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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사도 바울은 천막 노동자, 평등한 공동체를 꿈꾸었다



카렌 암스트롱, 『카렌 암스트롱의 바울 다시 읽기』, 정호영 옮김(훗, 2017)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방식을 버리고 평범한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살아감으로써, 바울은 예수가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졌던 것과 비슷하게 “자기 비움”, 즉 매일의 케노시스(kenosis)[각주:1]를 실천했던 것이다.(77쪽)


전독(全讀)하는 저자 중 한 사람이 카렌 암스트롱. 새벽에 읽어나 미루어 두었던 『카렌 암스트롱의 바울 다시 읽기』(정호영 옮김, 훗, 2017)를 완독했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은 지 서른 해 가까이 되었는데도, 훈련된 나의 기독교적 영성은 별로 사라지지 않은 듯 보인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더 강해지는 듯하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성경 구절들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가슴이 뛰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신약성서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방식으로, 바울의 일생을 역사적으로 섬세히 복원한다. 다메섹에서 예수를 체험한 후, 바울은 예수 운동의 핵심 정신을 이어받아 이방에서 선교 활동에 나선다. 바울은 십자가 사건이 “유대 율법”에 대한 전면적 폐기이고, “새로운 약속”의 선포라고 주장했다. 이로부터 바울은 “현재의 사악한 시대를 특징짓는 기존의 인종적, 사회적, 문화적 분류들이 십자가와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상기시켰다.” 사람들은 “평등함을 특징으로 하는 대안 공동체를 만듦으로써 노예근성과 인종적 편견에서 해방되어야 했다. 이 공동체가 바로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었다.”(120쪽)

바울은 평등하고 해방되고 차별 없는 공동체를 꿈꾸었다. 바울이 말하는 에클레시아(민회)는 “사회적 불평등이 아닌 연대와 상호 지원”에 기초해야 했다. 천막 노동자로서 바울은 “스스로 자신의 작업장에서 다른 장인들과 함께 일했으며,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134쪽)다. 바울은 노동과 설교를 함께 수행했던 삶을 자부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을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동안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노동을 했습니다.”(「데살로니가 전서」 2장 9절, 공동번역 개정판)[각주:2] 


저자에 따르면, 바울은 예수를 “자발적으로 로마법이 내린 판결을 받아들이고 인류의 가장 비참한 구성원들과 연대함을 보여준 인물로 제시했다.” 세상의 법이 주장하는 “사회통합, 민주주의, 평등주의, 그리고 자유”는 실제로 달성될 수 없었다. 세상의 법은 “항상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고 경시하고 파괴”했으며, “남성을 여성들 위에 두었고, 노예들 위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귀족들을 만들어 냈다.”(162쪽) 하지만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말한다.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3장 28절) 


이것이 바울 신학의 핵심이다. 바울에 따르면, “십자가는 모든 형태의 권력, 지배, 권위를 뒤집었으며, 신성은 강함이 아닌 약함을 통해 드러난다.” 예수가 기꺼이 감당했던 십자가의 뜻을 좇는 에클레시아, 즉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필요를 자신의 필요보다 먼저 생각하고 사랑 안에서 함께 살아갈 때 이루어지는 것”(169쪽)이었다. 여기에는 사랑이 있을 뿐 차별이 있을 수 없었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서 바울은 모든 행위의 중심에 사랑을 놓는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때의 사랑은 추상적인 말이나 가슴속의 감정만은 아니다. 바울은 이를 분명하게 실천적인 것으로 선포한다. “억압적인 제국의 질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 “상호간에 지원이 이루어지는 공동체”(183쪽)를 이룩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백성은 모든 것들을 함께 가지면서 동등한 사람들의 공동체 안에서 나눔과 호혜주의를 기반으로 한 대안 경제를 보여주었다.”(209쪽)

따라서 바울은 예수운동에 귀족적 리더십을 도입하려는 시도에 단호히 반대했다. 그는 “평등주의 이상”을 품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특출 난 사도들”이 “뛰어난 업적을 거론하면서 스스로를 내세우는 것”(196쪽)을 비판했다. 예수의 진리를 나누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사제나 목사와 같은 어떤 뛰어난 사람의 인도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고린도후서」 4장 10절)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람들 모두가 동등했다. “하느님은 차별을 두지 않았다.” 바울은 “누구라도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구상을 놓치고 있다고 주장”(216쪽)했다.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다만 공평하게 하려는 것뿐”(8장 13절)이라고 이야기한다. 개역개정 성서에는 ‘균등함’으로 되어 있다. 희랍어로는 이소테스(isotes)다. ‘동등성’이라고 옮길 수도 있다. 유재원의 『데모크라티아』(한겨레출판, 2017)에 따르면, 이는 아테나이 민주정의 근본 원리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지위로 말하는 권리를 갖는 일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체에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자랑”해서는 안 된다. “‘자랑’의 기질은 ‘율법이 하는 일’, 즉 사회적 차별, 공격적인 경쟁, 탐욕, 분쟁 불화를 낳”(220쪽)기 때문이다. 예수 공동체를 이룩하는 일은 “모두가 동등한 상호 지원적인 공동체에서 수많은 실질적인 방식으로 요구되는 일상의 케노시스”(219쪽)에 달려 있다.

