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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문화일보 서평] 동아시아 천년의 베스트셀러 『삼국지』을 좇아서 _이은봉의 『중국이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천년의상상, 2016)




동아시아 천년의 베스트셀러 『삼국지』을 좇아서

이은봉, 『중국이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천년의상상, 2016)


‘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이하 『책 이야기』)라는 제목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정곡에 정곡을 더한 ‘퍼펙트 골드’라고 할 만하다. 실제로 제목에 적힌 이 어마어마한 ‘책’은 동아시아 삼국의 역사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다소 거칠게 말하는 게 허용된다면, 적어도 15세기 이후의 동아시아 역사는 얼마만큼은 이 책과 함께 부침을 같이했다고 할 수도 있다. 『책 이야기』에서 다루는 대상은 이른바 『삼국지』다. ‘이른바’라는 표현을 굳이 쓴 것은 『책 이야기』에 나오는 『삼국지』가, 우리가 흔히 『삼국지』라는 말과 함께 머릿속에 떠올리는 『삼국지』만은 아닌 까닭이다.



 『삼국지』는 집단적 저작으로 수많은  『삼국지』가 존재한다

『삼국지』는 무척이나 신비한 책이다. 이십오사(二十五史) 중 하나로 진수가 쓰고 배송지가 주해를 단 『삼국지(三國志)』가 있고, 사대기서(四大奇書) 중 하나로 나관중이 쓰고 모종강이 평설을 붙여 완성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가 있다. 여기까지는 호사가들 사이에 잘 알려진 일이지만, 『책 이야기』에 나오는 『삼국지』는 두 책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삼국지』는 어느 한 개인의 창작이 아니라 역사서와 수많은 서적들 그리고 예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 대본 및 거리의 이야기 등이 모여 만들어진 집단적 저작”이다. 그리고 이토록 많은 『삼국지』가 동아시아 삼국에 존재한다는 것은 동아시아 사람들 사이에서 『삼국지』가 그만큼 사랑받았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창작자가 되었든 수용자가 되었든 간에 『삼국지』를 통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삼국지 박사’ 이은봉은 우리가 아는 두 책의 『삼국지』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삼국에 수많은 『삼국지』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는 시대와 장소에 맞추어 각자 다르게 이룩된 『삼국지』들을 하나하나 좇다 보면, 그 변용의 계보에 따라 이 작품들을 창작하고 수용했던 이들의 집단적 욕망을 살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책 이야기』는 최초의 『삼국지』라고 할 수 있는 진수의 『삼국지』로부터 시작해서 이문열과 황석영의 『삼국지』에 이르는 1800년의 기나긴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삼국지』라는 작품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일화들을 살피는 일을 훌쩍 뛰어넘어서 욕망의 계보로 이루어진 동아시아 문명의 한 줄기를 선명하게 부조하고 있다. 




 『삼국지』들을 통해서 본 동아시아 삼국의 욕망

『책 이야기』는 동아시아 사람들이 『삼국지』라는 작품을 통해서 함께 이룩해 온 역사의 장대한 서사시를 재현한다. 『삼국지』가 처음 등장한 때로부터, “열에 일곱은 사실이고 셋은 허구”라는 이 책의 역사적 실체성은 이야기에 담긴 힘 있는 교훈을 후세로 하여금 사실로써 되새겨 전하도록 만들었고,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영웅들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그려진 점”(38쪽)은 잘 짜인 서사를 통해 자기 처지를 위로받고 울분을 토로하며 시대를 성찰하고 처세의 교훈을 얻고자 하는 독자들을 압도적으로 사로잡았다. 시대가 요동칠 때마다 지배자들은 『삼국지』를 통해서 ‘충성과 의리’ 같은 가치를 퍼뜨리고자 했으며, 민중들은 영웅들이 써 내려가는 통쾌하면서도 비장한 이야기에 열광하면서도, 이야기를 변주하고 창작하여 새롭게 편집함으로써 자기의 욕망을 기입해 넣었다. 

중국에서만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그러므로 『삼국지』는 중국의 책만은 아니다. 그것은 일본의 책이기도 하고, 한국의 책이기도 하다. 『삼국지』를 번역해 수용하면서 한국과 일본은 단지 축자한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기호에 맞추어 본래 줄거리에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이고 끼워 넣어 완전히 새로운 소설을 수없이 창조했다. 일본에서는 자국의 무사(사무라이) 전통에 맞추어 충의를 세게 강조하는 쪽으로 『삼국지』를 여러 편 다시 썼다. 조선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선 후기에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내용의 『삼국지』 수십여 편이 존재했다. 이 이야기들은 본래 소설의 줄거리와는 거의 상관없었다. 소설 텍스트에 저자/편집자가 애써 개입하면서 인물과 모티브를 제멋대로 가져다 사용해 만들어진 수많은 곁다리 이야기로 이루어졌다. 그중 특별히 사랑받았던 몇 작품은 개화기 이후 나중에 『조자룡전』이나 『황부인전』과 같이 구활자본으로 출간해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제갈량과 황씨 부인의 결혼에 얽힌 일화를 새롭게 써 넣고, 황씨 부인이 펼치는 기기묘묘한 도술 이야기를 『박씨 부인전』에서 슬쩍 가져와 엮은 듯한 『황부인전』은 모종강의 평설에서 작은 모티브만 따왔을 뿐 중국 쪽이나 일본 쪽에는 전혀 없는 이야기다. 이와 같이 중국과 일본과 한국을 넘나들면서, 『삼국지』의 여러 변형들을 꼼꼼히 비교해 추적하고 그 의미를 세세히 살핀 저자의 노고는 『책 이야기』의 백미에 해당한다.

