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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종이의, 종이를 위한, 종이에 의한


애도와 비탄과 애처로움. 시의 한 종류인 엘레지의 특징들이다. 위키디피아에 따르면, 사자를 위한 송가(送歌)나 애가(哀歌)로 쓰인다.

종이가 죽었단 말인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종이와 같은 불멸의 물체가 죽을 수 있단 말인가? 맙소사, 말도 안 돼! 종이가 죽었다면 당연히 무척이나 슬프겠지만, 이런 일은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 『페이퍼 엘레지』(홍한별 옮김, 반비, 2014)에서 영국의 작가 이언 샌섬은 ‘엘레지’라는 제목을 붙이고는 이미 사망 통지를 받아 버린 종이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기록해 나간다. 

종이가 죽고 인간이 살아남았다면(정녕 그럴 수 있기만 하다면), 어둡고 우울한 제목이 붙은 이 책은 아마도 ‘살아남은 자의 변명’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제목의 어두움, 그러니까 애도의 형식과는 어울리지 않게 이언의 문장은 경쾌하고 유머로 가득하며 섬세하고 아름답다.

당연하지만 이 책 어디에도 종이의 죽음은 없다. 심지어 실종조차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생생하게, 모든 곳에서, 모든 순간에 종이가 나타난다. 종이는 모든 사물에, 모든 사유에, 모든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다. 두 나무가 자라면서 하나의 가지를 이루는 연리지(連理枝)처럼 일단 종이는 어떤 것과 결합하고 나면 분리 불가능하게 된다. 아니, 어떤 것이 종이 그 자체로 변해 버린다. 

『페이퍼 엘레지』가 다루는 모든 사물과 사건이 그 과정을 밟았다. 지도, 책, 돈, 광고, 건축, 예술, 장난감, 게임, 정치, 영화, 패션 등 어디에서도, 심지어 전자적 화면 내부의 세계에서도 우리는 종이를 전혀 물리치지 못했다. 종이가 모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비가(悲歌)가 아니라 송가(頌歌)의 형식으로, 침묵과 절제의 언어가 아니라 수다와 과잉의 언어로 쓰였다. ‘종이 예찬’, 사실 이 책에는 이런 제목이 붙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종이로, 종이를 통해, 종이를 이용해서 상상하는 법을 배우고 훈련받았다. 그 덕분에 종이 없는 세상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건 죽은 상태나, 태어나지 않은 상태를 상상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문장은 서론에 나오지만 사실 결론의 자리에 존재한다. 종이가 없다면, 우리는 죽거나 태어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이언은 종이와 관련 있는 갈래 길들을 샅샅이 훑어가면서 그 이유를 탐사한다. 그리하여 종이의 이미 선포된(최근 전자책 논쟁에서 더 극적으로 선언된) 죽음이 “과장”임을, 종이는 비가의 형식으로 절대 애도할 수 없음을 밝혀낸다. 『페이퍼 엘레지』는 선포한다.

“종이에 밀착되고 접합되고 봉합되어 우리 존재 자체가 종이와 같다.”

인간은 종이다. 지구는 종이다. 우주는 종이다. 존재는 종이다. 이런 종류의 명제는 무엇이라도 진릿값이 참이다. 서술어 자리에 종이가 있는 한.

종이의 출생증명서에 해당하는, 제1장 「종이 제작 : 한없이 복잡한 기적」으로 넘어가서 일단 읽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거의 눈을 떼기 힘들다. 이언의 문장은 이성의 부엉이가 어둠을 가르면서 날아다니는 재의 언어로 쓰이지 않았다. 아직도 타오르면서 읽는 이의 가슴을 밝히는 불꽃의 언어로 쓰였다. 지독하게 감염되기 쉬운 바이러스 같은 수사를 통해 읽는 이를 제자리에 못 살게 굴고 기어이 같이 타올라 버리도록 만든다. 종이의 역사 어느 구석에서 구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세부들(사실들, 일화들)이 감탄과 경이를 자아내면서 숨 가쁘게 다음 쪽으로, 다음 쪽으로 우리를 몰아간다.

종이에 홀리고 사로잡혀서 수많은 날들을 관련 서적을 편력하고 자료를 섭렵하면서 보냈을 이언에게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하고 싶다. 종이와 관련된 일화를 이만큼이나 많이 물어 오고 서로 메아리쳐서 말을 건네게 하려면 방구석 ‘오덕’ 공력이 진정 어마하게 쌓여야 했을 것이다. 사리가 생길 때까지 신공을 익히고 마침내 종이를 써서 ‘종이 정보 박물관’을 창조한 이언에게 박수를 보낸다.

“한 사람의 삶에서 단 하루 동안 쓰인 종이의 역사만 쓰려고 해도 메이휴나 조이스 정도 되는 위업이 될 것이다.” 

때때로 사실을 기술하는 척하면서 이런 식으로 연신 투덜거리면서도 이언은 마침내, 출생 증명에서 사망 통지에 이르는 종이의 통시적 역사와 책이나 돈이나 광고 등 인류의 삶 전체에 고루 퍼져 있는 종이의 공시적 존재론을 종횡으로 넘나드는 멋진 작품을 창조해 버렸다. 읽고 나면 이 책이 논픽션이 아니라 픽션처럼 느껴진다. 애서가(愛書家)라면 이런 일이 그다지 자주 일어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쪽 분야에 필독의 책이 또 하나 생겼다.