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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문학권력 문제에 대하여


문화일보》와 《동아일보》에 제 이름이 실린 기사가 나왔습니다. 

문학권력 문제는 그다지 다루고 싶은 주제는 아닙니다. 비평 자본과 출판 자본이 한몸으로 결합되어 상생하는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말 한마디 보탠다고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창비든, 문학동네든, 문학과지성사든 좋은 작품을 발굴해 세상에 알리고, 이를 훌륭한 비평으로 떠받쳐 왔지만 궁극적으로 보면 모두 사기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문학에 지금까지 헌신해 온 세 출판사의 선의를 결코 의심하지 않지만, 결국 이 출판사들도 이익을 내고 손해를 줄여 파산을 면해야 하고 해마다 직원들의 복리를 향상해야 하는 기업입니다. 무슨 문학 협동조합도, 사회적 기업도 아니고, 기업의 그러한 기본 기능을 무겁게 떠맡은 회사들입니다. 문학 권력 문제를 논할 때에는 이 사실에서 우선 한 발짝도 벗어나면 안 됩니다.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다가 아니라, 더 좋은 계몽주의가 있을 수 있다가 아니라 그냥 이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여당들(^^)을 견제하는 야당이 없다는 게 선명해지지요. 기자와 말할 때 저는 그런 지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오늘날 한국문학에 만약 문제가 있다면, 저는 언로의 문제라고 봅니다. 창비나 문학동네나 문학과지성사에 몰려가서 권력을 내려놓으라고 하거나 좋은 권력이 되라고 할 게 아니라, 대항권력의 지점들을 형성하면 됩니다. 대학이나 언론사 등에서 작품을 생산해서 판매하지 않는 곳에서 투자해서 한국문학 전체를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비평 공간을 형성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비평 공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시민사회에서 같이 치르면 됩니다.

가령, 지금은 활발하지 않지만 《크리티카》 같은 잡지가 있기도 합니다. 말을 더 보태는 것보다는 이런 잡지들이 더 많이 생산될 수 있도록 돕는 실천이 필요할 뿐입니다. 문학동네에서 지난 금요일에 문학권력과 관련한 토론회를 개최하자고 초빙하고, 역으로 작가회의 등에서 공개토론회를 제안하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깜짝 놀랄 만한 제안들이지만 아마 문학권력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문학을 조금이라도 앞으로 전진시키는 데 별 도움은 되지 않을 겁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작품 읽고 글 쓰는 게 훨씬 나을 겁니다. 

어쨌든 말이 나왔으니 십시일반해서 이 참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비평잡지라도 하나 만들어 볼까요?^^



문화일보 기사


출판자본서 독립된 전문 비평공간 마련을

신경숙 표절논란 이후… 한국문단의 과제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그럼에도 소설가 신경숙(52·사진)은 걸출한 작가인가, 아니면 문단이 만들어낸 허울뿐인 신화인가.’ 표절 논란 이후 신경숙 문학에 대한 재평가는 피할 수 없는 논쟁의 지점이다. 등단 30년 동안 7편의 장편과 48편의 중·단편을 발표한 그는 문학성과 상업성을 모두 갖춘 몇 안 되는 작가로 꼽혀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문학성에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고, 분노한 대중은 그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다. 


◇신경숙 신화의 몰락 = 상당수의 문학평론가는 여전히 1990년대 신경숙 문학의 문학사적 업적을 인정한다. 김형중(국문학) 조선대 교수는 “1980년대 거대 서사의 종결 이후 신 작가는 내면 탐구를 통해 한국문학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평했다. 이에 반해 그의 2000년대 이후 문학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김 교수는 “최근작 ‘엄마를 부탁해’ ‘리진’ 등은 출판사의 호평만큼 문학적으로 훌륭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정은경(문예창작학) 원광대 교수도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후 불필요한 감상성이 첨가된 그의 작품들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문학동네와 창비에 편집위원으로 소속된 문학평론가들은 한결같은 상찬을 이어갔다. 그 무대는 주로 이들 출판사가 발행하는 계간지였다. 표절 논란 이후 비판의 대상으로 떠오른 ‘주례사적 비평’, ‘문단 패거리 문화’와 맞물리는 부분이다. 상업적 이유와 함께 세계적 작가를 키워야 한다는 문단의 열망이 더해져 문학동네와 창비는 ‘신경숙 밀어주기’에 주력했다. 이미 15년 전 문학평론가 정문순이 ‘문예중앙’에서 ‘전설’의 표절 의혹을 제기했음에도 출판사와 소속 비평가들은 침묵을 지켰다. 오늘날의 신경숙 신화는 상당 부분 출판사에 의해 창조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여전한 대형출판사의 ‘밀어주기’ 관행 = 이런 밀어주기 관행은 출판계에서 여전히 성행 중이다. 대형 출판사는 소속 문예지를 통해 가능성 있는 작가를 발굴하고, 문학상과 홍보활동을 통해 띄운다. 해설 형식의 수려한 비평은 이 작가와 작품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방민호(국문학) 서울대 교수는 “평론가들이 억지로 꿰면 그것이 작가와 작품의 사상이 되는 식”이라며 “힘 있는 출판사가 스타를 만드는 문단의 작가 양성 시스템은 고착화된 지 오래”라고 했다. 현재 출판계에서는 ‘문학동네와 창비에서 책이 나와야 잘 나가는 작가’라는 논리가 통용된다. 이 영역에는 들어가기 어려울뿐더러, 한 번 벗어나면 재진입이 어려워 작가들은 대형 출판사에 반하기 어렵다. 불가피한 현실이란 옹호론도 있지만, 정도의 차이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문학평론가 A 씨는 “문학동네와 창비에서 책을 못 낸 작가는 문학계의 아웃사이더로 남는다”며 “확실한 스타가 되거나 모든 것을 잃는 ‘올 오어 나싱’의 상황”이라고 했다.


