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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회사보다 소중한 나를 지켜라 - 도교대 교수 강상중이 말하는 불확실성 시대의 일과 행복


회사보다 소중한 나를 지켜라

도교대 교수 강상중이 말하는 불확실성 시대의 일과 행복 


진주박물관에 고전 강의를 하러 기차로 오르내리면서 강상중의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노수경 옮김, 사계절, 2017)을 완독했다. 본문에 나오는 분류에 따르면, 이 책은 “전철의 이동시간 등을 이용하여 목차, 표제어, 키워드를 체크하는 정도로 건너뛰며” “세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국내에 번역된 저자의 모든 책을 읽은 한 사람의 팬으로서, 이 책은 적어도 나한테는 “고전처럼 시간을 들여서 읽지는 않지만 의견이나 감상을 써야 하므로 일정 정도의 집중력으로 끝까지 다 읽는” “일과 관련이 있거나 혹은 그 주변 영역에 관한” 책에도 속한다.

번역자의 설명에 따르면, 제목에 적혀 있는 ‘일’은 인간이 행하는 모든 일이 아니라, 주로 가정 바깥에서 사회와 연관을 맺으면서 하는 일을 말한다. 직업보다는 폭넓은 의미다. 저자에 따르면, 일은 단지 “생계를 꾸리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개인의 인격 형성이나 정신 활동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매우 섬세한 것”으로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거멀못으로,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고, “사회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증명서”다. 

따라서 일이 없다는 것은 곧바로 인간을 정체성 위기에 빠뜨린다. 일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흔히 ‘무기력증’에 빠지기 쉽고,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곤 한다. 게다가 인간은 일을 통해서 ‘나다움’을 실현한다. 크든 작든 간에 사람은 일을 통해서 타자와 연결되고, ‘타자의 주목’을 얻을 수 있다. 일을 하지 않는다면, “타자에게 무시당하거나 인정받지 못”하고, 스스로의 “존엄에 상처를 입고 무기력해”진다. 

그런데 현대사회에 들어 일을 둘러싼 사회적 규칙에 근본적 변화가 생겼다. 학력 모델의 붕괴와 개인 경력 모델의 등장이 그 변화를 압축한다. 

“지난 25년 동안 나타난 변화 중 하나로 ‘학력 사회 모델’의 종언을 들 수 있습니다. 학력이란, (중략) 누구든 노력하면 유명 대학의 간판을 딸 수 있다는 일종의 평등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가문이나 혈통과 같은 배경과는 상관없이 학력이라는 필터만 통과하면 누구나 사회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일종의 신화가 예전에는 살아 있었던 거지요.” 

요컨대, 학력만 갖추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세상이었던 셈이다. 명문대를 나오면 저절로 좋은 직업이 이어지고, 그로부터 큰 변동이 없는 한 평생의 삶이 보장되는 시스템이 과거의 일자리 규칙을 지배했다. 하지만 근대가 심화되고, 버블이 붕괴하면서 학력이라는 기초 단위가 예전처럼 작동하지 않는 사회가 출현한다.

“입사한 회사가 어느 날 갑자기 합병되거나 흡수되어도 결코 이상할 것이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중략) 이제는 학력을 쌓아 취업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또한 ‘개인 경력 모델’이 주류가 되었습니다. 이제 기업은 학력이 높은 사람보다도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어떤 상황에든 유연하게 대처하며 스스로 자기 활동을 적절히 운영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꾸준히 밀려든 신자유주의 개혁은 학력과 취업이 하나로 묶여 있던 평등주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파괴한다. 저자가 말하는 ‘개인 경력 모델’은 사실 ‘개인’이라는 이름으로 작동하는 일종의 금권제(부모능력주의, 봉건제)에 가깝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차원에서 좀 더 깊은 숙고를 필요로 하지만, 이 짤막한 글에서 다룰 것은 아니지 싶다. 

그렇다면 기존 일자리 규칙(학력)이 무너진 사회를 개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강상중은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 “이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읽고 마주하면 좋을까요? (중략) ‘일의 의미를 생각해 볼 것’ ‘다양한 시점을 가져볼 것’ ‘인문학을 배울 것’. 세 가지입니다.” 

기존 사회에서 일이란 주로 회사와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삶은 허용되지 않는다. 회사만 아는 인간, 즉 사축(社畜, 회사 동물)이 되어 열심히 일해 봐야 그 회사가 어느 날 갑자기 통째로 사라지거나, 다른 회사랑 합병되거나, 상황이 어렵다고 정리해고를 통보한다. 따라서 지금은 일의 의미를 바깥에서 찾지 않고 ‘나다운 삶을 만들어 가는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단지 회사일을 잘하는 것보다 일을 통해 나다움을 실현하고 회사가 설사 사라지거나 배신하더라도 나다움을 잃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더욱더 소중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의할 것이 있다. 거의 여우처럼 영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아실현’이라는 과도한 압박에 빠져 ‘나다움’을 찾으려고 고민만 계속하기보다 일단 주어진 하나의 일을 해서, 그로부터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고 거기에서 하나씩 나를 만들어가는 쪽이 낫다. 하지만 이렇게 변동이 극심한 사회에서는 하나의 일에 몰빵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 채로, 아니다 싶으면 재빠르게 미리 굴을 파둔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일하는 시간에 나다움을 실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대비하면서 “일 이외의 시간에 얼마나 다른 가치를 발견해 낼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런 인재일까. 저자는 한 문단으로 요약한다.

“내가 모든 일을 스스로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책임지며, 나의 활동을 조정하고 배치할 수 있으며, 모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또 변화된 환경에 맞춰 즉각적으로 내 안의 프로그래밍을 바꿔 행동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인재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프로그래밍을 바꾸다’라는 표현일 것이다. 일 자체에 매몰되기보다는 스스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면의 가치’를 발굴하는 것, 이 가치를 실현해 가는 다양한 경로를 이룩해 가면서 만족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면의 가치를 발굴할 수 있을까. 저자의 해결책은 독서다. 독서를 통해 동서고금의 역사와 인간의 이야기를 들여다봄으로써, 하나의 사건을 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만들고, 또한 살아감의 의미를 물어보는 인문지식을 통해서 생각의 심층을 열 수 있을 때, 우리는 극심한 변화 속에서도 “내개 맞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에 따라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삶”을 이룩할 수 있다. 

무엇보다 타자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자신의 복수성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의 삶이란 하나만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사실, 역사와 문학 속의 수많은 인물들이 이를 웅변하지 않는가. “‘나’라는 인격은 하나이고 사고방식도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의 다른 면모를 깨닫고 또 다른 사고방식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야말로, 역경이 계속되는 변화의 시대에 우리가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다.

이 책은 ‘일의 인문학’이라고 할 수도 있고, ‘일의 사회학’이라고 할 수도 있다. 변화의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인문적 지혜의 힘’을 아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인생수업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한테 먼저 읽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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