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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아동 학대에 대한 뒤늦은 기록을 읽다

류이근 외, 『아동 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시대의창, 2016).임인택, 하어영, 임지선, 류이근, 최현준, 『아동 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시대의창, 2016).


지난 주말, 류이근 등이 쓴 『아동 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시대의창, 2016)을 꺼내 다시 읽었다. 올해 서울도서관에서 같이 읽고 토론하기 좋은 책으로 선정한 책이기도 하다. 비통하고 참담하고 쓰라리고 미안한 글이다. ‘뒤늦은’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엔 학대당했던 아이들의 생생한 실상이 담겨 있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고, 욕설과 협박에 시달리고, 추위와 더위에 고스란히 방임되고, 피부와 내장이 닿을 정도로 굶주리다 아이들은 죽는다. 책에 따르면, 2008~2014년까지 어른의 학대에 목숨 잃은 아이들은 모두 263명이다. 한두 주에 한 번꼴로, 매년 평균 37명이 극한의 고통 속에서 생명의 숨결을 놓는다. 64.7%는 신체 학대, 31.4%는 방임이다.

일이 이미 벌어졌다는 점에서 ‘뒤늦은’이라는 자책의 제목은 무척 윤리적이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이 감금되고 얻어맞고 상처 입고 죽어 가는 사회를 방치한 일에 대한 자기 처벌이자 자기 책임의 선언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불쌍하게도, 이 책은 ‘선구적’이고 ‘예언적’이기도 하다.

책이 나온 2016년 이후에도 아동 학대 사례는 꾸준히 증가했다. 작년 발표된 ‘전국 아동 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 학대 건수는 2014년 1만 27건에서 2017년 2만 2367건으로 세 해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살해된 아이들 숫자도 2016년 36명, 2017년 38명이었다. 책에서 집계하듯, ‘일가족 동반 자살’ 형태의 아동 살인 등을 포함하면 숫자가 크게 늘어날 게 틀림없다. 달라진 게 별로 없는 셈이다.

최근엔 40대 어머니가 아홉 살 아이를 여행용 가방에 가둬 살해했다. 7시간 동안 갇혀 있던 아이는 좁은 공간에서 의식을 잃고 죽어 갔다. 이 어머니 앞에 ‘의붓’이라고 표기하는 것은 사건의 진실을 왜곡한다. 

혈연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원인에 가깝다. 아동 학대의 83.8%는 가정 내에서 일어난다. 살해된 아이의 가해자는 친모가 36.4%, 친부가 29.9%, 친부 또는 친부가 공범인 경우가 8.4%다. 나머지는 이웃이나 교육기관 관계자다. ‘의붓 학대 서사’는 빈도 낮은 허구에 불과하다.

책을 읽고 나면, 아동 학대의 진짜 원인이 ‘가부장제 혈연주의’임을 알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는 독립 인격이 아니라 부모의 소유로 흔히 간주된다. 이 때문에 ‘아이 버릇’을 고친다는 미명 아래 벌어지는 가혹한 체벌이 있더라도 이웃이나 학교가 간여하기 어렵다. ‘내 아이 내 맘대로’라는 외마디 악다구니에 물러서곤 한다. 일이 벌어진 후에도 친척들은 집안 망신이라고 쉬쉬하기 일쑤다. 불행히도, 이것이 아동 학대를 지속시키고 강화한다. 

또한 아동 학대 문제는 심리가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문제이기도 하다. 학대 가정의 40.9%는 불화에 시달린다. 원인은 실직, 궁핍, 질병 등이 대부분이다. 아이를 희생자로 만든 폭력 성향은 그 결과일 뿐이다.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 위에서 ‘온 가족 동반 자살’이 나타난다.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탓에 ‘부모 없이 혼자 사는 것보다 함께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일은 아이를 살해한 부모가 극단적 선택으로 죄를 갚는 무책임한 행위일 뿐이다.

그리고 범죄가 일어난 후에는 늘 생존자 문제가 뒤따른다. 아동 학대 생존자들은 자립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특히 문제가 심각하다. 학대를 겪다 구출된 아이들, 학대 탓에 죽은 아이의 형제자매들은 국가나 사회의 지속적・체계적 관리 없이 정상적 삶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시적 관심의 촛불이 꺼진 후,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책에는 학대 범죄가 일어난 지 일곱 해가 지났는데도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아이의 사례가 나온다. 

아이는 인권을 가진 독립적 존재이면서 절대적 약자다. 학대 범죄는 ‘부모 잘못 만나’의 혈연 문제가 아니다. 이는 주로 가정 내에서 은밀히 이루어지고, 발각돼도 ‘아는 사이에’ ‘이번 한 번만’ 하는 관대한 태도와 가벼운 처벌이 누적되면서 결국 아이를 잃을 때까지 치닫기 십상인 폭력 범죄다. ‘그나마 부모가’ 같은 혈연 서사는 아이를 폭력적 부모와 집 안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출구 없는 지옥에 가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에겐 아이의 안녕과 생명은 국가와 사회가 책임진다는 새로운 서사가 필요하다. 아동 학대 범죄를 강력히 처벌하는 ‘트렁크법’을 만들고, 관련 예산을 크게 늘리는 결단을 할 때다. 더 이상 우리한테 ‘뒤늦은 기록’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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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에 실은 글입니다. 

약간 덧붙여서 여기에 옮겨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