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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편집자를 위한 표절 판단법



신경숙의 표절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하지만 편집자로서 나는 표절의 윤리와 비윤리도 있지만, 표절 제기의 윤리와 비윤리도 있으며, 물론 표절 해명의 윤리와 비윤리도 있다고 생각한다. 표절이란 한 작가의 영혼을 예리한 칼로 긋는 행위이고, 단지 의혹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깊게 베이는 경우도 많으므로, 문제제기 자체에서 극도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이 표절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의 여부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고, 극히 까다로운 고민을 거쳐야 한다. 물론 문제된 사안이야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분명하다. 하지만 같이 논의되는 편혜영 등의 경우에는 언론에 문제로 제출된 작품만 보자면 솔직히 말해서 여론재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거칠게 말하자면,(이건 정말로 거칠게 말하는 것이다. 수많은 함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문제제기로 작가들이 상처받는 것은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말해 보는 것이다.) 문학작품에서 표절이란 작품의 아이디어나 발상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표현을 주로 다툰다. 가령, 세 형제가 각자 세 자매를 사랑해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했다는 내용을 가진 두 작품이 있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 표절이 되려면, ‘우여곡절’의 구체적 표현이 같아야 한다.(어디까지 구체적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걸 차라리 아주 좁게 생각하는 편이 좋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문장 레벨이다. 물론 때때로 인물들 간의 ‘독특한’ 관계도 표절 여부를 가리는 기준이 되지만, 실제로 표절로 인정받는 것은 극히 예외적이다.) 

표절과 관련한 문제는 이른바 문학 전문가들조차도 표절 문제에 관한 한 개념적 혼란에 빠져 있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 기사에서 문학평론가 한 사람이 “해당 대목의 문장들이 흡사한 정도를 볼 때 표절로 봐야 한”다면서도 “표절 의혹을 받는 부분이 소설 전체에서 얼마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문장이 작품의 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표절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문제의 문장이 작품의 구조에서 어떤 역할을 했느냐는 저작권 침해에 대한 판단 기준은 될지 몰라도 문학 작품에 대한 표절 판단의 기준은 될 수 없다. “해당 대목이 아니라 전체 소설을 읽어보면 전혀 다른 소설이기에 표절이 아니다”라는 출판사 관계자의 주장도 표절에 대한 비슷한 인식에서 나왔는데, 거꾸로 말한다면 옳을 수도 있다. “소설 전체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해당 대목을 보면 전혀 다른 소설이기에 표절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말이다.

다시 한 번 정말로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표절 여부의 판정에서는 작품 큰 줄기의 유사성은 따지지 않고, 표현의 유사성만을 따진다고 조금 보수적으로 보는 게 한 사람 한 사람이 보물일 수 있는 작가들의 영혼을 보호하는 데 안전하다. 괜한 의혹 제기로 상처만 덧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간곡히 말하건대 한껏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아니면 말고 식은 절대로 안 된다.

하지만 출판사 창비의 해명에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나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이라는 구글에서 검색조자 잘 되지 않는 낯선 한자말이 등장한 것은 이채롭다.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란 문장 표현이 같지는 않더라도 아이디어 등이 포괄적으로 유사하다는 뜻일 터인데, 이런 경우에는 대개 표절로 판정하는 경우가 드물다. 문제가 된 두 작품은 확실히 포괄적 비문헌적으로는 유사하지 않으므로 출판사의 해명이 옳다. 사실 이 경우는 유사하더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은 작품 속의 표현이 유사하다는 뜻일 것인데, 이런 경우에는 표절로 판정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흔하다. 그때 가장 큰 기준은 선행 작가의 문장 구절이 독창적이냐, 작품 전체에서 핵심적 문장이어서 실질적으로 이익을 침해받았느냐 등의 여부를 따진다.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거나 작가의 창의성이 들어가 있지 않은 문장의 경우에는 표절이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출판사의 해명대로, “성애에 눈뜨는 장면”은 “일상적인 소재”이며 확실히 표절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성애에 눈뜨는 장면 ‘묘사’는 일상적인 소재”라고 보기 어렵다. 묘사라고 할 만한 수준의 문장이라면 상식상 어떤 경우에도 일상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적이지는 않더라도 독창적이지 못할 수 있는데, 그 기준이 “작품 전체를 좌우할”이라는 수사학적인 제한이 될 수는 없다. “따스한 봄이 가고 더운 여름이 왔다.”처럼 단순한 사실을 기술한 문장 등만을 독창성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나중 작가가 앞선 작가의 문장보다 더 잘 썼다고 해서 표절이 아닌 경우도 당연히 없다. 일단 문장 차원으로 들어가면 더 잘 썼느냐와 같은 주관적 가치 진술은 표절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면 실질적으로 경제적 침해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으므로 법적 책임은 피할 여지가 생긴다. 하지만 문학 작품에서 표절은 법적 문제라기보다는 도덕의 문제, 즉 양심의 문제에 해당한다. 가령, 연암 박지원의 문장을 인용부호 없이 몇 줄 가져다 썼다면 법적으로 저작권 침해는 아니더라도(시효가 소멸했으므로) 도덕적으로는 여전히 문제되지 않겠는가.

해당 문장이 작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문제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아무도 작품 전체를 표절할 수 없다. 만약에 그러하다면 작품이 세상에 발표조차 될 수 있었겠는가. 문장의 현저한 유사성만으로도 많은 경우 표절은 성립한다. 물론 얼마만큼 유사해야 표절로 볼 만큼 현저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분명하지 않아 보인다.(예전에 미국에서는 여덟 단어 이상이 연속되었을 때라는 판례가 있었다고 들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꽤 그럴 듯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문학작품의 표절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대법원 판례가 나와 있다. 법리 자체를 다툴 것이 아니라면 누구나 이를 참고해서 “실질적인 유사성”을 따져서 신중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작가들이 상처입지 않도록, 또는 독자들이 오도되지 않도록 말이다.

“저작권의 보호대상은 학문과 예술에 관하여 사람의 정신적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사상 또는 감정을 말, 문자, 음, 색 등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외부에 표현한 창작적 표현형식이고, 표현되어 있는 내용, 즉 아이디어나 이론 등의 사상 및 감정 그 자체는 설사 그것이 독창성, 신규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므로, 저작권의 침해여부를 가리기 위하여 두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는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해당하는 것만을 가지고 대비하여야 할 것이며, 소설 등에 있어서 추상적인 인물의 유형 혹은 어떤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전형적으로 수반되는 사건이나 배경 등은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이 글은 내가 이 문제에 대해 공부해 온 것을 대단히 거칠게 정리한 것이다. 자세한 것을 알고 싶다면, 아래에 링크로 걸어둔 서울대학교 정상조 교수의 「창작과 표절의 구별 기준」 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http://s-space.snu.ac.kr/bitstream/10371/9145/1/law_v44n1_107.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