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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독립출판잡지’에 대하여

KBS ‘TV, 책을 보다’의 ‘독립출판잡지’ 편에 출연했습니다. 그때 사전에 주고받았던 질문지 중 개별 잡지를 다룬 부분을 제외한 부분을 공개합니다. 방송도 아주 재밌었습니다.



Q. ‘독립출판잡지’의 세계에 대해 사전에 알고 계셨나?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건? 이러한 현상(상황, 분위기)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는지?

A. 당연히 안다. 편집자 입장에서 보면, 책이 될 만한 새로운 시각이나 주제나 필자가 생겨나는 용광로 같은 장소니까. 가끔씩 이런 잡지들을 파는 서점에 가서 살펴보는 중이다. 갈수록 다양해지고 솜씨도 좋아진다. 종 다양성 없는 건강한 생태계란 없듯이, 생각의 다양성이 없는 건강한 사회는 불가능하다. 이런 잡지가 많아지는 건 사회적 다양성이 실현되어 간다는 뜻이니까 바람직하다.


Q. ‘출판전문가’ 입장에서 ‘독립출판잡지’라는 건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다고 보시는지? 기존의 잡지와는 어떤 다른 특성을 지녔다고 설명할 수 있을까?

A. 독립잡지라도 여러 층위가 있으니까, 간단히 정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통점만 추려 보자면, 일단 당연하지만 ‘자본(또는 이윤)으로부터의 독립’이 가장 우선이다. 두 번째로는 ‘시선의 독립’이 중요하다. 기존 매체에서 얼마나 멀리 도주하느냐, 즉 얼마나 낯선 시각을 제공하느냐가 핵심이다. 굳이 하나 덧붙인다면, ‘우애의 미디어’다. 편집, 디자인, 배포, 판매 등에서 얼마나 우정을 생성하고 돈독해지느냐?^^


Q. 왜 지금 사람들이 ‘독립출판잡지’에 관심을 가질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잡지를 만들까?

A. 기존 잡지 미디어는 이미 너무 상업적이어서 소수의 감각은 다룰 수 없게 되었다. 사실 광고에 기사를 끼워 파는 것이니까 광고와 어울리는 기사만 존재하는 것이다. 주류의 목소리 외에는 전달할 수 없다고 본다. 게다가 오늘날 미디어를 생산하고 배포하는 비용은 기록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작고 사소해 보여도 자신한테는 소중한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연대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쉬운 세상이 되었다. 만나면 이야기하고 싶고, 이야기하다 보면 기록하고 싶어진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Q. 우리는 왜 ‘독립출판잡지’에 주목해봐야 할까?

A. 일단 신선하고 재밌으니까. 게다가 읽다보면 어떤 영감을 준다. 주변부에 속해 있어서 좀처럼 눈에 띄지 않지만 사실은 중요한 것들, 시간이 갈수록 더 중요해지는 것들이 있다. 독립잡지들은 그런 문화의 보고다. 


Q. SNS 범람의 시대, 왜 오프라인(종이) 잡지일까?

A. 사진만 보고도 사랑할 수 있지만, 역시 사랑은 만지지 않고서야 제대로 할 수 없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친구도 오프 자리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잡지도 마찬가지다. 물성을 갖출 때에만 보여줄 수 있는 게 있다. 어떤 감성은 종이의 촉감과 함께라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화면은 자유도가 낮고, 주어진 탬플릿을 벗어나기 힘들어서 생각마저 고정되는 기분이다. 또 개별 기사가 아니라 훑어보면서 전체를 가늠할 때에만 간신히 내 취향인지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Q. 현재의 ‘독립출판잡지’, 출판계의 돌파구(새로운 자극제)가 될 수 있을까? 그저 틈새시장일 뿐일까?

A. 시장의 돌파구는 아니고, 생각의 돌파구를 열어가고 있다고 본다. 여기까지 책으로 만들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이 늘 들었다. 아이디어의 감옥을 여는 열쇠 같은 것이다. 소수의 독자라도 확실한 독자만 있다면 책은 만들어지고, 그런 것이 쌓여서 새로운 출판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Q. 현재의 ‘독립출판잡지’, 우려되는 부분이나 문제점, 그리고 한계는 없나?

A. 독립이니까, 각자 재밌게 잘 놀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 가지 정도 짚고 가려고 한다. 일단, 취향은 독특할지 몰라도 표현의 문법이 너무 익숙하다. 시각은 새롭지만 기존 잡지 스타일을 답습하고 있어서 그 매력이 반감되는 잡지가 많다. 고유한 스타일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잡지의 형태로 판매까지 하려면 어디까지나 공공성을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때 공공성은 독자를 배려하라는 뜻이라기보다는 더 첨단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나 취향을 끌고 간다는 느낌이 드는 게 중요하다. 자칫하면 배설에 가까울 수 있다. 셋째, 디자인이나 사진 베이스로 만들어지는, 그것도 수업 때나 만들어봄 직한 잡지들이 너무 많다. 사진 등으로 무언가를 전달하려면 훨씬 고도의 책략이 필요하다. 할 말이 있어서 잡지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억지로 내용을 채우는 느낌. 어떤 독기 같은 게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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