◇출판 자본에서 독립된 비평 공간 만들어야 = 한국문학 시장은 이처럼 소수 대형 출판사가 과점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형국이다. 자신들이 책을 생산하고 자신들이 비평(평가)한다. 당연히 비판은 요원한 일이고, 견제 세력도 없다. 이런 가운데 한국문학 독자는 빠르게 줄고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출판자본과 결합하지 않은 독립적인 비평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시카고대가 출간하는 ‘크리티컬 인콰이어리’, 타임지가 내는 ‘타임 리터러리 서플먼트’ 등 독립된 권위 있는 문학잡지가 출판사를 견제한다”며 “국내에도 문학작품을 내지 않는 곳에서 비평을 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또 비평으로부터 자유로운 출판사 모델이 나와 문학동네, 창비 등 비평가 집단이 중심이 된 기존 대형출판사와 경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문예창작과 교수 B 씨는 이를 “시장 친화적인, 친독자적인 출판사”라고 표현했다. 그는 “비평에 얽매였던 기존의 문단 풍토에서 벗어나 이른바 ‘시장에서 통하는 작품’을 내는 대안 출판사가 많아질수록 한국문학 독자층도 커지고, 획일적인 작가 등용시스템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동아일보 기사


획일적 등단제 지양… 작가 발굴 시스템 다양해져야

[한국문학 뿌리부터 바꾸자]<하>위기는 곧 새로운 기회


《 최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소설 분야 1위는 지난달 번역 출간된 장편소설 ‘오베라는 남자’(다산책방). 저자 프레드릭 배크만은 스웨덴 출신의 칼럼니스트이자 유명한 블로거다. 그는 이 작품을 블로그에 연재하면서 댓글로 독자들과 활발히 소통했다. 출판사가 이 블로그를 보고 책 출간을 제안했다. 이 책은 현지에서 70만 부 이상 팔렸고 독일, 영국, 캐나다 등 세계 각국으로 수출됐다. 다산책방 관계자는 “한국에서도 소설이 문예지나 인터넷 등에 연재되지만 저자가 독자의 반응을 작품에 반영하고 독자와 소통하는 일은 드문 것 같다”고 말했다. ‘개미’ ‘뇌’ 등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경우 출판사에 투고해 데뷔했다. 》


○ “등단 제도 문학 생태계 다양성 저해”

등단은 한국만의 독특한 작가 데뷔 제도다. 작가 지망생들은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 외에 문예지에 원고를 투고하고 평론가들의 심사를 거쳐 등단하게 된다. 주요 문학출판사가 문예지를 갖고 있어 자연스럽게 등단과 평론, 출판 과정에서 ‘문학권력’과 작가들의 폐쇄적 관계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가 전문가 10인에게 한국 문학의 새로운 ‘백년대계’에 관해 문의한 결과 등단 제도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여럿 나왔다. 강무성 열린책들 주간은 “등단 제도에서 합격증을 받기 위해선 내면의 이끌림보다 심사 요건을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작품이 다양해지려면 미등단 작가 작품도 많이 발굴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해종 박하 대표도 “등단 제도는 문학 생태계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다”며 “강한 개성,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작가 발굴을 위해서라도 등단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이런 등단 제도를 통과한 문예창작과 출신 작가들이 주류를 이루는 데 비해 해외에선 출판사 투고 중심으로 다양한 직업과 세대의 작가를 발굴하고 있다.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로 구축된 문학권력의 폐해와 개선을 지적하는 의견도 많이 나왔다. 민음사 대표 편집인을 지낸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해외는 문학작품의 생산 조직과 비평 조직이 결합된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만 그렇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비평 집단과 출판 자본이 분리돼 있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가 내는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시카고대가 출간하는 ‘크리티컬 인콰이어리’ 등은 출판사와 상관없는 독립된 비평 공간이다.


○ 새로운 스토리텔러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독자와 소통하는 작품이 나오기 위해선 문장에 대한 집착이 아닌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연선 은행나무 출판사 대표는 “이야기가 있는 소설은 ‘원 소스 멀티 유스’가 가능하다.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가 되면서 문학의 지평은 더 넓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정우영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국내 단편문학이 감성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측면이 컸지만 일반 독자들은 ‘이야기성’이 강한 장편에 관심을 갖는 만큼 장편 서사를 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에 베스트셀러 열풍을 일으킨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작가 요나스 요나손은 기자와 PD로 일했다. 그는 “언론에서 일하면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가 창작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표절 사태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경숙 씨를 둘러싼 표절 사태가 오히려 “한국 문학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영준 경희대 교수는 “문학이 한국을 만들어 왔고, 한국의 정치적 상상력은 문학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한국 문학의 사회적 위치가 높기 때문에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던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작가회의는 표절을 막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해 실무 협의와 공론화 절차를 밟고 있고,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도 문학 표절 가이드라인을 준비하고 있다.

신 씨의 책을 출간해온 문학동네는 25일 문학권력을 비판했던 평론가들과 자사 편집위원이 함께하는 좌담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문학동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언론을 통해 문학동네가 경청해야 할 말씀을 들려주신 권성우 김명인 오길영 이명원 조영일 이상 다섯 분께 저희가 마련한 좌담의 장에 참석해 주실 것을 청한다”고 밝혔다.


김지영 기자 박훈상·김윤종 기자 


* 사족, 뉴욕리뷰오브북스는 뉴욕타임스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뉴욕타임스북리뷰가 뉴욕타임스에서 나온다. 뉴욕리뷰오브북스는 독립잡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