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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이 청년을 보라 - 김동식 소설집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를 읽다


김동식 소설집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를 드디어 읽고, 작은 글을 하나 썼습니다. 《매일경제》에 실었던 칼럼은 조금 손보아 여기에 올려 둡니다. 




이 청년을 보라 


청년은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검정고시로 간신히 고등학교를 다녔을 뿐이다. 세상에 나와 주물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뜨거운 아연을 바라보면서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했다. 온도를 높이면 어느새 단단한 쇠가 물렁대듯, 상상의 풀무를 밟아 답답하고 억울하고 암담한 현실을 녹이고, 간절한 바람을 덧붙여 가면서 환상적 현실을 빚어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난 것은 우발적이었다. 아무도 글쓰기를 가르치지 않았기에, ‘글 쓰는 법’을 검색해 스스로 배운 후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소설로 옮겼다. 그러고는 평소에 즐겨 가던 ‘오늘의 유머’ 공포게시판에 매일 한 편씩 올렸다. 의외로 호응이 아주 좋았다. 사람들이 달아준 댓글을 보면서 오자를 바로잡고 문장을 배웠다. 집단지성이 그를 소설가로 이끌어간 스승이었다.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로 올해 초 출판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작가 김동식의 이야기다. 두 주일 만에 1만 질을 찍었다니, 무명작가로서는 놀라운 일이다.

작품은 작가가 겪어온 이 땅의 현실을 강렬히 환기시켜 슬프다. 인간을 분할하는 선들이 특히 선명하다. 지저인간과 지상인간, 낮인간과 밤인간, 인간과 인조인간, 신인류와 구인류 등 세상 사는 이들은 작품마다 두 종류 인간으로 나뉜다. ‘어디까지가 인간인가’가 끝없이 심문되고, 한 부류 인간들은 ‘인간 이하’라는 표지를 받고 가혹한 차별을 당한다. 주물노동자로 삶을 겪는 작가의 몸이 떠올라 참담하고 끔찍하다.

하지만 작가의 상상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현실을 끝없이 뒤집어 야유한다. ‘어디까지가 인간인가를 묻는 세상…… 정말 이렇게 살아도 괜찮나요?’ 한줌의 세련됨을 건질 수 없는 투박한 문장의 그 맛이 우화적 반전과 도약을 오히려 자연스럽게 만든다. 공포란 무엇인가. 이야기 속 인물이 겪는 끔찍한 사건이 실제로 나의 삶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깨달을 때 떠오르는 감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소설들은 공포게시판에 어울린다. “우리가 늘 겪는 거짓말 같은 일상의 이야기들”이라고 평한 김봉석의 말이 옳다. 그래서 무섭다. 이야기는 어이없고 웃긴데 어느새 가슴 한구석이 저릿하면서 자주 아프다.

모리스 블랑쇼는 글을 쓴다는 것은 “하늘처럼, 말없이 있는 것, ‘벙어리만을 위한 메아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등단의 진입장벽에 갇힌 낡은 문학이 ‘벙어리만을 위한 메아리’가 되는 의무를 방기하자, 청년이 일터에서 스스로 일어서 문학의 주체가 되었다. 한 세대 전에 박노해와 백무산 등이 출현했듯이.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위한, 세계를 위한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다. 김동식은 글쓰기를 통해 차별적 세상을 뒤집어 보고자 했다. 오늘날, 이 땅의 노동청년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고 무엇을 꿈꾸는지 궁금하다면 권하고 싶다.

“이 청년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