보다 더 많은 것을 임의로 꺼내 쓰는 일이다. 지금 인간이 지구에 저지르고 있는 짓이다. 착취의 반복은 지구의 잠재력을 고갈시키고, 결국 생명의 완전한 소진을 가져온다. 이것이 근대 문명의 특징이다. 지구의 개발이 곧 지구의 착취로 이어지는 것, 오늘날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모든 문제는 이로부터 생겨났다.

선생은 “현세대 인류에게 가장 긴급한 것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물질적 대사가 원활하게 이뤄지는 ‘순환적’ 삶의 패턴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이들은 이러한 삶이 실제로 가능한가를 되묻는 사람들이다. 희망은 답이 있어서 가슴에 품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숙고하려고 일으키는 것이다. 선생은 ‘생태 문명’이라는 생각의 디딤판을 세상에 남겼다. 이것을 밟고 얼마나 멀리까지 뛸지는 전적으로 우리들의 몫이다.


김종철의 『근대 문명에서 생태 문명으로』(녹색평론사, 2019)김종철, 『근대 문명에서 생태 문명으로』(녹색평론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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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칼럼입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종철 선생님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