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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만드는 일

Magazine의 시대는 가고, Zine의 시대가 오다


오늘날 미디어는 말 그대로 격변 중이다. 책이든, 신문이든, 방송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과거의 관행을 좇아 미래를 상상해 내는 것은 도저히 가능하지 않다. 이렇듯 시간의 직선이 끊어져서 과거가 미래를 가리키지 못할 때의 현재 상태를 일컬어 ‘카오스’라고 한다. 

지금 미디어 지형에서 카오스는 두 가지 사태로 나타난다. 

모바일 혁명의 가속화에 따라 미디어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서로 결합과 해체를 반복함으로써, 기존의 생산/소비 규칙이 작동하지 않는 것. 출판에서는 서점, 신문에서는 지국, 방송에서는 송전탑, 영화에서는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같은 망의 지배력이 나누어짐으로써 자연스레 형성된 콘텐츠 영토의 분할 지배와 상호 협력적 제휴 관행이 사라지고, 스마트 기기라는 단일 평면에서 소비자의 시간을 놓고 서로 경쟁함에 따라 기존 미디어 제국들은 급속히 해체, 재구축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약한 미디어 자본에 극도로 불리한 조건들을 지속적으로 생성함으로써 가령, 신문이나 잡지 등을 절멸 위기로 몰아넣는 중이다. 이 때문에 미디어 제국들이 주도해 왔던 콘텐츠 생산/소비의 규칙들이 전면적인 혁신을 요구받고 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새로운 콘텐츠 생산/소비 규칙을 가지고 출현한, 이른바 ‘소셜 미디어’는 미디어가 실어 나르는 콘텐츠가 상당히 다르다. 어쩌면 ‘콘텐츠 게토’라고도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를, 철저하게 개인 가치에 기반을 둔 콘텐츠의 미시 생산 및 공유가 일반화함에 따라 대량 생산/대량 소비에 근간을 둔 비즈니스 모델로써 성립된 기존 미디어 제국을 밑바닥에서부터 압박한다. 개인 미디어의 대량 발생과 대량 소비는 인간을 어마어마한 정보 과잉 상태에서 허우적대게 만든다. 이것이 미디어 카오스의 두 번째 사태이다.

단일 콘텐츠의 대량 소비를 기본으로 하는 Magazine의 시대는 가고, 다양한 콘텐츠의 소량 소비를 기본으로 하는 Zine의 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콘텐츠 생산자가 Maga-를 목표로 할 때에는 더 이상 창조성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어렵다. 대자보, 낙서, 그라피티, 티셔츠, 포스터, 책자, 팸플릿 등 언제, 어디에서든지 쉽게 생산하고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Zine을 기반으로, 때로는 Micro하게 때로는 Macro하게 움직일 수 있는 프리스타일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을 때에만 창조성을 확보할 가망성이 높다. 

그렇다면 Zine의 핵심은 무엇일까? 상황에 대한 고유한 해석과 가치 부여이다. 이제 무엇을 아느냐 또는 어디에 있느냐를 잘하는 것은 별다른 가치가 없다. 이런 것들은 이미 가상 공간(클라우드)에 너무나 대량으로 들어가 있다. 우리는 이미 한 달도 못 되어 공유 정보량이 배증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이럴 때 콘텐츠 창조성은 무엇이나 어디에 달려 있지 않다. 구글이 모르는 것은 신도 모른다. 구글이 아는 것을 잘난 체 떠들어 봐야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이제 콘텐츠 생산자들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미디어는 이런 질문에 답하려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이끌어 갈 것이다. 

급히 작성하기는 했지만, 오늘 순천향대학교 미디어콘텐츠학과 학생들에게 한 강의 내용이다. 그리고 이 말을 덧붙였다.

“여러분이 앞으로 4년 동안 해야 할 일은 거대 기업에 취직하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인간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함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그 일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일입니다. 삼성 직원들의 평균 근속년수는 9년가량에 불과합니다. 다른 거대 기업도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스무 살이고, 앞으로 적어도 60년, 잘하면 80년을 더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인생을 겨우 9년밖에 책임져 주지 않는 기업을 목표로 하지 말고 나날의 창조성으로 여러분의 미래를 스스로 생성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저와 함께 Zine을 만들면서 그 창조성의 첫머리를 연습했으면 합니다.” 

앞으로 넉 달간 아이들의 창조성에 기대어 나 자신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강의실이 있는 순천향대학교 학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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