이러한 바울의 예수 운동은 결국 어떻게 되었던가. 이방에서 사역에 힘쓰던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지원할 헌금을 모아서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이 헌금은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나누어 주는 시혜의 성격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일하겠다는 헌신의 표현”(230쪽)이었다. 동시에 이는 예수 운동 내부에서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가르는 장벽의 철폐를 선언하고 승인받는 일이기도 했다. “예루살렘은 더 이상 예수운동의 중심이 아니었다.” 바울은 예루살렘 입성을 통해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잘못을 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232쪽) 하지만 바울의 뜻대로 되지는 못했다. 당시에 예루살렘 교회를 장악하고 있던 야고보는 마지못해 “부끄러움과 핑계거리를 가지고서 비공식적으로 헌금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236쪽) 그나마 바울이 성전에 들어갔을 때 폭동이 일어났다.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때 바울은 거의 맞아죽을 뻔했으며, 로마 병사들한테 체포되는 바람에 간신히 살아나서 로마로 압송되어 제국의 법정에 섰다. 이것이 바울의 마지막이다. 이후, 바울이 어떻게 죽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카렌 암스트롱은 말한다. 


“바울의 죽음에 그렇게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가 로마 감옥으로 보내진 후 그저 사라졌음을, 예수처럼 ‘우발적인 잔학 행위’로 살해되었음을 나타낸다. (중략)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마지막에 그가 결국 절망에 굴복했는지 하는 것뿐이다.”(240쪽)


이렇게 바울은 우발적 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바울 사후, 기독교는 세계 종교가 되었다. 하지만 바울의 이름을 빌려서 쓴 서한들은, 바울 신학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길을 담고 있다. 「골로새서」와 「예베소서」의 저자들은 “바울의 평등주의와 제국의 압제에 대항하는 그의 정치적 입장”을 부담을 느끼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신도들은 지체가 되는 신학으로 전향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바울의 원칙을 파괴하고, 공동체 내부에 위계를 도입했다. 이는 예수의 재림을 귀환하는 황제처럼 묘사했던 바울이 어느 정도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가 312년 최초의 기독교인 로마 황제”에 올랐을 때, 이 신학은 황제의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는 식을 사용되었다.”(251쪽) 일종의 아이러니라고 할 만하다. 

한편, 「디모데 전서」, 「디모데 후서」, 「디도서」 등 사목서간의 저자들은 “바울의 것으로 부당하게 알려진 여성 혐오를 기독교에 도입했다.”(258쪽) 아우구스투스의 원죄론이나 루터의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는 사상 역시 바울에게는 상당히 낯선 이야기였다. “헌금과 헌신에 비례해서 영적, 물질적 축복을 받는다는” “번영 복음”은 “열정적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았던”(258쪽) 바울의 일생을 생각하면 정말로 어이없는 일이다.

카렌 암스트롱은 바울 신학의 가장 혁명적인 부분을 거세한 이러한 귀결을 역설적으로 비판한다. “우리는 아직도 항상 불평등하며 엄격한 법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문명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듯하다.” 하지만 아마도 인류는 “사람들은 서로 동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아마도 작고 평등한 공동체들 안에서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수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의 완고한 신념”(250쪽)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은 동등한 공동체의 실현을 끝없이 방해한다. “우리가 파충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이 ‘나 먼저’라는 동력은 자동적이고 즉각적이고 강력하다. 그것은 종교를 포함한 우리의 모든 행동을 특징지으며 그에 대해 저항하기란 극히 어렵다.” 이기적 유전자가 우리의 생물학적 본능이다. 이 유전자 때문에 우리는 온갖 위험들을 극복하고 지구상에서 생명을 이어왔다. 이 본능을 넘어서는 힘이 없다면, 어떠한 평등 공동체도 불가능하다. 예수는 케노시스를 통해 우리한테 이 힘을 나누어 주었다. 타자를 위해서 자신의 가장 귀한 것(목숨)까지 내놓는 이 실천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역사적 한계에 갇혀 있지만 바울을 읽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안에 사랑하는 힘이 있음을 확인하는 것과 같다.


“어떤 미덕도 그 안에 사랑이 스며 있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바울은 말했다. 그 사랑은 마음속에 있는 사치스러운 감정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비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 속에서 일상적이고 실질적으로 표현되어야만 하는 사랑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러한 바울의 통찰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259쪽)



  1. “「빌립보서」 2장 7절의 헤아우돈 에케노센(heaudon ekenosen)이라는 표현에서 유래한 말. 헤아우톤은 신성, 그리스도의 영광, 에케노센은 ‘비우다’의 의미인데, 이 에케노센의 원형인 케노오(kenoo)에서 비롯됐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를 낮추심을 의미한다.”(옮긴이) 「빌립보서」 2장 7절은 다음과 같다.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공동번역 개정판)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개역개정 4판)이다. 위키디피아에는 “‘self-emptying’ of Jesus’ own will”, 즉 “예수 자신의 의지로 행한 ‘자기 비움’으로 풀이한다. 케노시스는 ‘자기 낮춤’의 의미보다 ‘자기를 완전히 비움’(empty out)으로 이해해야 한다. [본문으로]
  2. 번역자는 개역개정을 신약성서 번역의 저본으로 택했지만, 필자 임의로 공동번역 개정판으로 바꾸었다.모두가 평등한 교회를 꿈꾸었던 바울의 어조에 이쪽이 더 부합한다고 생각해서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