따라서 『책 이야기』는 『삼국지』라는 책으로 본 동아시아 소설의 역사이기도 하고, 출판과 서책의 문화사이기도 하며, 저자와 독자로 이루어진 집단적 욕망의 서사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한중일 삼국의 축약된 역사 자체이기도 하다. 저자가 『삼국지』를 놓고 이처럼 풍요롭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삼국지』라는 작품의 고유한 힘 덕분일 것이다. 유비와 조조라는 상반된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이 있어 유가적 덕망과 법가적 실리가 현실에서 날카롭게 대립하고, 관우 같은 의인이 있어 모략과 음모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의리를 지키려고 초개같이 영예를 버리고, 조자룡 같은 영웅이 있어 창칼의 서슬에도 아랑곳없이 몇 번이고 전장에 뛰어들어 용맹을 다하고, 제갈량 같은 재사가 있어 적벽에서 백만 대군을 불태울 수 있었던 천하제일의 지혜로써 위나라를 정벌하려 했으나 끝내 실패하여 비장히 최후를 마치는 것 등은 한없는 감격을 주어 몇 번이고 다시 읽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엮어서 역사적 진실을 통찰하려 했던 『삼국지』가 아니었다면, 과연 그 어떤 책이 저자로 하여금 이처럼 거대하면서도 섬세하게 짜인 역사의 비단을 펼칠 수 있도록 했겠는가. 



이야기가 역사를 압도하다

『책 이야기』에도 다루어지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삼국지』의 계보학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검증된 사실을 다룬 진수의 『삼국지』보다 상상적 허구를 다룬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사람들 사이에서 더 많이 읽히고 있으며, 『삼국지연의』에 삽입된 갖가지 허구적 일화들이 기이한 감격과 교훈을 주면서 정사를 젖히고 역사적 진실로 추앙받는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역대 한족 정권은 북방민족의 침입에 위협받거나 억눌린 현실을 극복하고자 국가 차원에서 유비의 덕망을 중심에 놓고, 제갈량의 지략을 우상화하고, 관우의 충의를 신격화하는 데 앞장섰다. 삼국시대의 현실적 승자인 위나라 조조를 간웅으로 몰고 한 황실의 후손인 촉나라 유비를 정신적 승자로 부양함으로써 이른바 ‘촉한정통론’에 입각해 역사를 바로 세워 백성들 사이에 진충보국(盡忠報國)의 기풍을 불어넣으려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실에 부합할 수 없거나 서로 모순되는 수많은 일화들이 『삼국지』에 삽입되었고, 『삼국지』가 흔히 이야기를 통해 민중들을 교화하려 했던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쓰이면서 이러한 허구의 일화들이 대중들 사이에 널리 확산되었다. 이는 고난의 현실을 이야기를 통해 극복하려 했던 일종의 ‘정신 승리법’이면서, 역사적 사실이란 결국 후대의 정치적 지형에 따라 다시 쓰인다는 냉정한 사실을 환기시킨다. 이 때문에 『삼국지』는 한낱 연의이면서 역사로까지 격상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삼국지』에 이토록 많은 이야기들이 임의로 삽입되어 풍요를 이룰 수 있었던 한 원인에는 진수의 『삼국지』 자체가 지닌 허술함 탓도 있다. 위나라를 계승하여 삼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관리였던 탓에 진수는 위나라의 역사만을 세세히 기록했을 뿐, 촉나라와 오나라의 역사를 지나치게 소략히 다루었기에, 그 틈새를 벌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끼워 넣을 여지가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후대에 이 책에 주해를 단 배송지 역시 엄밀한 비평을 시도하기보다, 주변의 여러 역사서나 민간에 전하던 기록들을 주해로 집적하는 데 신경 썼기에 오히려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이야기의 비옥한 토양을 제공해 버린 셈이 된 것도 이유가 있다고 본다. ‘연의’라는 말은 본래 역사나 전설에 근거를 두고 이를 보충하거나 부연하면서 쓰는 이야기를 뜻하는 만큼, 정사가 정밀하지 않고 허술하다 보니 민간에 떠돌던 이야기를 삽입하거나 창작해서 새로운 역사(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어떠한 거리낌도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로 만주침략을 정당화하다

『삼국지연의』를 허구적 소설로 인식하는 오늘날의 독자들과는 달리, 당시의 독자들은 역시 이 책에 실린 일화들을 단지 재미있고 교훈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정사의 부족한 기술을 보충하는 사실 기록으로 수용했다. 특히, 주희가 의리에 입각해서 촉나라를 한나라의 계승자로 받들면서부터는, 『삼국지연의』에 담긴 허구적 이야기들이 작품을 넘어서서 현실적으로도 중대한 의미를 띠게 되었다.

중국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조선에서도 그 영향은 심각했다. 연의에 나오는 이야기가 과거 시험에 시제로 걸리기도 하고, 임금과 신하 사이의 대화에 등장하기도 하는 등 ‘물의’를 일으키는 바람에 심심치 않게 유자(儒者)들의 탄핵 대상이 되었다. 폐해를 끼치는 바가 지극하니 차라리 책을 불태워 버려야 한다는 각박한 주장도 드물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곳곳에 관우의 사당인 관제묘가 세워져 국가적으로 추앙된 데다, 관우의 신상에 복을 가져오고 병을 물리치는 영험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여겨져 기복을 위한 민중 신앙의 한 축이 되면서 『삼국지연의』에 대한 긍정적 분위기가 태동한다. 또한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청나라를 패악한 위나라로 여기고 조선을 충의의 촉나라로 환치해, 충의를 잃지 않고 끝내 복수를 하려는 시대정신에 따라 『삼국지연의』는 마침내 천년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민중들의 한없는 사랑을 받았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삼국지』는 이데올로기 기구의 성격을 잃고 단순한 오락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엽인 중일전쟁 시기에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가 한일 양국의 신문에 연재되면서 나라에 대한 무사적 충의를 강조하는 동시에 위나라 조조에 대한 옹호의 분위기를 살짝 집어넣어서 만주 침략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인다. 그에 대항해 한용운의 『삼국지』가 모종강의 평설이 붙은 판본을 살려서 번역했음을 내세우면서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일에 나서면서 대리전을 치른다. 지금도 『삼국지』는 소설로, 게임으로, 영화로, 만화 등으로 끝없이 변주된다. 그 변화의 악보에 따라 연주되었던 이야기들을 꼼꼼히 추적해서 성찰한 이 책을 발판 삼는다면, 역사적 사실에 기생해서 번식하는 욕망들의 현란한 움직임에 무작정 유혹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적벽가』, 민중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삼국지』

지배계층이 영웅들의 충의를 들어 전쟁을 고취하고, 국가의 명분을 세워 민중을 싸움터로 내몰 때, “판소리 광대들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이름 없는 군사들을 주인공 삼아 노래를 만들어 공연했다.” 판소리 『적벽가』는 적벽대전에 징병되었다 덧없이 죽어간 위나라 병사들의 입을 빌려서, 전쟁에 반대하고 수탈에 항의하는 첨예한 비판의식을 드러낸다. 


뜻밖에 이한 난리 “위국 땅 백성들아, 적벽으로 싸움 가자. 나오너라.” 웨는 소리 아니 올 수 없더구나. 사당 문 열어놓고 통곡재배 하직한 후 간간한 어린 자식, 유정한 가족 얼굴 안고 누워 등치며, 부디 이 자식을 잘 길러 나의 후사를 전해 주오. 생이별 하직하고 전장에를 나왔으나 언제 내가 다시 돌아가 그립던 자식을 품에 안고, 아가 응아 얼러 볼거나. 아이고, 내 일이야. (191쪽) 


영웅들에게 적벽은 지혜를 짜내고 용맹을 호령할 화려한 무대이지만, 억지로 끌려나온 병사들에게는 “닥쳐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설움을 토로하며 눈물짓는” 도살장이었다. “그 신세는 불쌍하고 가엽고 처량할 뿐”이니, 곧이어 불바다 속에서 죽음이 그들을 덮쳐올 살육의 지옥이 펼쳐진다. 


가련할 손 백만 대군은 날도 뛰도 오도 가도 오무락 꼼짝달싹도 못하고, 숨 막히고, 기막히어, 살도 맞고, 창에도 찔려, 앉아 죽고, 서서 죽고, 웃다 죽고, 울다 죽고, 밟혀 죽고, 맞아 죽고, 애타 죽고, 성내 죽고, 덜렁거리다 죽고, 복장 덜컥 살에 맞아 물에 풍 빠져 죽고, 바서져 죽고, 찢어져 죽고, 엎어져 죽고, 자빠져 죽고, 무서워 죽고, 눈 빠져 죽고, 등 터져 죽고…… (192쪽)


이것이 바로 민중들이 노래하려 했던 『삼국지』다. 영웅들의 『삼국지』에 겹쳐서 민중들의 『삼국지』를 함께 읽지 않는다면, 우리는 역사로부터 어떠한 교훈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남북 양쪽의 한 줌도 안 되는 지배자들이 핵무기니 싸드니 하면서 ‘전쟁 불사’를 외쳐 대는 이 시기에 『삼국지』에 다시 관심을 품고,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한다면,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또한 『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에서 우리가 가장 눈여겨 봐야 할 지점도 바로 이곳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